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남자가 죽었다. 부유한 지역 유지였던 그는 단검에 목이 찔린 채 발견된다. 살인이 있던 밤 많은 사람이 그의 저택에 드나들었고, 그들 모두는 유력한 용의자다. 가장 의심스러운 피해자의 양아들은 사건 직후 모습을 감춘다. 저마다의 사정과 범행 동기를 가진 인물들 속에서 수사는 점점 미궁에 빠진다.
하지만 걱정 마시라. 마침 이곳에는 은퇴한 명탐정이 있었다. 그의 이름은 에르퀼 푸아로! 작은 회색 뇌세포를 이용해 수수께끼를 해결할 유일한 희망이다. 남들이 놓치기 쉬운 부분에 집중해 놀라운 추리를 선보인 푸아로는 마지막에 범인을 지목하며 피날레를 장식한다. 기막힌 범인의 정체에 독자는 당황한다. 어 이래도 되는가? 이건 사기 아냐? 하지만 푸아로가 누군가, 그의 설명을 들으며 다시 책의 앞부분을 펼치면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 “아~ 역시 명성대로 대단한 작품이야!” 그런데… 과연 그 사람이 범인일까?
평단 및 대중의 찬사와 비판을 동시에 받은 <애크로이드 살인 사건>은 애거서 크리스티가 1926년에 발표한 작품으로 그 논란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일부 비평가는 작가가 추리 작법의 대원칙을 어기고 독자를 기만했다며 비난하는 반면, 일부는 고정관념의 틀을 깬 위대한 작품으로 칭송하기도 한다. 실제 2013년 영국 추리작가협회(Crime Writers‘ Association)에서 역대 최고의 추리소설로 뽑히기도 했다.
문학 비평가 피에르 바야르는 <누가 로저 애크로이드를 죽였는가?>에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소설에서 해석은 어떤 의미를 가지며 한계는 무엇인가? 또한, 그 근거는 어디서 찾을 수 있나? 이어 저자는 여러 문학 이론과 정신 분석 개념을 활용해 <애크로이드 살인 사건>을 해부한다. 과연 푸아로의 추리는 적확한가, 논리적으로나 현실적으로 있음 직한 일인가?
진짜 범인 찾기에 나선 저자는 인물의 성격과 극 중 역할을 고려해 푸아로의 추론을 배제하고 소설의 첫 문장으로 돌아간다. 그가 보기에 푸아로의 논리는 허점이 많고 작위적이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명탐정은 가장 살인 동기가 크고 행적이 불분명한 피해자의 양아들을 용의 선상에서 제외한다. 너무 범인 스럽다는 이유에서다. 이는 전혀 현실적이지 않다. 게다가 작은 디테일에 강박적으로 집착해 억지 추리를 내놓고 이를 뒷받침 하기 위해 제2, 제3의 억지 가정을 한다. 저자는 이를 해석 망상이라고 일갈한다.
어쨌든 바야르의 분석과 논리를 따라가면 우리는 마지막에 또 한번 놀라운 범인의 정체와 맞닥뜨린다. 원작과 맞먹을 정도의 충격적인 결말이다. 아~ 이렇게나 다른 시각으로 볼 수도 있다니… 하지만 전혀 억지스럽지 않고 그럴듯하다.
그럼 이제 우리는 추리소설을 어떻게 읽어야 할까? 푸아로에 의해 재독을 했고 바야르에 의해 삼독을 했다면 사독, 오독도 못 할 바는 아니다. 그렇다, 모든 것을 의심하라. 화자든 명탐정이든 누구의 말도 곧이곧대로 믿어서는 안 된다. 심지어 작가의 말이라도… 작은 회색 뇌세포는 소설 속 탐정만 쓸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