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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비님의 서재
  • 내일은 내일의 해가 뜨겠지만 오늘 밤은 어떡하나요
  • 연정
  • 11,610원 (10%640)
  • 2020-04-20
  • : 3,102

내일이 코앞까지 다가온 자정이 다 돼가는 시간에 이 책을 읽었다. 나태함 때문에, 조급한 마음 때문에 하루의 끝자락에 책을 펼쳤다는 변명이기도 하겠다. 저자의 글은 나와 닮아있기도 안 닮아있기도 했다. 당연한 소리겠지. 하지만 종종 책 속에서 내 모습을 발견하는 게 재밌어서 책을 읽는 나에게는 중요한 지점이다. 닮은 점은 벚꽃을 좋아한다는 것, 다른 점은 행복을 추구한다는 것. 농담이고, 달랐지만 이 책 안에는 내가 자주 들어앉아있었다.

'성인이 되고 자취를 시작했다. 매달 삼십삼만 원을 내야 했기에 마음에 새기고 다녔다. 어쩌다 귤이 먹고 싶으면 삼십삼만 오천 원이 필요했다. 커피가 마시고 싶으면 삼십사만 원, 치킨이 먹고 싶으면 삼십오만 원. 동네를 돌아다니며 귤을 제일 저렴하게 파는 곳을 찾아냈다.'

꼭 내가 쓴 글 같았다. 오늘도 나는 마트 말고 동네에서 가장 물가가 싼 도매시장에 갔다 왔다. 이유는 간단했다. 마트보다 저렴하고 포장재 쓰레기가 안 나온다는 점 때문이었다. 시장이라고 하기엔 가게 몇 칸뿐이지만. 가서 오렌지 9개를 3000원에 샀다. 장갑을 끼고 박스 안에 있는 오렌지 중 9개를 열심히 고르는 아주머니께 물어봤다. "어떤 게 싱싱한 거예요?" "안 무르고 딱딱한 거." 대부분 무른 것들이었다. 그래서 하나에 400원도 안되는 가격이 될 수 있는 거구나. 소쿠리에 가득 담겨있는 햇양파는 사면 하루 만에 먹어야 될 것 같이 생겼다. 여기저기 물러있었고 군데군데 까맸다. 귤 3000원, 딸기 한 팩 2000원, 새송이버섯 700원, 광천김 2000원. 7700원을 현금으로 결제하고 집으로 털레털레 걸어오는 길이 어딘가 씁쓸했는데. 이 글을 쓴 작가도 그런 헛헛한 마음이 잦았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이 글을 읽으면서 "사랑"과 "행복"에 대해 아주 오랜만에 생각해봤다. 이제는 너무 오그라들고 냉소적으로 느껴지는 저 두 단어를 이 책이 아니었다면 곱씹어 보지 않았을거다. 4년간 배운 전공은 내팽개치고 출판사를 느슨하게 준비하고 있는 내가 바란 것도 사실 행복이었던 걸까. 새삼스럽게 그런 생각이 들었다. 4년째 연애를 이어오고 있는 J와의 관계도 사실 온통 사랑이었을까. 그 답은 잘 모르겠다. 다만 이 책에 있는 글들이 내게 '행복해지고 싶어서 그랬을 거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작가는 '나의 쓸모를 증명하려고 살아가는 것에 대한' 의문을 던지기도 했다. 나는 언젠가부터 "행복해지자"라는 말에 별 감흥이 없어졌다. 행복을 목표로 할수록 종종 더 불행해지는 것 같았으니까. 작은 행복에도 종종 심드렁했다. 그럼에도 행복을 이야기하는 이 책에 마음이 갔던 건 동시에 작가가 "청승 떨기엔 부족한 서사라는 걸 안다고" 담담하게 이야기할 줄도 아는 사람이었기 때문일 거다. 슬픈 와중에도 농담을 던질 줄 아는 사람이라서, 그 마음을 연습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을 것 같으니까.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이 잘 자길 바라는 다정한 사람이니까. 모양은 균일하지 않지만 자꾸만 먹고 싶은 쿠키 같은 글들. 내일이 오는 게 두려웠거나 두려운 사람들에게 이 책이 가닿았으면 좋겠다. 읽기 전보단 조금이라도 더 푹 잘 수 있을 거다. 당신 곁에 가만히 앉아서 결은 다르겠지만 의미는 선명하게 닮은 채로 "내일은 내일의 해가 뜨겠지만 오늘 밤은 어떡하나요"라고 같이 묻는 한 사람의 이야기가 담겨있는 책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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