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이름이 알려져서 자신의 분야에서 종횡무진 하고 있는 이들의 처음을 찾아가는 일은 무척이나 즐거운 일이다. 현재의 그들을 과거의 모습과 연결 지으며 의미를 찾아보기도 하고, 스스로 고백하는 그때와는 달라진 점들을 듣는 것도 흥미롭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들의 과거를 한 발 떨어져 바라보다가도 어느 순간 스스로를 대입해보게 된다. 그래서 이들의 ‘처음’은 누군가에게 희망이 되기도 한다.
이런 의미에서, 한국영화감독조합 소속 31명 영화감독의 처음이 담긴 #나의첫번째액션 은 참 의미 있는 책이다. 한국 영화의 위상이 높아진 지금, 어려운 시기를 지나온 이들의 노력은 영화라는 장르를 지켜준 기둥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12년 전, 2014년에 한국영화감독조합 17인의 데뷔작을 만든 이야기를 엮어서 낸 <데뷔의 순간>을 두 배 분량으로 개정증보해서 1권과 2권으로 내게 되었다고 한다.
불확실한 미래에 꿈 하나로 돌진했었던 이들의 취준생이었던 시절의 이야기는 어떤 영화보다도 흥미로웠다. 시나리오는 퇴짜를 맞고 편의점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우고, 교통비도 없어서 걸어 다니고, 친구에게 쌀을 얻어올 수밖에 없었고, 간신히 출발선에 서는 듯 하다가도 순식간에 엎어지기도 하면서 꿈을 지켜나간 이야기가 가득한 책이었다.
또한 봉준호, 박찬욱, 장항준, 강윤성, 최동훈, 윤단비 등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감독들도 솔직담백하게 고백하듯 풀어놓았는데, 특히 박찬욱 감독의 철학과 미술에 대한 관심, ‘진짜 이 길이 내 길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을 때 ‘이것밖에 없다’는 생각으로 영화를 지속하게 되었다는 내용이 기억에 남는다. 이런 질문은 앞이 확실하게 보장되지 않는 길을 가고 있는 모든 이들이 할 수밖에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밖에 없다’.... 나에게도 새기고 싶은 답이다.
화려한 영화 뒤편에 있는 31명의 영화감독들의 처음에 관한 이 책은, 영화 한 편이 나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과 재화, 노력이 필요한지 아주 잘 알 수 있게 해주었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길을 시작하고 있는 지금의 나에게 용기를 주는 시간을 선사해주기도 하였다.
영화 이야기만으로도 충분히 재미있었지만, 무엇보다 불확실한 길을 버티며 자기만의 ‘첫세계’를 만들어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오래 남았다.
_.. 다수가 좋아할 만한 안전한 영화보다는 그런 영화들이 많이 나올 수 있는 환경이 되었으면 한다. 영화를 꿈꾸는 모두의 ‘첫세계’를 응원하며._p199 윤단비 감독 (1권)
_‘진짜 이 길이 내 길인가’ 하는 불확실성과 마주하며 버틸 수 있었던 힘은 ‘이것밖에 없다’는 생각이었다.
.... 머나먼 후배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얘기는 하나다. 영화로 먹고살기로 결심한 이상, 자기가 뭔가 대단한 일이라도 할 것 같은 착각이라도 하고 살아야 그 힘든 시기를 견딜 수 있다고._p57 박찬욱 감독 (2권)
_여전히 영화감독을 꿈꾸는 사람들, 더 넓게 힘든 빙하기를 겪고 있는 우리 영화인들 모두 행복해야 한다. 그러려면 우리에게 남은 건 ‘이야기’뿐이다. 끊임없이 이야기를 찾아다니고 만들어야 한다.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지 못하면 녹슨 기계가 될 것이다. 우리 모두 ‘죽지 않고 살아 있다!’ 하는 걸 보여주자._p240 장항준 감독 (2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