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훔레바이 가, 이 얼간아."
훔레바이 가라니! 난 거기서 자랐다. 거기서 태어났고, 평생홈레바이 가에서 살아왔다. 아담스투엔에 거처를 정한 건 겨우반년 전이다.
"혹은 이리스바이 가."
그건 같은 지역이다. 이리스바이 가는 훔레바이 가와 붙어 있거든.
"어쩌면 클뢰베르바이 가!"
그것도 옆동네이다. 난 어릴 때 종종 클뢰베르바이 가의 주택가에 있는 공원에서 놀았다. 그곳에는 모래밭과 철봉도 있었던것 같다. 몇 년 전에는 벤치들을 다시 들여놓았지.
난 새삼 오렌지소녀를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소스라치게 놀랐다. 깊은 최면에서 깨어나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난 그녀의 두손을 꼭 모아잡았다. 거의 울음을 터뜨릴 지경이었다. 겨우 입을 열어 부르짖었다.
"베로니카!"
나도 찾아냈다. 이제 난 그 오렌지 소녀가 누구였는지 알아냈다. 어쩌면 그녀가 베로니카라 불린다는 걸 알기 전에 이미알아맞힐 수도 있었을 것이다......
내가 여기까지 읽었을 때 엄마가 다시 노크하며 말했다.
"벌써 10시 반이야, 게오르그, 식탁에 먹을 걸 차려놨어. 아직읽을 게 많니?"
난 좀 엄숙하게 말했다.
"친애하는 꼬마 오렌지 소녀, 난 당신을 생각하고 있소. 좀더기다려줄 수 있겠소?"
난 문을 투시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엄마는 아무 말씀도 하지않으셨다. 난 다시 말했다.
"우린 살아가면서 이따금 정말이지 서로를 좀 그리워해야 하는 거예요."
아무런 대답이 없었으므로 난 덧붙였다.
"꼬마 신사가 여기 있나요? ....
문 저쪽에서는 여전히 깊은 침묵이 흘렀다. 그때 난 엄마가몸을 나무문에 기대는 소리를 들었다. 엄마는 문을 향해 낮은소리로 노래를 부르셨다.
"그는 꼬마 숙녀들과 놀 수 있지요. ....…."
엄마는 노래를 더 이상 부르지 못했다. 울음을 참을 수 없었을 테니까. 엄마는 울면서 속삭였다. 나도 속삭이듯 노래를 불러드렸다.
이런 새로운 대화 방식은 나에게는 좀 충격적이었다. ‘우리‘,
그 말에 하나의 원이 포함되어 있는 것 같았다. 전 세계가 더 차원 높은 하나의 단위에 녹아드는 것 같았다.
젊음. 게오르그, 젊은이다운 경쾌함이지!
이따금 난 망원경이 우주의 눈이라고 상상한다. 전 우주를 볼수 있다면 그렇게 불리는 것도 당연하지 않겠니? 내가 무슨 생각에서 이런 말을 하는지 넌 이해할 수 있겠니? 우주 자체가 이상상할 수 없는 기구를 탄생시킨 거란다. 허블우주망원경은 우주적 감각기관이란 말이다.
우리가 현재 살고 있다는 사실, 우리 모두가 단 한 번 아주 짧게 삶을 체험하도록 허용돼 있다는 사실은 얼마나 엄청난 모험이겠니? 어쩌면 저 우주망원경은 우리가 이 모험의 실체를 파악하는 일에 도움을 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저 대기권 밖 은하들의 뒤에는, 인간이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의 답이 있을지도 모르겠구나.
이 편지에서 난 여러 번 수수께끼‘ 라는 단어를 썼다고 기억한다. 우주를 이해하려는 노력은 하나의 거대한 퍼즐게임에 비유할 수 있을 듯하다. 여기서 중요한 게 심리적인 것이든 정신적인 것이든 마찬가지겠지. 어쩌면 이 수수께끼의 해답은 우리안에 있는지도 모른다. 우린 여기에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지.
우리가 우주란 말이다. 우리가.
그런 자연에 대해 그렇게 꾸밈없고 직접적인 감동을 넌 고전문학, 예컨대 그림(Grimm) 형제의 동화집 같은 데서 찾을 수 있을 게다. 그것들을 읽거라, 게오르그야. 아이슬란드의 설화집을읽어보렴. 그리스와 고대 북유럽의 신화들을 읽도록 하렴. 구약성서도 읽어보거라.
세계를 관조해보렴, 게오르그야. 물리나 화학에 지나치게 빠지기 전에 세계를 바라보란 말이다.
자연이 기적이 아니라고 말하지 말거라. 세계가 동화가 아니라고 말하지 말란 말이다. 그걸 꿰뚫어보지 못하는 사람은 동화가 끝날 무렵에 가서야 겨우 알게 될지도 모르지. 그제서야 우리는 눈을 가리고 있던 막을 찢어버릴 마지막 가능성을, 이 기적에 우리를 몰입시킬, 그러나 이제 작별을 고하게 될, 떠나지않으면 안 될 최후의 가능성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란다.
여기서 내가 말하고 싶은 걸 넌 이해할 수 있니, 게오르그?
누구도 유클리드의 기하학이나 원자의 주기율과 눈물 흘리며 작별한 적은 없었다. 그 누구도 인터넷이나 구구단과 헤어져야 해서 눈물방울을 쥐어짠 적은 없었지. 눈물로 헤어져야 하는 것은…… 우리가 이별을 고해야 할 세계란다. 바로 인생, 동화, 모험이다. 그 모든 것과 헤어지면서 우린 진정 사랑하는 몇 안 되는 사람과도 작별해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