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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ykakim님의 서재
  • 확신의 죄
  • 피터 엔즈
  • 12,420원 (10%690)
  • 2018-10-15
  • : 983
10년 전 오늘, 이런 글을 썼다고 페북이 친절하게 알려준다. 무지막지하게 내린 폭우가 남긴 아비규환의 현장을 TV로 보던 8살 막내, 혼자 중얼거린다. “하나님은 왜 이런 일이 일어나게 하실까요? 하나님이 나쁜 분이신가요? 무슨 이유가 있겠죠. 근데 정말 하나님이 있기는 한 걸까요?” 8살 아이의 신학적 고뇌. 옆에서 이 말을 듣고 있던 나는 하나님을 변호해야 하나, 잠깐 망설였지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사실 나도 이런 재앙 앞에서 묻고 싶은 바니까.2년 전에 이 책을 번역한 후배가 내게 이 책을 선물했다. 그동안 읽지 않고 있었는데 요즘 하도 심심해서 이거라도 읽어볼까 싶어 집어 들었다. 그러고는 거의 모든 페이지마다 좍좍 줄을 그었다. ‘왜 이 책이 알려지지 않았지?’ 의아했는데, 알고 보니 저자 피터 엔즈는 이미 유명한 분이었다. (나만 몰랐나?) 피터 엔즈의 책은 우리나라에서 『성육신의 관점에서 본 성경 영감설』(CLC, 2006), 『아담의 진화』(CLC, 2014), 『성경 무오성 논쟁』(새물결플러스, 2016)이 출판되었고, 2018년에 비아토르에서 『확신의 죄』(비아토르, 2018)가 나왔다.저자에 대한 어떤 정보도 갖고 있지 않은 상태에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질문이 많은 것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신중한 처사가 아니라고 배운 피터는 본인이 하나님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단 한 번도 솔직하게 탐색해 본 적이 없다고 고백하면서 포문을 연다. 궁금증이나 이해되지 않는 것에 질문하지 못하고 신학교를 졸업하고 신학 교수까지 되었다. 그러다가 ‘일련의 사건’들로 인해 믿음이란 무엇인지 솔직하게 고민하기 시작한다. 나는 그 사건이 대체 무엇인지 읽는 내내 궁금했는데, 피터는 맨 마지막 장에 가서야 그 일을 이야기한다. 피터의 다른 책을 먼저 읽었거나 그의 스토리를 아는 독자들이야 상관없겠지마는, 무슨 일 때문에 잘나가던 신학 교수가 믿음을 의심하게 되었나 궁금한 나 같은 독자는 똥줄 타겠다 싶다. 나는 주로 내 얘기를 도입부에 깔고 이야기를 진행하는 방식으로 글을 썼는데 이런 구성도 신선하다.그 사건들로 말미암아 피터는 신앙에 대해, 저 위에서 언급한 8살 막내처럼, 질문하기 시작한다. 그 과정에서 자기 신앙을 객관적으로 바라보았다. 마침내 그는 ‘되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다. 몸담고 있던 교회, 교단, 교리, 그 안에서의 성경해석 등, 내가 진리라고 믿었던 것들이 사실은 거짓이거나 상대적이라는 걸 깨닫게 되면 다시는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법이다. 피터는 “우리는 특정 전통의 맥락에서, 과거와 현재가 있는 사람으로서, 타인들과 함께하는 공동체 안에서 성경을 해석하는데, 그 어느 것도 절대적이지 않다”고 말한다. 우리는 인간이고 창조 세계가 시공간의 제약을 받는 것처럼 인간은 망가지고 제한적인 방식으로 하나님을 생각할 수밖에 없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우리가 믿는 것에 대한 확신을 동일시하는 것, 건전한 믿음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올바름이 필요하다는 당위”, 피터는 이것을 ‘확신의 죄’라고 부른다. 피터는 “익숙한 것에서 익숙하지 않은 것으로 나아가면서 하나님을 신뢰하는 법을 진정으로 배우는 여정”이 신앙이라는 것이다.좋은 신앙은 이런 것이고 이래야 하고 저것을 하지 말아야 하는, 잘 짜인 각본에 들어오지 않는 혹은 들어오려 하지 않는 것은 신앙이 아닌, 깎고 깎고 또 깎아내서 그것만이 신앙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을 심심찮게 만난다. 피터는 특정한 믿음 곧 올바른 생각에 집착하는 지식에 기초한 믿음이 다윈과 고고학, 독일 성경학자들에 의해 공격을 받았다고 설명한다. 신도들이 믿음을 잃게 될까 공포에 빠진 근본주의자들이 택한 방식은 소신을 굽히지 않고 성경을 옹호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자기들 방식대로 교회 생활을 하고, 성경이 제공해야 한다고 믿었던 지적 확신을 옹호하기 위해 오랜 세월 지적 반작용 모드로” 살아간다. 큐티로 유명한 교회에 다니는 형부가 떠올랐다. 그는 창세기에 의하면 지구의 나이는 6천 년이고, 문자 그대로 6일 동안 모든 창조가 이루어졌다고 말했다. 반박하려는 내게 형부는, 성경을 그런 식으로 네 맘대로 해석하면 안 된다고 했다. 현실에서는 제법 합리적이고 이성적이라 여겼던 형부였는데. 동성애 반대 구절이라고 알려진 레위기와 로마서 본문을 해석하는 데도 신학자들 사이에 다양한 견해가 있다는 내 말에 파르르 떨던 어떤 사모님도 생각났다. 이 책을 읽으면서 깜짝 놀랐던 점은, 이 책이 레이첼 에반스가 쓴 『다시, 성경으로』와 매우 닮았다는 것이다. 이 책이 『다시, 성경으로』보다 먼저 출판되었기에, 어쩌면 레이첼이 이 책을 참고했을 수도 있겠다. 두 사람 모두 보수적 신앙생활을 해오다가 ‘논란’에 휩싸여 오래 몸담았던 교회(교단, 신학교)를 떠난다. 그러면서 되돌아올 수 없는 강 저편에도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알고 두 사람 모두 성공회 교회에 정착한다. 그렇다고 원래 자기가 있던 자리를 비난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그곳에도 계시고, 하나님의 백성은 온갖 교파 안에 있게 마련이라고 말한다. 『다시, 성경으로』처럼 이 책도 성경의 전반적인 내용을 훑는다. 창세기, 모세오경, 시편과 전도서와 욥기, 신약으로 넘어와서 예수님과 바울의 이야기까지, 답을 찾아야 한다는 필요를 내려놓고 ‘하나님을 향한 철저한 신뢰’라는 줄기로 성경을 풀어낸다.저자가 본인이 겪은 비극에 관해 썼구나 하고 추정할 만한 구절도 보인다. 이 구절들은 현재 한국 개신교 안에서도 근본주의 신앙을 수호하려는 사람들에 의해 똑같이 자행된다. 그의 말을 들어보자.“복음을 수호하라”는 높이 솟은 기치 하에 밀실 정치 공작, 가십, 상대의 인격 비방, 거짓말, 복수, 심지어 생계 파괴 등이 유감스럽지만 필요한 전략으로 용인된다...하나님과 하나님 나라를 섬긴다는 명목으로 반대파를 처단할 때 나타난다. 나는 그런 기독교 하위 그룹의 행동이 “공적 업무일 뿐 개인 감정은 없다”라는 미명 하에 옹호되는 것을 직접 목격한 적이 있다.그는 이어서 말한다. “올바른 생각에 대한 집착과 고수는 우리를 끔찍한 사람으로, 우리 주변 사람들을 비참한 사람으로 만든다. 하지만 우리에게 들을 귀가 있다면, 여기에도 하나님의 순간은 존재할 수 있다. 어쩌면 하나님은 여기에도 계실지 모른다...하나님에 대해 올바른 지식을 갖는 것과 내가 아는 내용에 모든 사람이 동의함을 확인하는 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일이 아닐 수도 있다는 사실을 점점 더 확실히 깨닫게 되었다...이 땅에서 내 목적은, 먼저 사상경찰이 되어 다른 이들의 사상을 정렬한 다음에야 그들을 사랑하는 것이 아닐 것이다. 어쩌면 내 최우선 과제는 하나님에 대한 나 자신의 확신을 걸고 다른 이들을 사랑하는 것일지도 모른다.”읽으며 피식피식 웃음이 난 대목도 있다. 피터는 거듭거듭 자기 얘기가 정답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이건 소위 ‘논란’의 당사자가 되어본 사람이라면 공감할 수 있다. 피터에 비할 바는 아니나 나 역시 '논란'이 되어본 경험이 있어서다. 그는 <나니아 연대기>에서 아슬란이 샤스타에게 하는 이야기를 거론하면서 자기가 모든 사람의 말을 대변하는 게 아니라 본인의 얘기를 하는 거라고 강조한다. “얘야, 나는 그 애 얘기가 아니라 네 얘기를 하고 있는 거란다. 누구나 자기 얘기만 들으면 되는 거야.” 또한, “이것은 오롯이 내 경험이기에, 남들도 다 그래야 할 필요는 없다.”, “나는 그랬다. 남들은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피터, 잘 알겠어요. 이제 이런 말은 그만해도 될 거 같아요.)이 책의 주제를 요약한 한 문장, “우리가 아는 바가 무엇이든지 간에, 신뢰는 역사한다.” 책 뒤쪽 주註에는, 강 건너편에서 피터가 하나님을 신뢰하도록 도와준 수많은 신앙의 형제자매들과 그들의 책을 소개하고 있다. 나도 잘 적어놓았다. 어차피 무더위와 코로나로 어디 나갈 수도 사람들을 만날 수도 없으니, 이들의 도움을 받아 레이첼과 피터가 경험한 신앙생활을 추구해 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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