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페이지가 넘는 방대한 분량을 단숨에 읽어내려가게 된
책. 이 책을 읽고 가장 먼저 든 느낌은... 스페인... 그것도 바스탄 숲에 가보고 싶다. 그곳 공기를 들이마시고, 사건이 일어난 것으로
추정되는 장소들, 여주인공이 사건 해결을 위해 거닐었던 장소에 가보고 싶다... 그 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으면 숲의 수호자 바사하운의 휘파람
소리가 들려올 것 같고, 고대 여신의 모습을 한 마리도 만날 수 있을 것만 같다.
주인공이 엘리손도 출신으로 나오긴 하지만 습한 공기,
안개가 드리운 곳, 숲이 우거져서 고대로부터 수많은 소문들이 전해져오는 이곳은 마치 동화 속에 나오는 장소처럼만 느껴진다. 마치 판타지 영화를
보는 것처럼 신비로운 공간이 머릿속에 그려진다. 연쇄살인 사건과 여주인공의 수사라는 현대 소설의 느낌을 마법의 공간 안에 녹여낸 마술적
리얼리즘으로도 읽히는 독창적이고 매혹적인 스릴러 소설이다. 초반부터 강렬... 인간의 짓이라곤 믿기 어려운 살인사건이 일어난다. 소설에 완전히
몰입하다 보니 계속 긴장과 불안의 연속이었던 것 같다. 그럼에도 책이 끝나갈 때는 아쉬웠다. 2권에선 또 다른 신비로운 소재가 나온다던데 무척
기다려진다.
이 소설의 또 다른 매력은 스페인에서도 고립된 문화라 할
수 있는 바스크 지방의 이국적 분위기이다. 엘리손도에서 일어난 사건을 엘리손도 출신인 형사가 수사하다 보니 이 지역에 대한 이야기가 수시로 나올
수밖에 없다. 돌로레스 레돈도가 이 부분을 풀어내는 과정은 감동적이다 못해 아름답기까지 하다. 매해 홍수로 고통받아야 했던 마을 주민들, 이를
타개하기 위해 노력할 수밖에 없었던 수많은 경험들, 고대로부터 내려온 선과 악에 대한 다채로운 이야기, 그리고 고통의 연속을 막기 위해 수백년,
아니 수천년 마을 사람들이 행해야 했던 여러 선행과 악행들... 배경이 유럽이다 보니 고대 여신과 수호자뿐만 아니라 샤먼과 가톨릭의 통합과정,
그 과정에서 발생할 수밖에 없었던 마녀사냥을 비롯한 여러 악행들, 이로 인해 고통받는 영혼들에게 휴식과 위안의 의미가 되어준 십자가의 의미 변천
과정 등이 나온다. 수사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풀어나가다 보니 사건을 머릿속으로 추론하는 장르소설만의 재미와 함께 지적인 쾌감도 안겨주는
책이었다. 문학성과 대중성을 겸비한 착한 책이라고나 할까?
또 다른 하나는 바로 책 표지에서도 언급되는 여주인공
아마이아 살라사르. 완전히 홀릭되었다. FBI와 함께 교육을 받았고, 범죄를 인식하는 특별한 감각을 가진 살라사르 형사는 미국 예술가와
결혼했고, 고향이 싫어 엘리손도를 떠나 대도시에서 일하는 여자이다. 당연히 고향에 대한 상처와 트라우마를 안고 있다. 3년째 아이를 가지지 못해
고통받고 있고, 가톨릭 신자이기도 하다. "어떻게 카톨릭 신자가 아닐 수 있을까! 엘리손도는 교회 옆에 세워졌으며, 그녀는 신자들과 함께
성장했다." 수사의 책임을 떠안고 향한 엘리손도에서 살라사르는 이미 유년시절부터 들어왔던 이야기임에도 부정하고 무시하는 태도를 일관한다.
울창하게 우거진 숲은 존재 그 자체만으로도 힘이 되어주지만, 한편으론 두려움과 현기증을 일으키는 존재다. 그리고 이어지는, 마치 프랑스 소설가
프레드 바르가스를 떠올리게 하는 환상적인 이야기들. 이제까지 장르소설에서 나왔던 형사들의 모습과는 다른 모습, 남성들로 둘러싸인 경찰서란
공간에서 홀로 꿋꿋하게 극복하고 해결해나가는 과정도 신선하다.
이제껏 장르소설을 많이 읽다 보니 같은 얘기가 반복되는
것 같아 다소 지루한 느낌이 있었는데 이국적인 소설 공간, 신비로운 신화와 전설의 존재들, 그리고 매혹적인 유럽의 과거 역사들이 소설 속
이야기와 밀접하고 절묘하게 얽혀 있어 매우 독창적으로 읽혔다. 인물들도 남다르고 개성 있으며 매력적이었다. 전제적으로 흥미롭게 잘 쓰인 소설인
듯. 3부작이라는데 다음 책이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