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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진님의 서재
  • 사랑 바다
  • 파스칼 키냐르
  • 18,000원 (10%1,000)
  • 2024-06-25
  • : 1,380
“진정한 기쁨 – 침묵 속에서, 자기 손끝에서, 스스로, 자기 야만성의 원천을 발견하기.”p.93

프랑스 소설의 관능을 좀 안다고 생각했다. 파스칼 키냐르를 읽기 전 까지는. 키냐르의 에로티시즘은 아니 에르노의 솔직함과 뒤라스의 욕망을 능가한다.

소설 《사랑 바다》는 17세기 바로크 음악의 정수를 구현했던 인물들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편집자 레터에 따르면 그 시대의 음악은 감정 표현보다 그 표면 아래를 흐르는 에너지, 어떤 꿈틀거림을 묘사한다고. 그래서일까. 예술에 무지한 탓인지 소설을 읽는 내내 여성의 나체와 성애 장면이 맥락 없이 너무 자주 등장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다만 키냐르의 깊고 매혹적인 문장은 난해한 서사마저 끝까지 읽게 하는 힘이 있다. 그게 외설과 문학의 차이인지도.

“나는 내가 작곡할 수 있었던 음악보다 여성인 그녀의 몸을, 여성인 그녀 몸의 아름다움을, 여성인 그녀 영혼이 품은 성찰을 훨씬 더 좋아했다. 그녀의 긴 몸이 말없이 발가벗을 때면 나는 모든 악기와 세상의 모든 외침과 한탄과 흥얼거림을 들을 때보다 더 도취했다. 그 황홀경과 그 비밀스러운 방, 우리가 발가벗고, 우리가 타락하고, 우리가 자신을 잊고, 우리가 무너져내리고, 우리가 서로의 품에 안겨 잠들던 그 방은 나를 끌어당겼다.” p.63

“이전과 비슷하고 여전히 비할 데 없이 향기롭고 저항하기 힘들만큼 매혹스러우며 생생하고 따뜻하며 자신만만하고 숭고한 그 몸을 다시 만나는 건 행복이다. 그 몸에 똬리를 트는 건 황홀한 일이다. 어쩌면 바로 거기서 음악과 사랑이 만나는지도 모른다. 음악은 말하지도 않고 의미하지도 않는다. 그것은 뇌의 그늘 깊은 곳에서 잃어버린 것을 되살려 낸다.” p.195

“계절은 거듭된다. 이 계절의 수레바퀴가 돌아가면서 기억에 그리움이 더해지는 것이다. 천상의 빛 속에서 시간을 돌고 도는 건 오직 욕망을 향한 욕망뿐이다. 드레스가 벗겨진다. 갑자기 구겨지는 꽃 한 송이 같다.”p.317

파스칼 키냐르는 아니에르노와 같은 프랑스 북서부 노르망디 태생. 음악가인 아버지와 언어학자인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 어릴 때부터 다양한 악기와 여러 언어를 익혔다. 유년기에 두 차례 자폐증을 앓았으며 1968년 에마뉘엘 레비나스의 문하에서 철학을 공부했고 2002년 《떠도는 그림자들》로 공쿠르상을 수상했다. 그 외 《세상의 모든 아침》 《은밀한 생》 《음악 혐오》 《하룻낮의 행복》 등 많은 작품을 발표. 최근작으로 난다 출판사의 《성적인 밤》이 있다.

미학자 편린은 미학을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하는 학문’으로 정의한다. 은밀하고 생생한 묘사, 사랑과 예술의 탄생을 은유하는 문장들을 최대한 담담히 읽어나가며 이런 게 미학일까 잠시 생각. 거침없는 용어 사용에 아연해졌다가도 아름다운 잔상에 기어이 끌리고 만다. 언어가 선사하는 아마도 최대치의 감각적인 경험. 호불호는 있겠다. 깊어가는 여름, 새로운 소설을 찾으신다면 추천.

인스타그램: 담백한 책생활 @luv_minyun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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