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그렇지만, 대체로 많은 사람들은 정곡을 찌르는듯한 내용보다는 다소 한발짝 떨어져서 좋은 글들을 적어둔 책에 위로를 받는 경향이 있다. 이 책은 그런점에서 많은 사람을 기분좋게 해주지는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서점에서 단숨에 읽어버린 책. 전작을 몰랐던터라 작가의 유전자 지배사회도 사서 손에 들고 왔다. 다소 낯설고 직설적인 필체인 듯 하지만, 과학자의 논리를 차분하게 풀어낸 점에서 보기드문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흔히 접할수 있는 뻔한 주장만 있고, 근거는 없는.. 생각을 나열하기 급급하고 지식 자랑하려는 책은 아님이 분명하다. 공들여서 생각을 정리하고 다듬는 습관이 베인 과학자의 사유를 따라가는 재미가 있는 좋은 책이다.
이 책이 굳이 정치적인 편향이나 이대남을 질타하는 혹은 보수적인 사람에 대한 혐오를 조장하는 내용은 절대 아닌것은 분명하다. 책에서 우리가 건강한 몸을 가지고 태어나지 못하거나, 살면서 질병을 얻는것 처럼, 우리의 뇌도 그런 오작동을 일으키는 것에 대해서 논리적으로 풀어주고 꼼꼼하게 스케치 하고 있다.
책의 들어가기는 이 책을 쓰게 된 저자의 동기가 잘 나와 있었고.. 우리가 흔히 말하는 정치적으로 민감한 진보와 보수의 정의에서 벗어나서 하나의 세계관 혹은 하나의 통합된 틀로 꾸려가겠다는 각오? 를 내비치면서 기존에 산발적으로 보고되었지만, 전문가 집단에서 연구자들이 많은 연구들로 쌓아 올린 진짜! 학문적인 진보와 보수를 논하겠다고 표명하였다.
1장 보수의 심리는 사회학이나 행동학적 측면에서 보수를 정의하고 '보수가 지키고자 하는것은 기존 체제가 아니라 기존 체제를 쌓아 올리게 된 인간문명의 바탕이 되는 보수적 본능'임을 짚었다. 지키려고 하는것이 아니라 옹호한다는 표현이 더 적합하다고 강조한 부분이 기억에 남는다. 계산을 해서 지키기 보다는 그 체제를 옹호 하는것이 본능적으로 자연스럽다는 논리가 통쾌하게 보였다. 이로 인해 많은 산발적으로 흩어진 시장경제나, 기독교, 반페미니즘, 인종차별 등 대부분의 보수의 관점이 하나로 엮을수 있게 된것 같다.
2장 보수의 뇌는 인간은 합리적인듯 하지만, 대체로 비합리적이고 정확한 계산에 따른 결정을 하지 않음을 받아들이면서 읽어 가면 이해가 쉽다. 이 장에서는 우리의 이러한 비합리적 사고가 보수적 베이지언과 휴리스틱에 의해서 오작동의 결과로 초래 될 수 있음을 지적했다. 이부분에서 가장 흥미롭게 느꼈다. 이건 진보냐 보수냐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이기에 어쩔수 없이 이러한 본성을 타고났고, 이것은 생존을 위해서 인류가 문명사회 이전부터 진화의 결과물로 획득된 부분임을 단호하게 말해주고 있었다. 다만, 그런 '행동적인 인간'의 비합리적인 면모를 잘 다듬고 교정하면서 살아가자는 저자의 의도가 진지하게 베어있는 부분이었다.
보수의 유전자와 그리고 그 유전자와 환경의 상호작용 부분이 뒤를 이으면서 우리의 환경적인 요인이 유전자의 표현형에 얼마나 영향을 줄수 있는지에 대한 부분을 예시를 들어가며 꼼꼼하게 펼쳤다. 여기서 역시. 저자의 전공이 진화유전학자임을 여실히 들어났다. 심리, 뇌, 이런 것들이 결국 유전자에 의해서 설계된 부분이고 이런 부분이 환경에 의해서 발현의 양상은 달라질수 있기에 보수성 혹은 본능에 의한 구축된 세상의 가치? 혹은 이치?가 변화가능하고 발전시킬수 있다는 잠재성을 드러내려고자 했다.
끝으로 문화의 부분에서 우리는 그 본능이 구축한 세상을 만나게 된다. 우리나라만이 아니라, 전세계의 자유시장경제의 견고한 위치, 실용주의노선에 대한 손쉬운 합의가 이루어 질수 있는 이유를 지금까지 설명한 보수적 본능으로 충분히 설명하고 있다. 이부분에서 그저 고개가 끄덕여졌다.
가장 핵심적으로 하고 싶은 내용 (주장)은 나가며에 있었다. 나가며를 읽게 되면 적어도 책을 읽지 않은채, 던지는 비방하는 글들은 감히 적지 못할 것 같다. 이 책을 책방에서 30분만 읽겠다고 한다면, 마지막 장을 읽기를 권한다. 다만, 집어든 순간 이 책을 놓을 수는 없을 것 같다.
원래 오프라인에서 책을 보는 편이라 리뷰를 쓰지는 않는다. 하지만, 다소 노골적인 표지와는 다르게 오랜만에 좋은 책을 만났다는 생각에 기억을 되살려 적어내려봤는데. 아마도 기억력의 한계 때문에 잘 표현이 안 된 것도 있는 것 같다. 인간을 사랑하는 한 과학자의 색다른 면모가 엿보이는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