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리뷰] 모쪼록 잘 부탁드립니다
하온북 2022/03/13 22:03
하온북님을
차단하시겠습니까?
차단하면 사용자의 모든 글을
볼 수 없습니다.
- 모쪼록 잘 부탁드립니다
- 이랑.이가라시 미키오
- 14,400원 (10%↓
800) - 2021-12-07
: 283
16. 모쪼록 잘 부탁드립니다 (이랑, 이가라시 미키오; 2021)
<보노보노> 로 우리나라에서 유명한 일본 만화가 이가라시 미키오 님과 페미니스트 인디뮤지션이자 독립출판 작가로 알려진 이랑 님이 1년동안 서로 주고받은 편지를 모은 서간문 (편지 에세이).
서간문은 작년에 처음 접했는데 그 고유의 매력에 푹 빠져있다. 일단 편지는 1:1 소통을 위해 써진 글이라 일반 책보다 더 일상적이고 내밀한 내용들이 친근한 언어로 써져있다. 또 저자에게 정확한 타겟 독자 (편지받는 사람) 가 있기에 겉도는 얘기, 가식따윈 들어설 자리가 없다. 출판을 염두에 둔 두 예술가의 콜라보 프로젝트기에 개인적 얘기말고도 다양한 정치, 사회적 담론이 가득하다. 하지만 편지의 기본 목적인, 서로의 안부를 묻고, 각자 가정의 평안을 기도해주는 그 따스한 마음은 여전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무의식적으로 비교대조하게 된 책은 작년에 읽은 라종일, 김현진 님의 서간문 <가장 사소한 구원> 인데 (트위터 페책대 모멘트 중 ˝생기부를 부탁해˝ 에 건단리뷰를 올려두었다), 일단 30대에 결혼을 탐탁치 않게 여기는 여성과 60~70대의 자기 분야에서 성공한 기성세대 남성과의 편지라는 점에서 기시감을 불러 일으켰다. 하지만 <가장 사소한 구원> 을 읽으며 조금 껄끄러울 수 있는 어른의 쓴말이 <모쪼록 잘 부탁드립니다> 에는 없다는게 이 책 고유의 장점 같다. (물론 난 <가장 사소한 구원> 을 항상 베스트 서간문 탑 3에 올린다)
고유의 장점에 대해 더 길게 풀어보자면, 이가라시 님은 이랑 님이 던지는 다양한 화두 (종교, 삶의 의미, 고양이의 건강, 외국인 파트너의 비자문제) 를 잘 기억하고 근황을 물어봐준다. 그리고 대체적으로 이랑 님이 던진 화두의 공을 뒷받쳐줄 수 있는 다양한 책, 영화, 만화, 일본에서 일어난 유사 사회사건 등을 알려준다. 그렇게 그들은 번역의 힘을 빌어 소통을 해야하지만, 생각을 함께하며 소통하는데는 전혀 문제없어 보인다.
하나 특별히 놀란점은 이가라시 님이 엄청난 다독가 라는 것이다. 여기서 주로 언급되는 책 작가 중에 데이비드 그레이버 가 있는데 (최근에 불쉿 잡 이라는 그의 유작이 우리나라에서 번역되었다), 꽤 묵직한 사회경제 이슈를 말하는 작가였다. 그의 책을 다 사서 본 이가라시 상이나, 그를 따라 그레이버의 책을 사서 대화를 몇달동안 이어간 이랑 님이나 둘다 독서와 담화의 공력이 대단하다. 영화이야기도 많이 나온다. 특히 이창동 감독님 영화들, <벌새>, <노매드랜드> 이야기가 심도깊게 펼쳐진다.
괜히 보노보노가 그렇게 철학적이고 컬트적인 만화가 아니었다는걸 편지를 보며 알았다. (보노보노를 요즘분들은 그 피피티 그림이나 보노보노 에세이로 많이 알겠으나, 보노보노 만화책을 보면 생각보다 매우 매니아적인 만화라는걸 알수있다. 이상 원조 보노보노 만화 컬렉터 ㅋㅋ)
이가라시 님에 대한 호감 만큼이나 이랑님에 대한 호감도 이 챡을 통해 커졌다. 이랑 님은 어떤 음악상 시상식에서 <신의 놀이> 가 상을 받았을때, 이 상 으로 내 집세를 벌어야겠다며 상패를 즉석경매에 내놓은 풍자 퍼포먼스를 하셨을때부터 행보를 눈여겨 보고 있었다 (그 상패는 소속사 대표님이 50만원에 낙찰받아 가셨다). 상의 권위를 우롱한다는 의견도 있었지만, 그럴때만 반짝관심을 주고 실제 인디뮤지션들이 지속적으로 예술활동을 하는데 도움을 달라는 메세지로서 효과적이었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해서 그때부터 이랑님의 노래와 뮤직비디오, 책을 따라다녔다.
여담이지만, 이 책에서도 이야기 나오는 노래 <가족을 찾아서> 는 한창 가족이 나의 마음을 짓누를때 들으며 홀린듯이 반복하고, 들을때마다 새롭게 또르르 울었던 기억이 난다. (이젠 이 노래를 들어도 눈시울만 붉어져서 다행이다)
일본과 한국 외교관들이 이 둘같은 마인드와 대화태도만 갖춰도 (아니 세계 지도자들 누구든) 전쟁은 안 일어날것 같다. 생뚱맞지만 전쟁 반대.
북플에서 작성한 글은 북플 및 PC서재에서만 수정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