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그가 화가 난 대상은 내가 아니였다. 그것은 그도 알고, 나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결국 그의 화는 나에게로 돌아왔다. 화를 낼 대상을 잘못 찾았음에도 그의 눈빛은 흔들림없이 나를 원망하고 그의 입은 여전히 거칠게 욕설을 내밷는다. 누군가의 화를 이토록 정면으로 마주본것이 언제인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돌아서서 생각한다.
그에게 분노는 어쩌면 살아갈 이유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누구에게든 그 조차 하지 않으면 살아갈 힘이 한개도 남지 않을 수 있으니까. 그조차 하지 않으면 그가 그의 의지로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을 수 있으니까. 그저 그가 화를 내도 좋을 대상 정도로 내가 가볍게 보여진 탓이라고 생각하며 스스로를 다독인다. 가당치 않은 화를 받은것에 울컥했던 기분을 가벼운 신음 한번과 함께 다시 구겨 넣는다.
분노와 원망과 절망을 오가는 사람들 속에 살고 있다.
2.
얼마전 진격의 거인이 검색어 상위를 차지 했을때 잠시 갸웃 했다. 이미 출판 된지 제법 되어 열권이나 나온 책이 왜 이제서야 갑자기? 했더니만 에니메이션으로 방영된단다. 그것도 일본과 동시에. 분노와 원망과 절망 사이를 절묘하게 그려낸 수작이라고 생각한다. 보면서 "미쳤어. 미치지 않고서야 이런 이야기를 그려낼 수는 없어."라고 몇번을 말했는지 모른다. 그렇다. 아직도 나는 작가가 미쳤다고 생각한다.
한가지만 그려내기에도 무겁고 과한 분노,원망, 절망들을 미친듯이 그려낸 작품의 유일한 단점은 바로 작화였다. 작화가 좀 떨어지는거 아닌가? 싶었던 작품이 에니메이션화 된다는 이야기에 잠시 갸웃했다. 에니메이션화 되면 스토리보다 작화의 단점이 부각되어 혹시 좋은 작품이 평가 절하되는것은 아닌가 싶기도 했다. 그런데 에니메이션으로 탄생한 진격의 거인은 원작보다 작화가 좋다. 게다가 지면으로는 표현의 한계가 있었던 활동성과 속도감이 붙어 오히려 원작보다 더 쌈팍한 에니메이션이 되어 돌아왔다. 분노와 원망과 절망을 오가는 이야기를 애타게 기다려며 감상중이다.
3.
다시 돌아와서 받을 이유가 없는 사람에게 그 분노와 원망을 모두 풀어낸 후에 그에게 남은 것은 절망이였나보다. 이로 자신의 팔뚝을 물어뜯고 끊임없이 허망한 눈동자를 둘 곳 몰라 한다. 혹여 그 절망의 끝에 삐뚤어진 선택이 있을까 싶어 염려스럽다. 나에게 욕설을 내뱉은 사내의 깡마른 등골이, 불면의 밤이 안스럽다.
어둠속에 잠시 마주친 눈빛이 내내 마음이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