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시기적으로 이 책을 읽기에 딱이다. 겨울이라 춥고 빨리 어두워진다. 게다가 코로나 광풍이 2년 가까이 몰아치면서 ‘코로나 블루’라는 신조어도 생겼다. 코로나가 아니었어도 가족 내 갈등, 취업과 학업 문제, 사회적으로는 남녀갈등과 세대 차이 등등, 영혼의 밤은 우리 인생의 길목에 언제나 도사리고 있다. 이 책은 인생의 어느 시점, 혹은 평생, 영혼의 밤을 살아간 신앙의 선배 7명의 이야기를 우울증이라는 코드로 풀어낸 책이다.영혼의 밤은 이 세상에 태어나는 순간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다. 그런데 그중에 어떤 증상, 어떤 상태를 ‘우울증’이라는 병적 증상으로 볼 것인가, 이 판단은 숙련된 전문가의 영역이라 내가 말을 보탤 수는 없겠다. 다만, 저자는 31~32쪽에 무엇이 우울증의 증상인지 DSM-5에 나오는 내용을 인용한다.돌이켜보니, 나는 꽤 오랜 기간 이 증상들을 가지고 살았다. 특히 1988년 류머티즘 관절염 진단을 받고 투병하면서, 그 이후 쭉, 그렇게, 만성적인 우울증 증상을 갖고 살았다. 저자는 한나 앨런의 이야기에서 말한다. “습관과 생각, 심지어 작은 결정에 이르기까지 삶의 모든 부분에는 영적인 측면이 있다. 그런 시각으로 본다면 우울증은 영적 문제이다. 그렇다고 우울증을 영적인 문제로만 치부해서 원인을 영적인 부분에서 찾고 영적으로만 치료할 수 있다는 말은 아니다...몸의 상태가 나빠지면 영혼도 결코 평안할 수 없다.”(101쪽) 이처럼 몸과 마음, 영혼은 떼려야 뗄 수 없는 밀접한 관계 속에서 나라는 존재를 형성한다. 섣불리 믿음을 운운해서는 안 된다.하지만 나 스스로 우울증 증상을 ‘믿음 없음’으로 치환하며 자책한 기간이 길었다. 하지만 본인 스스로 우울증을 겪은 저자는 말한다. “다른 질병처럼 우울증도 사람마다 다른 증세를 보인다. 어떤 사람은 “절름거리더라도” 걸을 수 있지만 어떤 이는 완전히 드러눕는다. 일상에서 자기 일을 꾸역꾸역 해 나가면서 활동과 맡은 책임을 다하는 이들이 있는 반면 침대에서 일어나는 것조차 힘들어하는 사람도 있다는 말이다. 우울증의 증세가 누가 더 순종적이고 신실한지를 보여주지는 않는다.“(223쪽) 영적 스승으로 알려진 찰스 스펄전도 이렇게 말했다. “우울하다는 것이 은혜에서 멀어진다는 증표는 아닙니다. 기쁨과 확신을 잃은 때 도리어 영적으로 가장 크게 성장할 수도 있습니다.”(196쪽)저자는 이 책에서 마틴 루서 킹 주니어를 소개하면서 이렇게 서술한다. “이 책에 나온 인물 중 유일하게 현대적인 정신과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는 정신과 의사를 찾지 않았다. 어떤 면에서 충분히 이해가 가는 일이다. 자신에게 도움이 필요하다고 인정하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필요한가. 더는 의지만으로 견딜 수 없으며, 머리가 돌아 버린 것 같다고 고백하는 일은 누구에게나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237쪽) 우울증 증상이 한창이던 때, 30년, 20년전 쯤, 내 경우에도 전문가의 도움을 청하는 길은 가파르고도 높았다. 지금은 정신의학 전문의도 많아졌고 문턱도 낮아진 것 같다. 정신과, 정신과 병력에 대한 편견이 사라지길 바랄 뿐이다.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이야기가 모두 해피엔딩은 아니다. 시인이며 찬송가 작사자인 윌리엄 쿠퍼의 삶은 비극이다. 저자처럼 나도 의문이 많다. “왜 하나님께서 어떤 경우엔 기적적으로 치유하시고 어떤 경우엔 그러지 않으시는지 이해하기 위해 나는 발버둥친다.”(175쪽) 이땅에 사는 동안 “아직 끝나지 않은” 긴장의 고통(163쪽)을 부여잡으며, 아직 오지 않은 구원을 밤을 새우는 심정(163쪽)으로 기다린다.이 책의 저자 다이애나 그루버는 “영혼의 밤을 지날 때”가 그녀의 첫 책이다. 자신이 우울증을 앓았다고 하는데, 우울증을 겪었다고 누구나 이런 균형 잡힌 생각을 하게 되는 건 아니다. 그녀의 글은 따뜻하면서도 냉철하다. 약하고 힘든 사람들 편에 기울어져 있지만, 같이 ‘폭망’하는 사람은 아니다. 무겁지만 희망이 무엇인지, 가야 할 방향을 확실하게 알고 글을 썼다. 문장들도 참 좋다. 저자의 글을 읽고 나니, ‘글은 역시 우울한 상태에서 써야 깊이 있는 문장이 나오는 건가?!’ 싶다. 영혼의 밤을 살아내느라 지치고 고단한 사람들에게 이 연말, 이 책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