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의 안쪽, 심리학자의 눈으로 영화 프레임을 재단하다!
네이버 카페 '닥터프로스트 공식 팬 카페'에 서평 이벤트로 올라온 이 책.
사실 처음에는 그저 고만고만한 책이겠거니, 하고 쳐다보지 않았다. 그러나, 지인들이며 카페 회원들이 이 책을 갖고 싶어서 그렇게들 난리를 치는 것을 보고 카페에 있는 이벤트 소개 페이지를 읽고 나니 생각이 달라졌다.
심리학자의 눈으로 영화를 분석한다? 호오, 재미나는데? 어디 한번 읽어 볼까? 싶었고, 그렇게 응모해서 며칠 뒤에 당첨자 발표에 내 아이디가 있는 것이 무척 기뻤다.
고대하던 책인지라 8월 3일에 어머니를 통해 책을 받자마자 열심히 탐독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가볍게 한 번, 다음부터는 서평을 쓸 목적으로 진지하게 한 번.
그렇게 이 책을 몇 번을 탐독을 했던지, 웬만해서 책에 읽은 티를 내지 않는 버릇을 가졌다고 자부했음에도 불구하고 책갈피를 끼웠던 흔적이 선명하게 남아 버렸다.
자, 그럼, 오랜만에 책벌레의 구미를 당기게 한 책을 당신들도 한번 맛 좀 보시라.

이퀄리브리엄-모든 감정을 말살하라! 내 것만 빼고.
감정이 없는 사회, 더 좁게는 감정이 없는 자신을 상상해 본 일이 있는가. 이렇게 다루기 어려운 녀석이 감정이라면 사라져 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은? 만약 누군가 그 귀찮은 녀석을 제거하고, 다시는 뿌리를 내리지 못하도록 관리까지 해 준다면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하겠는가?이 영화는, 감정을 금기로 지정한 독재자가 무슨 짓을 할 수 있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영화 속 독재자는 '감정' 전부를 부정한 것이 아니라 전체주의에 필요없는 감정-중에서도 타인의 것-만을 부정함으로써 역설적으로 인간이 온전히 사람으로 살아가는 데에는 감정이 필요함을 증명해 냈다. 이자가 한 짓이 평화를 위해 전쟁을 하는 것과 같은 류의 모순이라고 느낀 것은 속단일까. 애초에 타인의 감정을 통제할 권한이 누구에게 있는가. 독재자는 감정이 없는 '청정 지구'를 리브리아로 명명하고 그곳이 파라다이스 내지는 유토피아인 것처럼 득의양양하게 선전을 했지만, 사실상 그곳은 '느낄 자유'를 박탈당해 아무렇지 않게 범죄가 판을 치는 디스토피아일 뿐이다. 저자의 주장대로 그런 곳은 그저 사이코패스 수용소 역할밖에 하지 못할 것이다.[여담:영화에 나오는 그라마톤 클레릭은 어쩐지 레이 브레드버리의 소설 '화씨 451도'에 나오는 소방수와 닮아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게다가 어째서 이제서야 이 영화를 떠올릴 때 '좋은 밤 되세요'라는 단편영화마저 생각난다는 말인가!]

인셉션-그대, '스스로' 생각하고 있는가?
긍정적인 감정이 부정적인 감정보다 우위에 있으므로 긍정적인 감정으로써 타인의 무의식을 지배할 수 있다! 거칠게 말해서, 의식은 깨어 있는 동안이요 무의식은 잠을 깊이 든 동안이라고 한정짓고 나눈다면 무의식을 지배하려는 자는 당연히 꿈을 이용해야 한다. 그리고 나서 의식의 세계와 무의식의 세계를 무자비할 정도로 섞어 버린다면 효과는 배가 된다.이를테면 저 먼 옛적에 장주가 이야기했던 이런 현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