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筆-June님의 서재
  • 타워
  • 배명훈
  • 9,000원 (10%500)
  • 2009-06-05
  • : 2,121

누드누들(만화가: 양영순) 이후 가장 강력한 쿠데타.
SF적 상상력으로 현실에 없는 것으로 현실을 꼬집는 건 작가의 전매특허 아니겠는가.
이솝의 귀환, 올더스 헉슬리의 재림이라고 하면 과장된 말일까.
 

270쪽이란 두껍지 않은 책 속에 연작 소설 6편을 버무려 내놓았다.
<동원박사 세 사람_개를 포함한 경우>는 알라딘 연재된 것으로 맛을 보았기에, <타클라마칸 배달 사고>로 직행했다.

타클라마칸- 사막 이름에서 뭔가 끌렸다. 은수(여)는 오래 전(=5년) 헤어진 남자친구의 소식을 시 공무원인 병수에게 전해듣는다. 민소(남자친구)가 정찰비행을 떠났다가 사막 한가운데서 행방불명되었다는 것이다. 빈스토크 시민권도 얻었고 5년이나 지난 애인을 굳이 찾을 필요도 없지만 왠지 모르게 구조 행동을 취하지 않으면 안될 것 같다. 그래서 입수한 위성사진 한 장. 드라마는 여기서 시작된다. 인터넷 사이트 하나 만들고 올린 사진 한 장으로 전 세계 네티즌이 한 손 거들고 나와 '헤어진 남자친구'찾기에 몰입한 것이다.  

혹자는 테크놀로지 시대에도 따뜻한 인정은 살아있다는 증거로 여길 수도 있지만, 내 눈에는 인스턴트 사랑에 딴지를 걸면서 "너희는 이런 순수를 아직 간직하고 있느냐"고 외치는 듯 하다. 사랑이 꼭 '배우자'로 귀결되지 않더라도 연애는 그 자체로 소중하다는 걸 말하려는 것 같다. 주인공 이름을 은수, 병수(갑,을,병..)로 지은 것이나 민소(:바보-정체성이 있다)가 사막에 불시착한 사건을 '배달사고'로 명명한 것은 물신숭배의 전통(?)에서 인간성을 잃어버린 개인을 보여주는 상징적 기호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가장 빠져서 감탄해마지 않았던 작품 <엘리베이터 기동연습>. 674층이나 되는 빈스토크(Beanstalk: <재크와 콩나무>에서 콩줄기. 첨에는 bean's talk= 콩가루 집안..정도로 알았다^^)는 엘리베이터 한 번으론 원하는 목적지에 갈 수 없다. 같은 층에서도 사방 5km 로 뻗어있는 광활한 수평지대를 통과하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다. 빈스토크 건물 자체가 하나의 국가란 설정이 낯설지 않다. 주인공 '나'의 고백으로 시종일관 진행되는 이야기는 교통공무원으로서 무계획과 부서에서 활약을 그린다. 빈스토크가 워낙 거대하다보니 그 안에 일하는 사람은 '수직운송조합'과 '수평운송노조'의 조직원으로 나뉜다.  

사회가 있으면 조직이 있고 조직이 있으면 파벌, 갈등이 야기되는 건 당연하다. '나'는 이웃집 여자가 때는 난방 온기로 겨울을 난다. 후에 수직주의자의 대표?로서 이웃집 여자를 만나게 되는데, 위에서 내려온 작전을 실행하면서 이어진 인연은 끊어지고 <520층 연구>란 책자 하나만 덜렁 남는다. 무계획과 전시 훈련 기술자의 눈으로 바라본 빈스토크는 시크하면서도 시큼한 맛을 낸다. 개인과 조직의 접점 한계는 어디까지인가. 개인은  조직속에서 정녕 존중받을 수 있을까, 아님 그저 기계부속품으로 만족해야 하나..란 화두를 던지는 듯 하다. 40쪽 남짓한 분량이 중편소설처럼 느껴지는 건 왜일까. 30분을 읽어도 3일동안 푹 빠진 느낌.^^

 

<광장의 아미타불>에서는 시위 문화를 인도코끼리 아미타브의 희화적인 등장으로 진한 페이소스(=비장미 [悲壯美])를 전시(show)한다. 처제와 형부간의 편지 주고받음이란 형식으로 진행되는 짧은 소설은  Ahern, Cecelia 의 <Love,Rosie> 를 떠올리게 한다. (e-mail & messenger talk로 소설전체를 구성함)

<샤리아에 부합하는>을 읽으면서 폭탄설치와 작전수행과정이 Forsyth, Frederick 의<자칼의 날>을 불쑥 상기시켜 주었다. 둘다 치밀한 과정으로 훌륭하게 눈속임을 했지만 불발이란 점에서 똑같다.

<자연예찬>은 고대의 상상력과 미래의 하이테크 감수성을 오가면서 현재의 자연환경을 돌아보게 만든 수작(秀作)이었다.

 

부록으로 <내면을 아는 배우 P와의 '미친 인터뷰'>도 발랄하고, 「타워 개념어 사전」도 <악마의 사전>을 보듯 유쾌하다.

책을 읽으면서 내내 왜 제목이 <타워>일까 생각해보았다. 인간의 높이 오르고자 하는 욕망을 드러낸 어휘선택이 아니었나 짐작한다.~~!!! 

 인상적인 구절:  그냥 그 사람이 좋았어. 그 사람이 그렇게 말하면 다 진짜인 것 같았어. 이듬해에 그 여자가 『520층 연구』라는 책을 냈는데, 그게 아마 30년 수평주의 역사상 제일 아름다운 책이 아니었을까. 7년간 520층에 살면서 관찰한 것들을 수평주의 이론은 전혀 사용하지 않고 오로지 자기 통찰력만으로 서술해낸 책이었는데, 말 그대로 딱 520층 이야기밖에 없는 책이었거든. (12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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