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토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짝사랑 로맨스. 학교 후배를 짝사랑하는 남주인공. 차라리 대놓고 고백하는 편이 덜 힘들겠다, 싶을 정도로 답답한 방식으로 온갖 고생이라는 고생은 사서 하는 남자 주인공의 여자 후배 마음 얻기 프로젝트가 무려 사계절에 걸쳐 진행된다.
봄-(관심 없는 클럽 선배의) 결혼식 뒤풀이 자리.
p.12 “클럽 후배인 그녀에게 나는 말하자면 첫눈에 반했는데 아직껏 친근하게 말 한 번 주고받지 못했다. 오늘 밤이 호기였지만 그녀 곁에 앉지 못한 전략적 실수 탓에 내 의도는 수포로 돌아갈 기색이 농후했다.”
여름- 헌책시장.
p.93 “나는 헌책시장에 약하다.…(중략)…그러므로 헌책시장이 열리는 계절이 되면 나는 어김없이 우울해진다. 그래서 올해는 절대로 안 간다고 결심했다. 그러나 막판에 아무래도 가야만 하는 처지에 몰렸다. 그녀가 간다는 것이다.”
가을- 대학 축제.
p.186 “나는 국가의 장래와 나 자신의 장래를 구별 없이 걱정하며, 매일을 오로지 사색에 잠겨 영혼을 단련하는 남자다. …(중략)…고고한 철인이 청춘 암시장에 불과한 대학 축제 따위와 무슨 인연이 있겠는가. 그런 내가 이곳으로 발길을 옮긴 이유는 오직 그녀가 온다는 정보 때문이었다.”
겨울- 주인공의 자취방.
독감으로 앓아누운 남주인공.
p.290 “나는 감기의 신에게 한 방 먹었다.…(중략)…그녀를 뒤쫓지도 못하고 망상에 골몰할 뿐. 나는 결국 주역의 자리를 차지하지 못하고 길가의 돌멩이 신세에 감지덕지하며 외롭게 한 해를 넘길 신세였다.”
건물 옥상에서 몸을 날리는 건 기본, 그녀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라면 그녀가 찾는 그림책을 손에 넣고자 강적들과 불 냄비를 둘러싸고 사투를 벌이는 일도 불사한다. 문제는 그녀 곁을 끊임없이 맴도는데 지나치게 배려하며 맴돌아서 ‘티’가 안 난다는 점이다. 그래서 그녀는 ‘우연히’ ‘자주 마주치는’ 선배를 보고는 “아! 선배, 또 만났네요!” 하고 밝게 인사하고 가버리는 게 전부다.
이 짠한 선배가 짝사랑하는 여자 후배는 우연히 알게 된 술친구인 도도 씨의 빚을 갚아주고자 황당한 이벤트를 열어대는 (꽤 선한) 고리대금업자 이백 씨와 술 내기를 하기도 하고, 주변 사람들이 모두 독감에 걸려 몸져누워있을 때 혼자 쌩쌩한 자신의 모습을 가엾게 여기며 여기저기 간호하러 다니는 마음씨 착한 대학생이다.
판타지 요소까지 곁들여져 정신없이 스토리가 전개되지만. 중요한 사실은 등장인물들 모두가 하나같이 진지하다는 점이다. 황당하면서도 연일 실소를 터뜨리는 사건이 끊이지 않는 이 소설은 한참 읽다가 가만, 이 책 장르가 뭐였더라? 하고 다시 앞으로 돌아가 책 장르를 확인해 보기도 한다.
교토의 거리를 쭉 둘러보며 읽는 듯한 느낌이 드는 이 소설. 나지막하게 들리는 이백 씨가 여자 후배에게 건네는 목소리.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
부디 선배님의 노력이 헛되지 않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