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카이넨님의 서재
  • 코끼리를 목욕시키는 여자
  • 화바이룽
  • 16,650원 (10%920)
  • 2026-05-22
  • : 1,720

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아무도 없는 바닷가를 바라보는 여자의 쓸쓸한 뒷모습, 그리고 코끼리를 목욕시킨다는 도통 감이 잡히지 않는 기묘한 제목. 표지에서부터 호기심을 자극하는 화바이룽의 소설 [코끼리를 목욕시키는 여자]를 읽어 보았습니다. 


개인적으로 평소 책날개를 거추장스럽게 여겨 책을 읽을 때 바로 버리는 편인데요. 이번에도 책날개를 유심히 보지 않고 바로 본문을 읽은 덕분에 남편 밍런의 죽음을 갑작스럽게 맞닥뜨리게 되었습니다. 예상치 못한 전개에 당황하면서도 대체 이 이야기가 어떻게 마무리되려고 이러지 싶더라고요.   


그리고 후반부에 밝혀지는 진실과 결말은 더 큰 충격을 안겨주었습니다. 밍런의 비밀, 그리고 정팡의 선택은 결국 이 소설의 제목인 [코끼리를 목욕시키는 여자]라는 기묘한 문장으로 수렴이 되더라고요. 남편이 감추고 있었던 진실을 알게 된 후, 그가 왜 그토록 가족을 밀어냈는지, 왜 파멸의 길을 걸었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당신에 대한 감정이 죽었어. 

어쩌면 당신만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감정이 죽은 걸지도 몰라. 

28쪽


남편 밍런은 어느 날 아내 정팡에게 폭탄선언을 합니다. 결혼한 이래로 부부 사이에는 코끼리가 존재했고, 자신들은 코끼리의 배 밑이자 네 발 사이에서 코끼리를 집 삼아 살며 아이 둘을 낳아 기른 것뿐이라고요. 어느새 큰 아이가 일곱 살, 둘째가 여섯 살이 되었으니 이제 혼자만의 삶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황당한 이별 통보였습니다. 십여 년 동안 지켜 온 가정이 남편에게는 벗어나고 싶은 짐이었다니, 정팡이 받은 충격이 얼마나 컸을까요. 


더 기가 막힌 것은 그 이후 남편이 보인 행보입니다. 이혼 이후 살인을 저질러 교도소에 수감된 밍런을 보러 아이들과 함께 면회를 갔지만, 그는 아이들을 반가워하지 않습니다. 접견실에 앉은 지 5분도 되지 않아 "엄마 말 잘 들으라"는 말만 남기고 면회를 끝내버리는 밍런. 정말이지 헐크로 변신해 의자를 확 뽑아다가 밍런에게 던져버리고 싶다고 표현한 정팡의 깊은 분노에 저도 격하게 공감하게 되더라고요. 자녀에 대한 최소한의 책임마저 외면하는 모습을 보며 가슴이 갑갑해졌습니다. 


사랑받지 못한다는 느낌은 참으로 끔찍하지. 

끔찍하기 이를 데가 없어. 

207쪽


이혼 이후 정팡은 생계를 위해 요양 돌보미로 일을 시작합니다. 그곳에서 만난 위 회장 할아버지는 정팡의 사정을 듣고 위로하며 이런 말을 건넵니다. 생판 남인 사람도 정팡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공감해 주는데, 정작 남편이었던 사람은 아내에게 그리 미안해하지도 않습니다.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외면당한 상처를, 전혀 모르는 남에게 위로받는 정팡의 처지가 너무나 불쌍하더라고요. 


"왜 아빠가 살인을 하고 감옥에 갔느냐"라고 묻는 어린 딸에게, 아내 정팡은 "아빠는 자신을 지키려고 그런 거야"라고 달래줍니다. 그렇게 말하면서도 내심 스스로 확신이 없었지만, 소설 후반부 남편의 거대한 비밀이 밝혀지면서 정팡의 추측이 결국 맞았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밍런에게 결혼 생활은 껍데기처럼 무의미한 일이었지만 역설적이게도 그의 복잡한 삶을 이해하고 마지막 부탁을 들어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아내 정팡뿐이었다는 것이지요.


책을 다 읽은 후 계속해서 이런 질문이 남았습니다. 남편 밍런은 이혼을 선택하고, 살인을 저지르고, 결국 죽음에 이르는 시간동안 과연 단 한 번이라도 후회라는 것을 했을까요? 그리고 사랑이 대체 무엇이길래, 남편이자 아버지로서의 책임을 철저히 회피하고 떠나 버린 남자를 위해 정팡이 마지막까지 손을 내밀 수 있었던 걸까요? 


부부라는 관계에 대해 생각할 거리를 건네는 이야기였습니다. 가장 가깝기에 서로에게 가장 잔인할 수 있고, 그럼에도 끝내 외면할 수 없는 부부 사이의 연민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내밀한 심리와 관계의 본질을 파고드는 이야기를 찾으시는 분들께 이 책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 댓글쓰기
  • 좋아요
  • 공유하기
  • 찜하기
로그인 l PC버전 l 전체 메뉴 l 나의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