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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모이로의 서재
  • 빨강머리 앤이 하는 말
  • 백영옥
  • 17,820원 (10%990)
  • 2016-07-15
  • : 10,020

빠르게 변하는 시대 속에서 우리는 뒤처지지 않기 위해 숨 가쁘게 발맞추며 살아가고 있다.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과 긴장감에 자신의 마음을 돌보기란 쉽지 않고, 언제부터인가 당연한 듯 무덤덤하게 자신의 감정을 깊이 묻어둔 채 하루하루를 보낸다. 그래서인지 하루가 멀게 쏟아져 나오는 위로와 격려를 담은 책들 속에서 백영옥 작가의 에세이 『빨강머리 앤이 하는 말』은 조금 특별하게 다가온다. 우리에게 익숙한 만화 주인공 앤이 등장하고 이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에피소드마다 작가의 생각이 투영된 앤의 대사가 책 한 면을 장식하고, 짧지만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예전에는 미처 모르고 지나쳤던 앤의 대사와 사고방식을 돌아보며 나 자신과 마주할 시간을 갖는다.

 

작가는 어떤 태도나 상황을 지적하거나 변화를 강요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자신과는 무관한 일처럼 팔짱을 끼고 무심한 말투로 방관하지도 않는다. 자신이 생각한 바를 주인공 앤의 대사를 통해 살짝 내비치고, 우회적으로 타인에게 말을 건넬 뿐이다. 때로는 앤의 말에 공감하기도 하고, 나아가 이를 재해석 하기도 한다.

 

다양한 사람과 사례가 등장하지만, 독자에게 절절한 감동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무리한 장치를 설정해 놓지는 않았다. 그저 담담하게 읽어 내려가는 잔잔한 일화들이다. 그러나 읽으면서 알 수 없는 먹먹함이 느껴지는 순간이 종종 찾아온다. 깨달음보다는 공감에 가까운 감정이다. 필자가 담담하게, 조금은 활기차게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는 동안 앤은 중간중간 등장해 결정적인 대사를 남기고 사라진다. 앤이 하는 말은 특별할 게 없어서 더 의미가 있다. 오히려 예전에 이 만화를 본 사람이라면 한 번쯤 들어본 적 있는 익숙한 대사들이다. 다만, 그때는 자신의 상황에 비추어보지 않고 넘어갔을 뿐이다. ‘시간은 이런저런 일을 겪으며 똑같은 상황을 바라보는 관점을 바꾸게 하는 힘을 갖고 있다.’라는 작가의 말처럼 한때 우리가 절망하고 절대 극복하지 못하리라 믿었던 일들이, 또는 그렇게 생각했던 날들이 앞으로도 반드시 그러리라는 법은 없다.

 

비극의 보편성을 다루는 점도 흥미롭다. 아이러니하게도 사람은 비극의 보편성을 느낄 때 위로받는다고 한다. 누군가의 실패에서 위로받는다는 말은 타인의 실패를 비웃거나 자신을 속이며 우울한 합리화를 한다는 뜻이 아니다. 실패하기까지 막대한 노력과 정성을 기울였을 타인을 바라보며 안타까움을 느끼고, 그 과정에서 타인의 마음을 어루만지며 나 자신도 함께 위로하게 된다는 뜻이 아닐까. 모든 승부에서 이기기란 사실상 불가능하고, 아무리 노력해도 잘 안 되는 일도 있다. 그러니 성공에만 초점을 맞추지 말고 지더라도 잘 극복하는 방법을 연습해보자. 내가 어떤 사람인지 인식하고 자신만의 스타일을 갖추기 위해 노력하다 보면 어쩌면 삶이 더 나아질지도 모른다.

 

삶이 너무 평범해서, 고민이 너무 사소해서 사람들은 흔히 이렇게 말한다. 누구나 그래. 원래 그래. 하지만 누구나 그렇고 원래 그렇기에 우리는 공감하고 또 공감한다. 따뜻한 애정이 책 전반에 녹아있다. 앤을 통해 삶을 따뜻하게 바라볼 기회가 온 듯하다. 빨강머리 앤은 작가 자신이자 우리 자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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