나는 ‘개고기’를 먹는 사람이다. 어렸을 때부터 개고기를 먹었고 최근에도 먹었다. 아빠가 개를 도살하는 장면도 본 적이 있고, 엄마가 개를 어떻게 요리하는지도 곁에서 지켜봤다. 개를 도살하는 장면은 어린 시절 봤지만 생생하다. 때리고 불로 지지는 잔인한 장면이었다. 하지만 이상하게 그 당시엔 이를 충격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고기를 먹으려면 동물을 죽이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이다. 또 우리 집은 식용을 위해 닭, 염소, 오리 등을 많이 키웠으니 동물을 죽여 고기를 얻는다는 것이 익숙하기도 했다.
하지만 시골을 벗어나 도시에서 삶을 시작하면서, 개고기에 대한 사람들의 시선이 부정적이란 걸 경험했다. “윽. 개고기를 어떻게 먹어. 나는 어렸을 때 엄마가 개고기를 소고기라고 속여서 먹었는데 그날 내내 울었잖아. 사람들은 개를 도대체 왜 먹는 거야? 어떻게 예쁜 개를 먹을 수 있지” 등 개고기를 먹는 사람들에 대해 안 좋은 평가를 하고 있었다. 또한 외국인들은 한국인들이 개고기를 먹는 것에 대해 미개하다고 평가한다고 한다. 전 세계에 몇 안 되는 우리나라만 갖고 있는 비정상적인 식문화라나?
그들의 입장에서 개는 닭, 돼지 등과 같은 식용 동물과 다른 존재다. 개는 인간과 평생을 같이 하는 반려동물로서 결코 먹을 수 없는 동물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에겐 개고기를 먹는 것은 ‘자신의 친구를 먹는 것’과 같다. 이러한 상황에서 개고기를 먹는 사람은 그들의 입장에서 미개해 보일 수밖에 없다. 수많은 동물 단체에서 ‘개 도살 금지, 개 농장 폐쇄’ 등을 외치고 있다. 종종 길거리에서 서명 운동을 하는 것도 볼 수 있다. 하지만 나는 그들의 주장에 공감하지 못한다.
식용 동물과 반려동물을 가르는 기준이 무엇인가? 반려동물의 옹호자 이야기를 들어 보면 애초에 야생의 상태가 없고, 태초부터 인간과 함께 살았다는 것처럼 들린다. 하지만 반려동물, 식용 동물 모두 인간이 필요에 의해 길들인 존재에 불과하다. 모든 동물들은 자연 상태가 있었으며, 인간에 의해 활용되고 있다. 동물이 식용인지, 반려동물인지는 동물이 아니라 인간이 결정해왔다. 같은 동물도 인간의 결정에 의해 식용 동물이 될 수 있고, 반려동물이 될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개는 반려동물이기 때문에 먹어선 안 된다는 주장은 개의 자연 상태를 거부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오래전부터 개를 먹었던 것은 단순히 ‘미개하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없다. 지금이야 우리나라가 풍족해 고기를 쉽게 먹을 수 있지만, 이는 최근에서야 가능한 이야기다. 90년대까지만 해도 고기를 마음껏 먹지 못했다고 한다. 그 시절엔 각 가정에서 가축을 키우고 잡아먹는 것이 일상이었다. 또한 농경이 주를 이루던 시기에 소는 식용보다 노동력의 가치가 더 컸다. 그들을 먹는 것은 막대한 노동력을 잃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각 가정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개를 잡아먹었다고 한다.
지금이야 단백질 보충을 하는 수단이 다양해 고기를 먹지 않아도 쉽게 살아갈 수 있다. 과학 기술의 발전으로 사시사철 채소를 먹을 수 있는 것도 한몫한다. 하지만 과거엔 저장 및 재배 기술이 많이 발전하지 못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채소가 나지 않는 시기엔 단백질 섭취를 고기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동물이 살아있는 동안은 고기가 상할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 단백지 보충을 위해 흔히 볼 수 있는 동물을 잡아먹는 것이 미개하다고 할 수 있을까? 복날에 삼계탕, 개 보신탕 등을 먹는다는 날이 있다는 것은 우리가 과거에 고기 섭취를 많이 하지 못했다는 걸 보여주는 것 아닐까?
https://n.news.naver.com/article/448/0000279645
"개고기 대신 수박을"…말복에 개 식용 반대집회[앵커] 오늘은 개 식용을 중단하라는 동물보호단체들의 목소리가 광화문에서 울려퍼졌습니다. 이들은 '살생 없는 복날'을 보내자며 시민들에게 수박을 건네기도 했습니다. 임서인 기자입니다. [리포트] 붉은 색으로 물들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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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인간이 아무런 이유 없이 선택하고 행동하는 존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무언가 인간에 의해 만들어지고 고착됐다면 이유가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는 문화가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란 사실을 종종 망각하는 것 같다. 문화를 자연화하고, 그것들이 만들어진 이유에 대해 묻지 않는다. 자신 문화의 관점에서 그 문화를 바라보고 평가할 뿐이다. 하지만 나는 문화 역시 인간이 만든 것이기 때문에 모든 문화엔 이유가 있을 거라 확신한다.
위의 개고기 사례처럼 많은 사람들이 타문화에 대해 가치 평가를 한다. 하지만 이에 대한 평가는 그 문화가 형성된 전체 맥락이 아니라 지금껏 자신들이 체득한 문화 감수성에 의해 직관으로 이뤄진다. 그저 ‘좋다, 안 좋다.’ 등으로 타문화를 평가할 뿐이다. 야생동물을 즐겨 먹는 중국인들의 식생활에 대해서 내 주변 사람들이 보이는 시선만 봐도 우리가 타문화를 어떠한 자세로 평가하는지 알 수 있다. 그런데 이렇게 문화를 자연이나 미술 작품을 감상하듯 단순하게 겉만을 보고 평가해선 안 된다. 이 문화가 만들어진 배경과 구성원들이 생각하는 합리성에 대한 끊임없는 탐구가 필요하다.
https://n.news.naver.com/article/277/0004613566
"中 야생동물 식용 탓"…우한폐렴 공포에, 커지는 '중국 혐오'[아시아경제 김봉기 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우한폐렴) 확진자가 국내에서도 잇따라 확인되면서 '중국 혐오 여론'이 덩달아 확산되고 있다. 신종 바이러스 창궐의 원인으로 꼽히는 중국의 야생동물 식용을 규탄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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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수수께끼’는 우리 눈에 비합리적으로 보이는 문화들이 어떻게 생겨났는지에 대한 연구를 담은 책이다. 이것은 자연스러운 문화는 없다는 주장을 강력하게 지지한다. 자연스러워 보이는 것도 그 나름의 이유를 갖고 있다. 특히 책의 저자 마비 해리스는 문화가 형성된 원인을 정신 등과 같은 추상적 대상에서 찾지 않는다. 그는 형이상학적으로 문화 현상을 분석하는 것을 거부하며, 실재적 대상과 인간이 맺는 관계를 분석한다.
문화의 원인을 찾기 위해선 끊임없는 질문이 필요하다. 그 문화의 외관을 감상하는 것을 넘어 ‘왜’와 ‘어떻게’를 꾸준히 물어야 한다. 이 책 역시 단순 현상으로 그칠 수 있는 문화 현상에 대해 끊임없는 질문을 던진다. 마빈 해리스는 질문을 찾아가는 여정을 이 책에서 다루며 이를 문화의 수수께끼라고 부르고 있다. ‘인도인들은 왜 암소를 숭배할까? 이슬람 민족은 왜 돼지고기를 먹지 않을까? 뉴기니 원주민들이 화물 숭배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남녀 차별이 생겨난 이유가 무엇일까? 중세 시대에 마녀사냥은 왜 성행했을까?’ 등과 같은 수수께끼가 이 책에서 풀어진다.
특히 암소 숭배와 마녀사냥은 흥미진진한 이야기로 가득했다. 왜 인도인들은 굶어죽으면서까지 암소를 숭배하는가? 암소의 수가 필요에 비해 엄청 많고 많은 목초지를 파괴하는데도 이를 방치해두는 것은 외부인의 시선에선 비합리적이다. 전문가의 말에 따르면, 지금 존재하는 소의 수를 줄인 후 그것들을 제대로 키우면 같거나 더 많은 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고 한다. 더욱이 환경파괴도 덜 할 것이다. 그렇다면 누구 소유의 소를 가장 먼저 줄일까? 마빈 해리스는 부자들의 소가 아닌 빈자들의 소가 그 대상이 될 것이라 말한다. 현재처럼 소의 개체를 조절하지 않고 숭배하는 것은 부의 분배 기능을 하는 것이다. 또한 농경 사회에서 소는 노동력의 중요한 일부다. 기아로 인해 소를 잡아먹으면, 다음 농사는 소의 부재로 인해 더욱 어려워진다. 하지만 기아로 굶주리면서 소를 잡아먹는 유혹에서 벗어나기란 쉽지 않다. 인도인들은 이러한 유혹에서 벗어나기 위해 소를 신성시하는 집단 문화를 만들어, 이러한 유혹에서 벗어나는 장치를 마련했던 것이다.
암소 숭배는 인간의 잠재능력을 개발하여, 낭비나 나태가 들어설 여지가 전혀 없는 저 에너지 생태계 속에서 인간이 지속적인 삶을 유지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현재 마르고 여윈 것들이지만, 조금은 쓸모가 있는 짐승들을 보존함으로써, 에너지 소비적인 쇠고기 산업을 억제함으로써, 공공 구역에서 혹은 주인의 비용으로 살찐 소를 보호함으로써, 한발이나 기근이 들 때에도 소가 지니고 있는 회복 능력을 보존함으로써, 암소 숭배는 인간 집단이 환경에 대한 탄력 있는 적응력을 지닐 수 있게 이바지하고 있다.
지금 보면 마녀 화형이 잔인하고 비정상적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이것이 기독교를 견고히 하기 위해 마련된 수단이란 걸 아니 비정상적인 문화라고만 평가할 것이 아니다. 중세가 후반기로 나아가고 있을 때, 기독교의 부패는 지극히 심각했다. 많은 사제들이 권력을 마음껏 휘두르며 부패로 인해 많은 문제들이 일어났다. 이러한 상황에서 백성들의 종교에 대한 신뢰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기독교는 어떠한 방식으로도 무너진 신뢰를 쌓고, 공동체를 견고히 했어야 했다. 그래서 외부의 적을 만든 것이다. 악마와 계약을 하는 마녀라는 가상의 존재를 만듦으로써 많은 사람들이 종교에 더욱 의존할 수 있도록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다. 또한 한 개인이 마녀로 잡혀 들어오면, 그들은 다른 마녀의 존재에 대해 말해야 한다. 그들은 고문을 통해 자신이 마녀임을 자백하는 동시에 다른 사람도 마녀로 몰고 간다. 이는 백성들이 서로를 불신하도록 해 종교에 대한 목소리를 내는 것을 방지했다. 즉, 백성들이 맹목적으로 종교에 의존하고 서로를 불신하게 하기 위해 마녀 화형이 활용된 것이다. 종교는 백성들에게 이러한 마녀들의 농간에서 벗어나게 해줄 메시아가 나타날 것이란 확 심을 심어주기만 하면 됐다. 이 과정에서 무고한 희생자들이 넘쳐났지만, 기독교를 지키기 위해서 개인의 희생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다.
마녀 광란은 ‘결함이 있는 제도의 구조적 반성'과는 거리가 멀었고 반대로 그 제도적 구조를 방어하는 필수적인 수단 가운데 하나였다. 이 점은 그 당시 마녀 광란의 안티 테제를 이루었던 전투적 메시아니즘과 마녀 광란을 비교해보면 분명히 알 수 있다.
전투적 메시아니즘은 가난한 자와 무산자들을 다 합 시켰다. 전투적 메시아니즘은 그들 사이의 사회적 거리를 줄일 수 있는 집단 소명감을 주었고 서로 형제자매로 느낄 수 있게 했다. 이 사상은 유럽 전역의 대중을 움직이게 함으로써 그들의 에 너지를 특정 시간과 특정 장소로 집중시켜 무산 영세 대중과 사회의 정상에 있는 자들의 대결을 유도했다.
이와 반대로 마녀 광란은 저항할 수 있는 모든 잠재 에너지를 분산시켰다. 마녀 광란은 가난한 자와 무산자들의 저항운동의 가능성을 박탈하고 이웃끼리 서로 싸우게 하며 모든 사람을 소외시 키고 공포에 몰아넣었으며 불신을 고조시켰고 무기력하게 했다. 그 결과 지배계급에 의존하게 했으며 단순한 지역적인 문제에 모든 사람이 분노하고 좌절하게 했다.
이 책을 통해 타문화에 대해 내가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 고민할 수 있었다. 인간이기 때문에 당연히 대상에 대해 평가할 수 있다. ‘좋고, 나쁘다.’ 등의 평가는 당연히 할 수 있다. 그런데 지금껏 그 이상을 나아가지 못했다. ‘왜 내가 좋게 평가하는지. 그 대상이 어떻게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됐는지. 내가 나쁘다고 평가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등을 묻지 않았다. 나도 모르게 문화를 자연화했던 것 같다. 문화가 당연하지 않다는 생각을 계속 품어야겠다. 또한 그 속에서 그것의 토대가 된 합리성을 찾으려는 노력을 해야겠다. ‘이 나라는 이러한 문화를 갖고 있대. 우리와 다르지.’와 같은 감상이나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그 속을 샅샅이 탐구하려는 태도가 필요하다.
마지막 장에 작가는 반문화 주의로 대변되는 히피 문화를 비판한다. 그들이 정신적이고 형이상적인 대상에서만 행위의 이유를 찾는다는 것이 주요 논지다. 난 마빈 해리스가 갑자기 왜 이러한 비판을 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의 관점에 따르면 이는 어떠한 것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히피들이 실재적 존재가 아니라 정신적이고 추상적인 대상에서 행위의 이유를 찾으려 하는 이유에 대해서 먼저 고민해야 하는 것 아닌가? 왜 그들이 이러한 문화를 갖게 됐는지, 지금껏 자신이 보여준 사례들처럼 유물론적 관점에서 분석할 수 있지 않았을까?
생활 양 식의 배경에 감춰진 원인들이 그토록 오랫동안 간과되었던 주된 이유는 모든 사람이 그 대답은 신밖에 모른다’고 믿어왔기 때문이다. 여러 관습과 제도가 그토록 신비스럽게 보였던 또 다른 이유는 사람들이 문화의 여러 현상을 철저하게 물질적으로 설명하는 것보다는 '정신화'해 설명하는 것에 더욱 큰 가치를 두도록 교육받아 나왔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면밀히 고찰한 각 수수께끼에 대한 해답들이 실제 주위 환경들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고 강하게 주장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