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글이란 무엇일까. 요즘은 문체에 대해서 자주 생각한다. 아름다운 문장으로 된 글들을 보면서 감탄하지만, 이 작가의 글을 보면서 문체는, 그러니까 문장의 힘, 혹은 아름다움이란 몸통이 아니라 깃털일 뿐이라고 생각해버리게 된다. 진짜 몸통은 이야기이다. 흐르는 강물처럼 막힘없이 이야기를 들려준다. 쉬운 단어와 쉬운 문장으로 말하듯이 쓴다.
펴내는 책마다 정확한 메시지를 주는 작가라 좋아한다. 하기로 했으니까 하고, 하다보면 망할때도 있는거고, 그래도 또 하고, 실패안에 숨은 메시지를 깨치고, 그러면 고치고, 다시 버티고, 가다보면 언젠가는 이기는 순간이 오고, 라는 삶의 비밀을 알려준다. 어떤 일을 하는 과정에서 겪는 기복이야 당연한것 아닌가. 포기해 멈추지만 않는다면 그래서 닿는 끝이 봐줄만 하다면, 실패라고 할 것이 어디 있을까, 가다보면 만나는 부침일 뿐. 이건 비밀이랄것도 없다, 왜냐하면 다들 아니까, 나만 모르는게 아니니까. 우리는 다만 근기가 딸리거나 가진 믿음의 함량이 미달일뿐. 믿음이라면 이 책에서 얻어보자. 책 안에는 작가가 삶으로 통과하여 몸에 붙이게된 그 방법들, 이어지는 실패들과 그 끝에서 만나는 성취를 보여준다. 사례는 이명박근혜 정권을 통과 하며 mbc가 격은 부침과 구성원들의 간난신고이다.
결연과 비장의 아우라가 뭉게뭉게 하도록 만들 수 있을 주제를 가볍고 쉬운 문장으로 깔깔깔깔 재밌게 써버렸다. 거기에 더해 긴 여정 갈피갈피 차이는 돌부리의 수행끝에 얻는 사리알같은 득도의 깨달음을 내게도 와 닿는 문장으로 기록해 쫘악~ 밑줄쳐준다. 이 사람은 일면 뺀질이 얌체같기도 하고 자기 원칙에는 칼같아 살짝 무서워도 보이는데, 사실 스스로에게 엄하지만 남에게는 너그러운 사람의 전형이다. 책에서 조직에는 이런 상사가 필요하다고 묘사하는 똑게.일게다. (똑똑한데 게으른, 최악은 멍부! 헉, 하지만 나는 상사도 아니고 부지런하자고 다짐하는것으로만 부지런하니 괘안타) 그래서 후배들에게 최고의 자율권을 주고 스스로 움직이게 하면서 뒤에서 팔짱끼고 끄덕끄덕, 결국은 원하던 결과, 실리를 챙기는 사람이다. 앞선 책, 영어책 한권 외워봤니, 매일 아침 써봤니, 그리고 여행에 대한 책 한권, 그에 이은 네번째 책이다. 매년 책한권을 내는게 목표인 사람이라, 첫 책 나왔을때 부터 다음 해에는 어떤 주제가 낙점될까...기다렸었는데, 올해의 책은 의외. 그리고 내년의 책의 주제는 더욱더 오리무중이다. (호기심 천국인 사람이니...그런데 갑자기 중국에 관한 책을 쓸수도 있겠구나...하고 추측은 해 봄, 작가의 책 네권을 다 가지고 있는 사람으로서 단호하게 예측해봄. ㅍㅎㅎ)
김민식은 공영방송 mbc의 피디다. 예능피디였고 지금은 드라마피디다. 작가의 직장인 문화방송 mbc의 지난 십년의 궤적, 궤도이탈과 정상궤도 재진입에 대한 이야기로 네번째 책을 썼다. 그런데 이 책은 몇개의 겹으로 읽힌다. 자기 이야기로 한겹, 동지의 이야기로 한 겹 더, 우리들에게 들려주는 이야기의 겹으로 마지막을 감싼다. 자기 이야기를 하면서, 동지와 조직의 이야기를 풀어내고, 그 너머의 우리들에게 어떻게 살아야 할것인지 돌아보고 점검하게 한다. 나는 뒤로가면서 자꾸 찔찔 울었다.
우선은 이명박근혜 정권을 통과하는 동안의 김민식 개인의 알리바이다. 어릴때부터 왕따와 부모의 강압과 폭력에 괴로왔던 청소년기를 보내고 대학에와서는 자기의 개인적 불행을 치유하고 보상받기 위해서만 시간을 썼다고 한다. 87년에 대학에 들어간 사람이 데모 한번 하지 않고 대학생활을 마무리 했다. (학번도 고향도 나와 같다. 나혼자 친구해버렸다.) 그러던 그가 mbc 노조 간부가 되는 반전!이라니, 노조에 들어가서도 파업반대를 하던 그가 170일 이상 이어지던 장기 파업중의 매 집회 프로그램을 만들게된다. 아, 인생의 예측불허함이여. 다들 기피하기에 피하기도 어렵게 노조에 떠밀리듯 들어가면서 했던 생각은 우주최강 좋은 직장 엠비시를 누린 삶에 대한 보답을 하자, '그래, 지옥은 내가간다'라는 용기였다. 추락하는 mbc (기억난다, 우리는 그 시절 mbc를 엠비씨라 하지 않았다. 엠븅신이라고 했지.)를 저지하고 다시 비상시키려고 했지만 저지는 힘들고 추락은 바닥을 치고 지하를 파고들었다. 절망하고 움츠려있던 중의 돌파구로 영어책도 내고 글쓰기책 여행책도 내던중에 다시 찾아온 희망, 포기하지 않아서 끝까지 버텨서 지금 조금씩 되찾고 있는 mbc의 평상들. 그가 mbc 로비에서 '김장겸은 물러나라'라고 홀로 고함치도록 했던 결심의 순간이 바닥을 차고 비상하는 터닝포인트가 되었다. 그런데 작가는 주인공되기를 극구 피한다. 몇걸음 옆 단상아래로 내려서서 다른 사람들에게 스폿라이트를 쏜다.
프롤로그에서 스폿라이트가 어디로 향하는지가 드러난다. 이용마 기자다. 2012년 mbc 파업을 이끌던 노조의 홍보부장이다. 해직 기자, 파업이 실패로 끝나고 해고와 정직과 좌천이 남발되던 그때 해고당한 사람이다. 학교에서 정치를 전공하고 보니, 언론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지대하다고 느껴졌다.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언론인이 되어야겠다 생각해서 mbc 기자가 된 그다. 그가 병을 얻어 병상에 있다. 그리고 에필로그는 그의 죽음으로 끝난다. 파업과 저항의 힘든 과정에서 몸이 드러낸 상처를 넘어서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동료 이용마기자에 대한 애도가 시작을 열고 끝을 닫는다. 그래서 이 책은 동지 이용마 기자에게 바치는 헌사이다. 파업과 투쟁의 방법도 예능피디이자 드라마피디인 본인의 특기를 살려 [mbc 프리덤](파업홍보영상을 대규모 립씽크 더빙 뮤지컬로 만들어 순식간에 유튜브 30만 뷰를 기록해 버렸다. 나도 그 시절 몇번이나 돌려봤는데 나중에야 그걸 만든 피디가 김민식이라는 걸 알았다.) 이라는 유쾌하고 멋진 립덥으로 만들어버리더니, 애도도 이렇게 한다. 애도가 떠난 자에 대한 안타까움과 슬픔에만 매몰되지 않도록, 그의 메시지를 남아있는 사람들, 영 그 사람을 몰랐던 사람들에게까지 가닿아 울리도록 설계해버렸다. 영리하고 용의주도하다. 그런데 목이 멘다.
https://youtu.be/vT1J9ZwH1jM
(mbc 프리덤)
김민식은 시트콤 [논스톱] 시리즈를 만든 피디이다. 웬만해선 자의에 의해 스톱하지 않는다. 영어책과 글쓰기책 그리고 여행책을 유쾌하고 설득력있게 '어떻게 삶을 살것 인가'의 문제로 바꾸어 이야기하면서 쌓은 작가의 정체성을 여기서 이용한다. 사실 나는 '낚였다'라고 생각했는데, 바른언론과 해직기자와 공영방송의 파업등의 무거운 주제로 직진해 버렸기 때문이다. 이명박근혜, 배반의 십년, mbc 파업과 노조활동에 대한 이야기인줄 알았다면 미리 마음이 무거워져서 '외면의 기술'을 발휘한 채로 질질 끌었을것 같다. 그것도 파악못한 무늬만 덕후인 나는 출간 직후 초판 1쇄의 책을 바로 손에 쥐었다. 그리고 예외없이 순식간에 읽어버렸다. 재밌는데 깨달음을 주니까. 깔깔대지만 돌아보게 한다. 앞의 책들은 친구들에게 권하기도 쉬웠는데, 이 책은 권하지는 못하지만 리뷰를 쓰는 첫번째 책이다.
뒷표지의 커다란 글씨는 '거대한 악당 앞에서도, 질 게 뻔한 싸움을 하면서도, 물러서지 않고 기어이 신나게 한 방 먹이는 법'이다. 부제는 '퇴진 요정 김민식 피디의 웃음 터지는 싸움 노하우'이다. (어디에도 mbc는 없다. 쳇) 세상에는 싸울일이 얼마나 많은가, 그것들을 외면하며 사는 쫄보로 무거운 마음을 끌며 지친 발걸음으로 걷지말고 나비처럼 팔랑~ 쨉을 날리며 웃으라고, 이길때까지 그만두지 말라고 논스톱 피디는 또 알려준다. 재미있어야 스톱하지 않는다고. 그는 어느새 자기도 모른채 '정의의 길로 비틀거리며 가고'있다. 납량특집의 흰 소복을 입은 그녀처럼 가끔 뒤돌아보며 손을 까딱인다. 이리와~ 따라와~ 킬킬~ @@ 그를 따라가면 재밌고도 유쾌한 게다가 포기하기 어려운 가치인, 정의로운 삶을 살 수 있을것 같다. 읽으며 눈두덩을 누르던 나도 따라간다. 물귀신이었어, 나는 낚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