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저녁강물님의 서재
  • 새벽이 되면 일어나라
  • 정명섭
  • 9,900원 (10%550)
  • 2021-01-12
  • : 203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페허가 된 도시로 들어가는 초입에는 추락한 여객기의 잔해가 보였다."

도시에는 이제 19살이 되기 전의 아이들만 일부 살아남아 있습니다. 다른 대부분의 어른이나 아이할 것 없이 좀비가 된 사람들에 의해 죽고, 도시는 10년째 페허가 된 채 먹을 것을 찾아다니는 좀비만 남아있는 살벌한 곳이 되어버렸습니다.

 

도시가 이렇게 된 이유는 아이들이 공부할 때 잠을 쫓기 위해서 먹은 각성제 코타놀 때문이었습니다. 맨처음 고등학교 3학년 학생이 좀비로 변해, 같은 학교 학생을 살해했고 전국의 각 도시에도 곧이어 일어났으며, 전 세계에서 동시에 일어났습니다. 온 세계의 사람들이 좀비로 변하고 세상은 파괴된 것입니다.

 

천문대로 몸을 피해 살아남은 학생들은 19살이 되면 그들도 좀비로 변하게 됨을 알게 됩니다. 그러자 그들은 남아 있는 사람들을 위해 그들만의 규칙을 만드게 됩니다. 19살 생일날 새벽이 되면 일찍 일어나 좀비로부터 보호해 주는 천문대를 떠나기로 말입니다. 저는 이 대목이 가장 인상깊었습니다. 19살이 되면 좀비가 된다는 그 처연한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 순간이 오기 전까지 모두의 삶을 정상적으로 영위하기 위해 다같이 노력합니다. 좀비들의 공격이 도사리고 있는 페허가 된 도시에 가서 먹을 것을 구하고, 필요한 물품을 가져옵니다.

 

좀비는 스스로 누구인지도 모른 채, 과거의 기억을 모두 잊은 채 사람을 뜯어먹거나, 좀비를 뜯어 먹으며 살아가는 죽지도 살아있지도 않은 존재입니다. 내가 며칠 후면 곧 그런 존재가 된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가 있을까요? 남아 있는 사람들을 위해 아직 사람인 채로 생일 날 아침이 되면 좀비들이 득실 거리는 바깥으로 나갈 수 있을까요?

 

“이제 몇 달 후에 좀비로 변하게 될 테니까요. 하지만 그건 우리에게 주어진 숙명이에요. 피할 수도 없고 비껴가지도 않아요. 그러니까 남은 삶을 열심히 살도록 해요.(p.135)”

 

하지만 소설 속 아이들은 그들이 정한 규칙대로 19살 생일 날 새벽이 되면 일어나서 그들의 보호처인 천문대를 떠나게 됩니다. 떠나는 자와 남는 자 모두 쓰린 고통이겠지요. 그 고통은 10년 째 이어져 오고 있고, 그것으로써 비록 해가 갈수록 남아있는 사람은 적어지지만, 생존할 수 있게 됩니다. 이런 것이 가능한 이유는 그들이 언젠가는 구조될 것이라는 희망때문입니다.

 

“규칙이 있어야 구조대가 올 때까지 살아남을 수 있으니까.(p.166)”

 

사건은 인구 증가로 인해 오염된 세상을 새롭게 건설하기 위한 소수 사람들의 음모로 시작되었습니다. 그들은 좀비가 되는 코타놀을 만들어 세상 사람들에게 팔았습니다. 사람들을 좀비로 만들고 자신들이 선택한 소수의 사람들만 벙커로 들어가게 합니다. 그들이 꿈꾸는 새로운 세상을 건설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그러나 절망 속에는 반드시 희망의 씨앗이 살아 있는 법. 지구 재건 목적이 잘못 되었음을 깨달은 한국의 과학자 2명은 벙커로부터 탈출하고, 좀비가 되는 것을 막는 백신을 개발하게 됩니다.

 

19살 생일을 며칠 남겨두지 않는 주인공은 페허 도시에 물품을 구하러 갔다가, 백신 개발에 성공했음을 알리는 과학자들이 보낸 메세지 쪽지를 발견합니다. 이에 주인공은 같은 19살인 친구와 함께 생존해 있는 '모두'를 위해서 백신이 있는 곳을 찾아 나서기로 합니다.

 

“어차피 몇 달 있으면 나도 좀비로 변해. 자그마한 희망이라도 있으면 도전해 봐야지. 그리고 우리 모두를 위해서 꼭 해야 할 일이야.(p.137)”

 

작가는 세상은 학생들이 자신의 의지와 생각을 가지는 대신 시키는 대로 하기만을 바란다고 했습니다. 좀비처럼 말입니다. 어른들은 청소년이나 아이들은 혼자서 세상을 살아갈 수 없으니까 어른들이 정한 규칙과 테두리 안에서 살아가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소설 속 아이들은 망가져 버린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치면서, 좀비로 변한 세상 속에서 그들 스스로 규칙과 테두리를 만들어 살아가게 됩니다. 아이들 스스로 자신들의 삶을 보호하고, 목적과 희망을 찾을 수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작가는 소설 속에서 아이들을 감금하고, 좀비로 변해버린 어른들의 모습이 우리 세상의 어른의 모습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세상을 깨끗하게 만들자고 사람들을 좀비로 만들어 죽인 일부 어른들의 계획과 목적이 잘못된 것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 소설은 영어덜트 좀비 소설을 표방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소설은 어렵지 않게 복잡하지 않은 구조로 이야기를 엮어나갑니다. 큰 줄기에서는 짐작이 되는 이야기 결말이지만, 곳곳에 뻔하지 않는 요소들을 배치해 두고 있기 때문에 뒷이야기를 궁금해하며 읽었습니다. 좀비 소설을 좋아하는 청소년이라면 즐겁게 읽으면서, 힘든 상황 속에서도 스스로 규칙을 만들고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 주인공들의 모습을 통해 자신의 희망의 씨앗을 찾아낼 수도 있지 않을까합니다.

 

“삶은 선택이 아니니까요.(p.75)”

“우린 열아홉 살 생일이 되면 왜 좀비로 변합니까?(p.74)”

 

자신의 삶을 선택하지 못하고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선택지 속에서 공부에 이끌려 가고 있는 우리 청소년들의 모습을 봅니다. 작가는 그런 우리 사회의 일면을 좀비로 표현합니다. 그러나 좀비가 가득한 세상 속에서 친구를 구하고, 스스로 생존하는 규칙을 만들어내고 백신을 찾아나서는 십대들의 모습을 통해, 미래의 희망의 씨앗이 아이들에게 자라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좀비라는 끔찍한 소재를 사용하고는 있지만 작가의 10대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볼 수 있는 소설입니다.

"페허가 된 도시로 들어가는 초입에는 추락한 여객기의 잔해가 보였다."

  • 댓글쓰기
  • 좋아요
  • 공유하기
  • 찜하기
로그인 l PC버전 l 전체 메뉴 l 나의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