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3학년 때까지 틈만 나면 게임을 했던 것 같다. 학교와 학원으로 채워진 일상의 여백을 게임이 채웠다. ‘메이플 스토리’와 ‘던전 앤 파이터’는 내 어린 시절의 큰 부분을 차지한다. 방학이 되면 형과 나는 번갈아 가면서 게임 캐릭터를 육성했다. 방학엔 하루 종일 컴퓨터 게임을 하는 게 다반사였다. 몸이 고됐어도 멋모르고 했던 것 같다.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야 캐릭터가 성장하니 포기할 수 없었다.
내가 게임을 했던 이유는 나만의 캐릭터를 키울 수 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게임 세계에선 현실 세계에서 하지 못했던 것을 할 수 있었다. 게임 세계에선 내가 바라던 모습을 게임 캐릭터에 투영하고 자유자재로 캐릭터를 육성할 수 있었다. 좋은 아이템을 끼면 다른 유저들에게 높은 평가를 받았다. 또한 마치 영웅이 된 듯 양 몬스터를 사냥할 수 있었다. 몬스터를 사냥했을 때의 쾌감과 그 결과 따라오는 캐릭터의 성장은 나를 게임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게 했다. 이러한 게임 방식은 플레이어의 꾸준한 시간과 노력이 필수였다.
나의 게임 취향은 호불호가 확실했다. 정교한 컨트롤 능력을 요하는 게임은 선호하지 않았다. 캐릭터 육성을 위해 시간과 노력은 얼마든지 투자할 수 있다. 하지만 컨트롤 능력은 또 다른 영역이었다. 컨트롤 능력은 비가시적이어서, 나의 노력에 결과물을 곧바로 확인할 수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과 경쟁하거나 맞서는 게임을 하지 않았다. 내가 게임을 하던 시절에 서든 어택, 피파 온라인 등과 같은 경쟁형 게임들 역시 큰 인기였지만 나는 이에 어떠한 매력도 느끼지 못했었다.
고등학생이 되니 게임에 시간과 노력을 투자할 수 없게 됐다. 내가 하던 게임은 이 두 요소가 필수적이었다. 이를 투자하지 않으면 캐릭터들은 도태된다. 현실적 제약과 캐릭터가 도태되는 모습으로 인해 고등학생이 된 나는 게임을 과감히 포기했다. 지금까지도 게임을 전혀 하지 않는다. 주변의 많은 친구들이 롤, 배틀 그라운드, 오버워치와 같은 게임들을 하지만 나에게 그렇게 매력적이지 않다. 나의 정교한 게임 컨트롤을 요구할뿐더러, 매번 다른 유저들과 맞서는 것이 피로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남자들의 세계에선 운동과 게임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이 둘 모두를 즐기지 않는 남자들은 비정상적이라고 여겨진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이 둘을 모두 즐기지 않는 ‘비정상적인 남자’다. 솔직히 다른 남자들이 비정상적이라고 생각하는지는 모르겠다. 내가 스스로 나를 비정상적이라고 바라보는 것일 수 있다. 하지만 이 둘을 하지 않으면 그들과 할 수 있는 것들의 제약이 크다. 술을 마시러 가는 것을 제외하고 일상에서 같이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 그들이 모이면 운동 이야기를 주로 하는데, 이를 잘 알지 못하는 나는 부끄러운 감점을 느끼기도 한다. 마치 끼면 안 될 곳에 왔다는 느낌이랄까. 또한 친구들이 운동하러 모일 때에도 나는 운동 신경이 쥐약이기에 이를 의도적으로 피했다.
‘나는 게이머입니다. 아 여자고요’ 책은 게임을 하는 ‘비정상적인 여자’의 책이다. 게임을 하지 않는 ‘비정상적인 남자’로서 게임을 하는 ‘비정상적인 여자’의 이야기가 재미있게 다가왔다. 사실 게임을 남자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어린 시절 봤던 PC방의 풍경은 대부분 남자였으니까. 게임에서 여자 유저들을 만나는 일이 극히 드물었으니, 여자아이들은 게임을 즐겨 하지 않는다고 여겼다. 하지만 이 책에서 나온 통계를 보니 정말 많은 여성들이 게임을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게임은 남성의 전유물이 아니었고, 게임을 하는 여자가 비정상적인 것도 아닌 것이다.
이 책은 저자가 게임을 시작하게 된 이유부터 게임 중 겪은 경험을 공유하고 있다. 그는 게임 세계에선 수동적인 여성상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말한다. 게임 속에선 누구나 주인공이 될 수 있고, 유저들은 자율적으로 게임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게임 세계가 완전히 현실 세계와 분리된 것은 아니다. 그는 여성 플레이어로서 게임 세계에 만연한 여성 혐오를 경험했고 이 책에서 이를 고발하고 있다. 21대 정의당 국회의원 류호정이 책을 읽는 내내 떠올랐다. E-스포츠 선수였던 류호정은 E-스포츠 분야에 만연한 불평등과 여성 혐오를 개선하기 위해 정치권에 들어온 걸로 알고 있다.
나 역시 게임을 하지 않지만 게임에 만연한 혐오를 익히 들어 알고 있다. 상대방을 비하하고 욕하는 것이 게임 세계에서 일상이다. 그를 욕하는 것을 넘어서 부모까지 욕하면서 게임을 즐긴다. 한 친구는 이러한 문화 때문에 게임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가만 생각해 보면, 내가 어렸을 때 욕을 많이 한 공간 역시 게임 세계였다. 익명성이 악의를 한 곳에 뭉치기에 효과적이지만, 이에 따른 책임을 솜털처럼 가볍게 한다는 작가의 말이 극히 공감됐다. 익명성을 전제로 한 게임 세계에서 혐오는 어떠한 책임 없이 이뤄지니까 말이다.
왜 사람들은 서로를 비하하고 우롱하는 걸까. 상대방의 마음에 생채기를 내는 이유는 뭘까. 나로선 이해가 되지 않는다. 어느 누구도 우롱당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상대방이 받는 피해를 상상하는 능력이 결여된 것이라고 결론을 낼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고서야 자신이 당하기 싫은 걸 당당하게 타인에게 하는 변태적인 행동은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혐오가 이렇게 만연한데,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혐오는 얼마나 더 심각할까. 여성 혐오, 장애인 비하 등 은 게임 세계에서 더욱 쉽게 일어날 것이다. 작가가 고발하는 게임 내에서의 여성 혐오는 우리 사회의 야만성을 진솔하게 보여주는 단면이다.
나는 게임을 하지 않고 여성이 아니기 때문에 작가가 경험한 혐오들이 그에게 어떻게 다가오는지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문제라고 생각한다면, 게임 업계는 이를 무시하고 덮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인 자세를 취해야 할 것이다. 게임이 과거처럼 부정적인 오락물로 여겨지던 시절이 지나가고 있다. 이젠 많은 사람들이 즐기는 여가 활동의 일부가 되고 있다. 이것이 지속적으로 발전하기 위해선 사적 이득과 같은 목적만을 향해 게임 업계가 운영되는 것이 아니라 이를 위한 수단의 정당성도 고려해야 한다.
이 책을 처음 시작했을 때, ‘게임의 문화가 싫으면 떠나면 되지 않나? 게임은 현실 세계와 달리 로그아웃이 간편한데, 굳이 정신적 피해를 받으면서 게임을 할 필요가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게임을 하지 않는 이유도 이와 같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게임을 좋아하지 않고, 그는 게임을 좋아하고 하고 싶어 한다. 게임을 하고 싶어 한다는 것이 게임으로 생기는 피해를 감수하겠다는 말이 아니다. 누구도 그에게 피해를 줄 권리가 없다. 건전한 환경에서 게임을 하는 것이 그의 권리이기도 하다.
이 책은 다양한 게임들의 상황을 볼 수 있어서 흥미로웠다. 다만 내가 구체적으로 게임이 진행되는 방식을 알지 못해 작가의 말이 공감 가지 않을 때가 가끔 있었다.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작가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고 있겠지. 이와 동시에 조금 의아해했던 부분이 있다. 그는 게임 내에서 많은 캐릭터들이 남성 중심적으로 이뤄진다고 비판하면서, 오로지 여성이 중심부의 역할로 구성된 게임을 예찬한다. 그는 여성이 중심이 됐을 때, 이야기의 풍부함을 경험했다고 한다. 이해할 수 없는 논리였다. 여성이 중심이 되는 사실 그 자체가 어떻게 이야기의 풍부함과 이어지지. 여성이 중심이 되는 사회와 남성이 중심이 되는 사회와 다를 것 없는 일률적인 사회인데 말이다. 그가 바라는 게임 세계의 모습이 구체적으로 어떠한 모습인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