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을 보고 왜 <퍼펙트 걸>이 아니고 <걸 퍼펙트>인가 궁금했다.
말 그대로 '완벽한 여자'가 아니라 여자(존재)는 완벽하다..의 등식이란 걸 책을 읽으면서 느꼈다.
제니퍼 스트릭랜드가 톱모델인 만큼 잘났다는 얘기가 아니고, 여자라면 누구나 하나님 품안에서 '완벽'하다는 깨달음을 말하고 있다.
어린 시절(8~13세)부터 시작한 모델 일은 제니퍼 스트릭랜드의 '완벽'을 향한 강박증을 부추겼고,
패션계의 정상에 서는 순간 런웨이 무대 뒤편에서 분주한 모델들에게서 '공허'를 본다.
제니퍼가 바랐던 것은 명예나 돈이 아니었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인정하고 사랑해줄 누군가를 간절히 원했다.
하지만 세상은 제니퍼에게 아름다움을 팔면 네가 원하는 것을 주겠다는 믿음을 불어넣었고, 하나의 상품으로서 소비했다.
'이건 아니야..'란 확연한 깨달음은 아르마니 패션쇼에 서고 모두가 인정하는 톱모델의 길에 들어섰을 때 왔다.
사람의 어리석음이란 끝까지 가고 나서야 회심(回心:①마음을 돌려먹음 ②사악한 마음을 뉘우치고 올바른 신앙생활로 돌아감)하는 걸까?
전반부는 파릇파릇한 소녀에서 유럽의 톱모델이 되기까지 고난했던 여정을 이 시대 여자라면 원하고 갖고 싶어하는 욕망- 완벽한 인정,완벽한 용납, 완벽한 이미지, 완벽한 몸, 완벽한 외모까지 모델계의 활동이 주를 이룬다.
비교,비교,비교. 난 비교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내가 비교당하기를 원하지 않아도, 스스로에게 만족한다 해도, 우리의 차이점이 서로를 돋보이게 하고, 또 그것이 질투의 원인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해도, 우리는 여전히 비교를 당했다. 상대방을 스스로의 가치측정을 위한 척도로 사용하는 것이다. 비교는 질투심을 낳고, 질투심은 증오를 낳고, 증오는 분노를 낳는다. 그리고 분노는 두려움을 낳는다.
본격적인 신앙생활은 후반부- 완벽한 꿈,완벽한 탈출,완벽한 길,완벽한 충족,완벽한 자유에서 펼쳐 보인다. 솔직히 나는 기독교인이 아니고, 성경을 읽은 적도 없어 하나님 신앙고백 글이 가슴에 깊이 와닿진 않는다. 그럼에도 이 책에 거부반응이 일지 않는 것은 제니퍼가 자신의 삶에서 우러나오는 말을 하고 성경을 여기저기 인용하는 수준에서 그치기 때문이다. 예전에 목사가 쓴 에세이도 1~2권 읽어보았지만, 훌륭한 목사나 전도사는 자신의 삶으로 성경을 얘기하고 하나님을 말하기에 거부감이 없다.
<마틴 에덴>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아름다움은 당신을 상하게 한다. 아름다움은 당신안에 있는 영원한 고통이며 치유되지 않는 상처, 불꽃같은 칼날이다. 당신은 왜 잡지책과 흥정을 해야만 하는가? 아름다움을 당신의 목적으로 삼으라. 왜 아름다움을 돈과 맞바꾸어야만 하는가?" (Jack London-<Matin Eden>,17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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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에게 있어 아름다움은 권력이고 모든 것이란 신화가 퍼져있다. <내게 너무 가벼운 그녀>란 영화가 있다. 남자 주인공이 '동기부여가'의 최면에 빠져 여자의 외모는 볼 수 없고 오직 내면의 아름다움만 보게 된다. 그때 136Kg 나가는 한 여자를 만난다. 남자 눈에는 그녀가 세상 누구보다 빛나는 아름다운 여자인데, 주위 사람들은 고개를 설레설레 흔든다. 나중에 최면이 풀려 '진실'을 알게 되지만, 남자는 용기있게 '뚱뚱한' 그녀를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내용이다. 참 감동적으로 본 영화였다.
똑같은 말이라도 성공한 이가 말하면 '말의 무게'가 다르다.
여자들이 바라는 최고 위치에 한 번 섰던 사람이 모델계에서 '아름다움'이란 환상이고, 하이 클라스를 유지하고자 끊임없이 가면을 쓰는 생활을 해야 했다고 하니 경험자의 지혜를 경청해야 겠다. 기독교 신자도 여자도 아니라서 한계에 부닥치긴 했지만, 제니퍼가 작가의 꿈이 있는 여자라서 글도 간결하게 잘 써서 어렵지 않게 끝까지 읽을 수 있었다. 번역자(이지혜)가 '한국기독학생회출판부 편집부' 근무 경험이 있어 성경 번역은 신뢰할 만하다고 여겨지고 문학적으로도 훌륭했다.
제니퍼가 하나님을 만나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었던 것은 언제까지나 순수함을 간직하고 "내면의 목소리"를 잊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어려울 때나 힘들 때도 내면의 목소리를 따르는 순수함이 있다면 길은 열리지 않을까.^^
오자 구역: 검은 궤도의 사방에서 비취는 번쩍이는 불빛 안에서 떨어지고 => 사방에서 비치는 (213쪽)
홍조를 띈 내 뺨 위로 느끼던 시원하고 촉촉한 공기를 아직도 기억한다. => 홍조를 띤 (27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