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과 파국의 상상력은 흔하다.
대재앙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에 관한 픽션은 흔하다.
그러나 문명의 폐허 속에서 인간이라는 것이 뜻하는
모든 비극적 아이러니를 냉정하고 다부지게 파고든 소설은 드물다.
<로드>는 단연 특출한 묵시록적 서사이다.
이 남성적 상상력의 순정한 경지 앞에 오면
웬만한 공포의 묘사는 응석이 되어버리고
웬만한 투쟁의 서술은 만담이 되어버린다.
사람 각자가 서로에게 이리가 되어버린 도시에서,
자연이 그 원초적 무의미성과 무자비함을 회복한 세계에서,
죽어버린 수목들과 버려진 시체들과 약탈당한 건물들 사이의 위태로운 협로를 따라
어딘지 모를 구원의 땅을 찾아가는 아버지와 아들.
과거에 사람들이 작성한 윤리의 ‘지도’가 전혀 쓸모없는
그 대재앙 이후의 벌판에서
선이란 무엇이고 악이란 무엇인가?
아니, 인간이란 무엇인가?
<로드>는 좋은 문학만이 두려워하지 않는 물음을 던지며
우리의 도덕적 심장에 강력한 전류를 쏘아넣듯 힘차게 다가온다.
인간 세계의 근본을 이루는 악과 마주하여 개인이 벌이는 외로운 싸움…
일찍이 미국문학의 고전들이 자라나온 종교적, 도덕적 멘탈리티의 원류로부터
또하나의 걸작이 태어났다.
그런데 참 신기한 일이다.
만만찮은 이 소설이 미국에서 180만부가 나갔다는 것도 그렇고,
한국에서 출간되자마자 베스트셀러에 오른 것도 그렇고...
오프라 윈프리의 공인가? 대단한 오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