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1
이은진님의 서재
  • 진료차트 속에 숨은 경제학
  • 아누팜 B. 제나.크리스토퍼 워샴
  • 19,800원 (10%1,100)
  • 2024-10-30
  • : 1,490
한때 메디컬 미드(미국 의학 드라마)에 빠진 적이 있다. 《그레이 아나토미》와 《하우스》가 ‘인생 미드’인 정도. 약간의 과장을 보태 전자는 메디컬 드라마의 탈을 쓴 치정 로맨스, 후자는 의학을 소재로 한 미스테리 추리물이다. 비슷한 한국 드라마로 많은 이들이 좋아하는 《슬기로운 의사생활》이 있다. 미국 드라마에 비해 한결 인간적이고 따뜻한 감동의 휴먼 드라마.

◈ 의학 드라마를 좋아하세요…

메디컬 드라마가 좋았던 건 순전히 개인 취향이다. 살아있는 생명을 다루는 중대한 사명 아래 치열한 삶을 사는 젊고 똑똑한 인간종에 대한 동경이랄까. 자기 분야 외에는 서툴고 순수한 ‘너드(nerd)미(美)’도 한 몫. 이유야 다르겠지만 비슷한 취향을 가진 사람이 나만은 아니었나 보다. 미시간 의대 교수이자 의사인 엘리엇 태퍼는 의대생 시절부터 TV 드라마에 등장하는 의사들에 관심이 많았다고. 그는 메디컬 드라마의 꾸준한 인기를 기술적, 과학적으로 매력이 있는 의사라는 캐릭터에 사람들이 매료되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초기 의학 드라마는 의사단체들이 승인한 내용으로만 구성됐으며 한 치의 오차도 없는 모습으로만 그려졌지만, 당연하게도 이런 초인적인 의사 묘사는 지속되지 못했다. 환자와 의사 모두에게 부정적인 영향만을 주었기 때문. 시간이 흐르면서 TV 속 의사들도 결점, 갈등, 감정, 불완전성 등 인간적인 매력을 덧입고 어떻게 실수를 저지르고 편향에 빠지는지도 보여주게 됐다.

◈ 우연은 어떻게 삶을 바꾸나

하버드 의대 보건정책 전공 교수이자 매사추세츠 종합병원 의사 아누팜 제나, 크리스토퍼 워샴의 공동 저서 《진료차트 속에 숨은 경제학》은 현실적, 제도적인 우연한 변수들, 그리고 의사들의 학력, 경험, 정치 성향에 따라 치료 결과와 사망률이 달라진다는 사실을 다양한 연구로 밝혀낸다. 심지어 외과 의사의 생일에 수술받은 환자들의 사망률이 높은 이유는 생일날 쇄도하는 소셜미디어 알람, 메세지, 전화로 인한 주의 산만이라는 연구 결과도 있다고.

대표적인 사례로 여름에 태어난 아이들이 독감에 잘 걸리는 데에는 어떤 과학적이거나 의학적인 이유도 아닌 ‘부모들의 불편함’에 있다. 가을에 태어난 아이들은 연례 검진과 독감 예방접종을 한 번에 해결하지만 여름에 태어난 아이들의 부모는 소아과 연례 검진을 받고 얼마 지나지 않아 독감 예방접종 때문에 다시 병원에 가는 걸 번거로워하기 때문이다.

이 책의 훌륭한 점은 오늘날 이런 의료 서비스의 맹점을 지적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해결 가능성을 제시한다는 점인데, 그중 하나가 잘 알려진 ‘넛지(nudge)’, 즉 ‘디폴트(default)’ 경로를 재구성하는 것이다. 쉬운 선택과 어려운 선택이 있을 때 일반적으로 쉬운 선택을 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기 때문이다. 학교나 기관을 통한 기본 접종, 또는 ‘옵트 아웃’ (참가자가 거부 의사를 밝히지 않는 한 독감 예방 주사를 맞게 되는 방식)의 활용이 그것.

◈ 의학 속에 숨은 경제학

이것이 경제학과 무슨 관련이 있을까. 책은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간접 비용’을 지적한다. 자녀가 독감에 걸려 부모가 소비한 시간과 일을 하지 못해 소득, 미리 지불한 어린이집 비용을 합산하면 손실 규모가 매년 수십억 달러에 이른다고. 측정하기 힘든 간접적 비용이 최적의 치료를 방해하고 그것은 다른 의료 서비스의 측면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것. 나아가, 이런 비용은 돈을 넘어 옳은 일, 즉 의사들이 권장하는 일이자 우리 자신과 공동체를 위해 햐아 하는 일을 어렵게 만드는 비용이기도 하다. 이 외에도 우리 아이가 진짜 ADHD 일까 하는 의문에서 시작된 과잉 진료의 문제점, 타이밍과 균형의 기술, 의사 성별, 정치 성향과 관련된 의외의 문제가 다채로운 예시로 담겼다.

◈ 누구의 탓도 아닌

생각지도 못한 변수들은 어떻게 우리의 건강을 좌우하는가. 이 책은 비단 의료계 뿐 아니라 개인과 집단이 당면한 문제 원인이 단순히 구성원의 능력이 아닌 환경과 시스템에 있을 수 있음을 시사한다. 섣불리 개인의 역량 부족을 탓하지 말 것. 원인은 어쩌면 아주 사소한 우연에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 댓글쓰기
  • 좋아요
  • 공유하기
  • 찜하기
로그인 l PC버전 l 전체 메뉴 l 나의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