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筆-June님의 서재
  • 사고의 용어사전
  • 나카야마 겐
  • 25,200원 (10%1,400)
  • 2009-08-10
  • : 294
수험생처럼 노랑 볼펜으로 밑줄을 그어가며 읽었다.

그동안 내 인생에서 지나쳤던 책들의 제목이 CF 카피처럼 떠올랐다 사라져갔다.

글쓴이는 차례대로 읽어줄 것을 권했지만, 버스 노선대로 움직일 필요는 없다.

이 책은 철학의 흐름을, 그동안 이슈로 떠올랐던 주제어 하나를 정해서, 여러 철학자의 시각을 들어보는 것으로 구성되어 있다.

 

철학하는 것은 "삶의 의미를 밝혀주는 작업"이라 난 생각한다.

- 플라톤은 철학자란 영혼의 의사이며 타인의 카타르시스를 위해 존재한다. (카타르시스-110쪽)

정약용의 실사구시처럼 일상생활에 도움이 되지 않는 학문은 쓸모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이데아,개념,,일상과 동떨어진 용어는 읽기에도 재미없고 생활에 도움될 건덕지 추리기도 쉽지 않았다.

철학의 이모저모를 펼쳐내는 방식은 마치 에세이를 읽어 내려가듯 부드럽고 친절하다.

저자의 의견도 때로 첨부하고, 감탄사도 연발하며 맛깔난 상차림하듯 근사하게 펼쳐보인다.

 

요즘 같은 자본주의 세상에선 돈이 정의고 바로 법이다. 이를 뒷받침하는 듯한 문장이 있다.

- 정의의 여신상은 손에 저울을 들고 있다. 그리스 때부터 정의(Justice)는 수량적인 척도에 따라 재분배되는 것으로 여겨졌다. 레비나스는 그 수량적인 척도가 될만한 것은 화폐밖에 없다고 보았다. (화폐-120쪽)

또한 이 시대는 소유하는 것과 나눔에 대한 성찰이 요구되는 바, 눈에 띄는 구절을 옮겨본다.

- 궁극적인 소유는 '먹는' 일이다. 사물을 신체로써 소화하고 신체의 일부로 삼는 것이야말로 최고의 소유이다.(...)
소유가 불가능한 존재에 대해 인간은 살의를 품는다고 레비나스는 말한다. (소유-288쪽)

- 바타유는 탕진이야말로 인간에게 어울리는 행위라고 생각한다. 낭비하는 것, 증여하는 것, 웃는 것 따위에서
인간은 최고의 에로스를 맛볼 수 있고, 그것이 진정한 의미에서 '인간다운' 행동이라는 것이다. (생산-313쪽)

- 바타유의 보편 경제학에 의하면 공동체 내부에 부(富)가 과잉 축적되면 그 공동체는 붕괴된다.
결국 포틀래치(potlatch: 북미 인디언의 재산을 남김없이 주는 풍습)는 공동체가 파괴되는 것을 막는 지혜로운 수단이 된다. (증여-337쪽)

이 글을 읽다 보면 사람이 왜 식탐을 하는 지, 권력을 획득하려는 바탕에 깔린 감정상태를 엿볼 수 있다고 할까,

기부가 사회적으로 용인되어야 할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이렇게 쏙쏙 뽑아 볼 만한 구절이 여기저기 박혀 있어 심심치 않게 읽을 수 있다.

하지만 글을 따라가며 그냥 저자의 생각을 흡수하는 것이 아니라 내 안의 거울에 비춰보고 검증해봐야 내 것이 된다.

원래 철학책이나 개념어 사전 종류의 책은 옮기기가 만만치 않을 텐데 번역의 품질도 좋다. 의미없이 꼬인 문장도 없고.

번역에 대해 한 장을 할애한 곳(461쪽)에서 독특한 견해를 보인 곳을 인용하고 싶다.

- 번역이라는 작업은 원작의 의미에 가장 비슷하게 따라갈 것이 아니라,
오히려 원작이 의도한 것을 세부적인 요소까지 애정을 가지고 자신의 언어로 형태를 갖추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렇게 해야 두 개의 깨진 도자기 조각이 한 항아리의 파편이라고 인정받게 된다.: 발터 벤야민 <번역자의 사명>

번역이 가능하냐, 불가능하냐는 논쟁은 멀찌감치 버리고 번역에서 집중해야 할 부분이 무엇인지 확실히 보여준다.

문체를 옮겨야 한다, 구둣점까지 번역한다,,는 원로 번역가의 말씀도 절대 규칙이 될 수 없다는 거.

'옳은 번역'은 없으며 많은 이에게 어필하는 번역이 '좋은 번역'이란 사실.

하나의 텍스트가 두 개의 언어로 표현됨으로써 

원작이 표현하고 싶었던 것이 더욱 풍부하게 다시 태어난다는 가능성이 번역에 있다 는 견해가 놀랍다.

우리가 흔히 번역은 원작을 따라가지 못한다며 원서를 읽을 것을 권하지만, 글쓴이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 외국어로 표현된 텍스트를 읽는 최선의 방법은, 원문으로 읽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번역해보는 것. (번역- 463쪽)

니체 식으로 말하면, [피와 잠언으로 쓰는 자는, 읽혀지기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암송되기를 원하다.]는 맥락일 터.

 

내가 좋아하는 니체와 프로이트가 많이 출현해서 좋기도 했지만, 바타유란 철학자를 알게 된 것도 큰 수확이었다.

비트겐슈타인의 활약도 보기 좋았다. 그리고 서양철학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향력이 막강하다는 점을 다시금 느꼈다.

그외 헤겔, 하이데거, 마르크스, 칸트, 들뢰즈의 이모저모를 살펴보았고 메트롱퐁티, 레비나스,  낯선 철학자도 만나 보았다.

아직 못 다 읽은 부분이 조금 남았지만, 틈나는 대로 펼쳐서 읽어보면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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