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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진님의 서재
  • 괴물들
  • 클레어 데더러
  • 16,200원 (10%900)
  • 2024-09-30
  • : 13,757
사랑은 판단 이전에 감정의 영역에서 작동한다. 우리가 종종 사랑해서는 안 되는 대상과 사랑에 빠지는 이유다. 《괴물들》의 저자 클레어 데더러는 평론가 데이브 히키를 인용하며 이렇게 적는다.

“미(beauty)는 좋아해야 하는지 안 하는지에 상관없이 저절로 마음과 몸이 반응하는 것이다.” p.300

◈ 왜 우리는 빌런을 사랑하는가

늘 궁금했다. 천재 예술가의 괴물성은 용인될 수 있는지. 우디 앨런, 피카소, 헤밍웨이, 마일스 데이비스, 레이먼드 카버, 바그너 천재 예술가이자 빌런의 얼굴을 한 인물들. 영화감독이나 연예인을 포함하면 국내에도 많다.

예술가들의 사생활에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야 하는가에 관해서라면 단연 노, 지만 그게 변치 않는 팬심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글이 좋으면 글쓴이가 좋아지고 그림을 읽으려면 화가의 삶을 이해해야 하니까. 그리고 클레어가 말하듯 우리는 ‘윤리적 사고를 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도덕적 감정을 품는다.’

가령 영화 '애니홀', '미드나잇 인 파리'로 유명한 감독 우디 앨런과 세기의 불륜으로 불리는 한국계 아내 순이 프레빈의 결혼 혹은 9년째 연애 중인 홍상수-김민희의 사례에 불쾌감을 느꼈다면 그것은 관객으로서 그들이 만든 작품 감상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동시에 클레어는 지적한다.

우리가 누군가를 비난할 때 나 자신 또한 어떤 수준에서는 완전히 올곧은 시민이 아님을 알고 있다고. 그렇기에 빅토리아 시대부터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이나 《지킬박사와 하이드》는 인간의 사악함과 나약함이라는 이중성을 제시해 왔다는 것. 물론 우디 앨런의 사생활이 여성주의적으로도 사회 도덕적 관점에서도 비난받을 여지는 분명하지만, 그 논란의 이면에는 어떤 사람을 더 잘못된 사람으로 만들면서 얻는 도덕적 우월감이 작용하는 것은 아닐까.

◈ 여성 괴물성

클레어가 정의하는 ‘괴물성’은 천재 남성 예술가에 한정되지 않는다. 완전히 동의하지는 않지만 영화화 된 길리언 플린의 소설 《나를 찾아줘》를 인용하며 ‘여성 괴물성’에 대해 언급한 부분도 재미있다. 세련된 취향을 갖고 현실에 발붙인 동시에 페미니즘의 한계에 얽매이지 않으며 남자들에게도 인정받는 ‘쿨한 여자’가 되고 싶은 욕망, 동시에 히틀러의 연인이었던 위니프리드처럼 나와 같은 성이 인정받지 않는 곳에서 나만 인정받을 때의 기쁨 같은 것.

나아가 글을 쓰기 위해 가족과 시간을 보내지 않고 복도에 있는 유모차를 무시하는 ‘작가이자 엄마’인 클레어 자신의 이기심까지. 그리고 덧붙인다. 여자들은 글을 쓰거나 예술을 위해 필요한 일을 하면서 때로 나쁜 엄마, 괴물이 된 기분을 느낀다고. “여타 현실 세계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나에게도 범상한 괴물성, 누구도 알 수 없는 깊은 우물, 억압된 하이드가 있다.” p.217

◈ 불완전한 인간을 사랑하는 일

‘억압된 하이드’에 관해서라면 어디 ‘작가 엄마’ 뿐일까. 인간이라면 누구나 내면의 괴물 정도는 하나씩 키우고 있다. 다만 그 모습이 상황에 따라 어떻게 발현되는가에 차이가 있겠지. 천재 예술가를 매혹적인 빌런으로 만든 괴물성이 여성에게는 모성에 반하는 개념 정도로 그친 것은 조금 아쉽지만 그럼에도 이 책이 주는 시사점은 분명하다.

“사랑은 무정부 상태다. 혼돈이다. 우리는 사랑받아 마땅한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우리는 이성이라는 차가운 기후와는 완전히 다른 기후 시스템인 감정적 논리에서 결점 투성이의 불완전한 인간을 사랑한다.” p.315

어쩌면 우리는 불완전하기에 서로를 사랑하는지도 모른다.

최근 읽은 가장 좋았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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