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의 욕망을 닮은 소설
lalan 2024/10/23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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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세에 합당한 우리 연애
- 박화성.박서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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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0) - 2024-10-10
: 206
《정서에 합당한 우리 연애》는 근대 여성작가와 현대 여성작가의 소설 함께 읽기로 기획된 작가정신 ‘소설-잇다’ 여섯 번째 시리즈다. 가부장제 식민지 체제에서도 자신만의 삶과 문학을 가꿨던 박화성, 매력적인 서사와 이채로운 캐릭터, 시의적 화두를 녹인 소설로 인정받는 박서련 작가의 콜라보. 박서련 장편 《더 셜리 클럽》을 인상적으로 읽은 기억이라 반가웠다.
박서련의 짧은 소설 《정서에 합당한 우리 연애》의 주인공은 림과 진. 둘은 인문학 독서 동아리에서 근대여성 박화성 소설 《하수도 공사》를 함께 읽는다. 극중 용희의 대사 ”우리의 연애는 정세에 합당하지 못하기 때문에 스스로 억제하는 경우가 많다“는 대목을 토론하는 식으로 과거와 현재는 연결된다.
“진은 완벽했다. 똑똑하지만 재수없지 않았다. 조용하면서 친화력이 좋았다. 온유하면서도 강직했고 소탈해서 부담없는 한편 범상치 않은 사람처럼 보였다. 여자 친구로서의 진은 조금 더 특별했다. 예쁘면서도 멋있었고 점잖지만 야했다.“ p.193
정세에 합당한 연애란 무엇인가.
림의 고백으로 진과 림은 곧 사귀게 된다. 평범한 청춘의 풋풋한 연애가 왜 정세에 합당하지 않은지는 소설의 스포일러 방지를 위해 생략.. 마지막 장에서 림은 백 년 전 소설 속 용희의 말을 떠올리며 되뇐다. “우리는 정세에 합당한 연애를 하고 있어요. 정세에 합하지 않는 연애 같은 건 세상에 없어요.”
연애한 지가 너무 오래된 탓일까. 잘 읽히고 신선한 소설이었지만 어떤 울림은 없다고 생각하던 와중 말미에 실린 해설에 반해 홀린 듯 인덱스를 붙였다. 근사한 문장으로 독자의 이해를 돕는 전청림의 해설은 이렇게 마무리된다.
“거세게 몰아치는 심장만이 전부인 것처럼 날카롭고 용감하다가도 깊은 우물처럼 차가워지는 박화성의 고독, 가늘고 나긋하게 흐르면서도 대담하게 급류에 합류하는 박서련의 기개는 무엇보다 투명하고 솔직한 물의 욕망을 닮았다. 아픔을 과시하지 않고 실패를 상찬하지 않는 이들 문학에서 어떤 충격에도 손상되지 않는 부드러운 유연성을 본다. 굽이치는 세계의 폭력성과 유한성 앞에서 스스로를 잃지 않은 채 잔잔히 흐를 줄 아는 그 신비로운 지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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