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무런 상처도 없는 완벽한 사람이 아니라,
상처 입은 치유자가 되고 싶다.
정여울 - 『나를 돌보지 않는 나에게』
나는 왜인지
이 책을 자꾸만
'나를 돌아보지 않는 나에게'로 읽는다.
![](#)
최근 힘든 일이 많았다.
육체적인 것보단 정신적으로.
11월이 된지 벌써 며칠이나 지났지만
아직도 시월에 머물러있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드는 것도
그래서일까.
슬픔이 우울함이 되고
우울함이 좌절로 변모해갈 때
끊임없이 침잠해있느라 몹시 지쳐있었다.
그래서 김영사서포터즈 일로 받은 두 책을
아직 다 읽지 못했고 리뷰도 쓰지 못했다.
그래도 그 두 책은.. 내가 해야할, 내 책임이며 의무이니
전체활동이 끝나기 전까진.. 이미 기간은 지났지만 써볼 예정이다.
그치만 그전에..!
나 자신에게 힘을 주기 위해 골랐던
이 책을 먼저 읽었다.
나를 돌보지 않는 나에게저자정여울출판김영사발매2019.10.23.포슬포슬한 느낌의 푸르고 푸른 표지여서
받자마자 마음이 부풀었던 기억이 난다.
오돌토돌하고 거친 표지를 쓰다듬으며
"네가 나를 달래줄수 있을까."
생각하기도 했던, 그런 책.
이 책은 표지부터 목차, 내용까지
전체적으로 감성적인것 같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비하의 의도가 아니다)
왜 괄호까지 달아가며 변명하냐면...
글의 내용중에 작가님이 '감성적'인 자신의 성향이
큰 상처였지만 이제는 좋아졌다고 하셨는데
그게 신선한 충격이었어서다.
감성적이란 것이 콤플렉스가 될 수 있다니.
내가 이 책에 느꼈던 첫인상이 조금 죄스럽게 느껴졌던 순간이다.
여튼,
총 네개의 장에서 진행되는 심리테라피는
각자가 독자적이면서도 연결되어 있어서
통으로 읽기에도 좋고,
내가 그때그때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만
읽어도 무리가 없었다.
![](#)
내가 읽은 책들 중 가장 목차가 많은 것 같다.
작가님도 그런 부분에서
이렇게 다양하게 목차를 쪼개놓으신게 아닐까한다.
그때그때. 꺼내 먹을 수 있도록.
사실, 이런 느낌의 '심리테라피'나
'힐링'을 주제로 하는 책을 선호하진 않는다.
그런데 요즘엔 내가 무조건적으로 거부하고 읽지 않는 게
옳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 접해보려고 시도하는 중.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좋았던 점도 많고
아쉬웠던 점도 있다.
먼저, 좋았던점은 작가님이 무언가를 이야기할 때
근거가 되는 심리학을 함께 다루어서
적용시켜볼 수 있었다는 것이다.
힐링에세이나 자기계발서 등에서
근거 없이 무조건적인 명령으로
"아무튼 이겨내라! 너는 할 수 있다!"
하는 것에 반발이 있었기에..
이 책에서 작가님은 심리학을 공부하며
'페르소나(가면)'와 '그림자'의 용어가 가장 매력적으로 다가 왔다고 했는데
그래서인지 후에도 여러가지 이야기에서 '그림자'가 나타난다.
사람은 역시 주관적인건지. 아니면 나만 그런건지 모르겠지만
나는 나에게 대입이 되는 부분에 집중해서 책을 읽게 되었다.
그래서 자주 멈추었던 부분들은
낮은 자존감이나 열등감등의 뾰족한 감정이 뭉친 곳이었다.
내 그림자의 어두운 측면은 수없이 많다.
가장 원하는 것을 지금 당장 실천하지 못하는 마음의 습관,
사랑을 표현하지 못하고 꼬일 대로 꼬인 방식으로 표현해도
상대방이 언젠가는 날 이해해줄 거라고 믿는 어처구니 없는 낙관주의,
행복을 느낄 때 그 기쁨에 집중하지 못하고 온갖 걱정거리와 불안을 늘어놓으며
결국 그 행복을 즐기지 못하는 감정의 습관,
문제가 생겼을 때 조금씩 해결해나가면 될 것을 계속 미루기만 하다가
감정이 폭발하기 직전까지 나 자신을 벼랑 끝으로 밀어붙인 순간들.
그림자를 묘사하다보면 결국 내 삶의 핵심 트라우마와 만나게 된다.
결국 나 자신의 미워 죽을 것 같은 측면은
내게 일어난 나쁜 일들 때문이 아니라,
그 일에 대처하는 내 우유부단함이나
행복조차 순수하게 행복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과도한 예민함 때문이라는 것을,
후회의 대부분은 마음챙김의 고삐를
제대로 조절하지 못했기에 발생한 것임을 알게 된다.
정여울 - 『나를 돌보지 않는 나에게』 , p.84
이 부분이 소름끼치게 나같아서 놀랬다.
정여울 작가님은 여러가지 심리학을 인용하며
결국 내가 자신을 보듬고 사랑할 수 있는 방법은
내가 가진 빛과 그림자를 모두 인정하여 끌어안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듯 했다.
그 방법을 시작하는 첫 걸음이
내 안의 그림자를 발견하는 것이라고.
이 부분이 내가 아쉬웠던 부분이다.
물론 작가님도 심리학을 배울 때
자신의 그림자와 온전히 마주하여 화해하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나 싶었다고 하기는 했지만..
결국은 그게 해결책이라고 인정하는 것이
정말 답이 맞는지에 동의하기 어렵다.
자신의 슬픔과 고통을 부정하는 것만이 답은 아니겠지만
그렇다고 그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게 정말 끝일까.
"심리학적 대면은 자신의 좋은 점만 부각하는
지나친 긍정심리학의 유아성과 결별하는 것이다.
대면은 상처의 빛과 그림자 모두를 차별 없이 끌어안아,
마침내 더 크고 깊은 나로 나아가는 진정한 용기다." (p,86)
이게 정말 모든 사람이 해낼 수 있는 일일까.
나는 조금 의문스러웠다.
그럼에도 이 책이 싫지 않은 것은,
긍정할 수 밖에 없는 부분이 많아서다.
나를 가장 힘들게하는 '열등감'에 대해 다룬
<열등감을 극복하고 더 나은 삶을 향해 나아가는 길> 부분이 그랬다.
작가님이 제안한 방법은 세가지였다.
1
'신 포도의 심리' 를 극복하기
2
고통의 최고점과 행복의 최저점을 정하기
3
감정의 미묘한 차이들을 또렷하게 구분하기
나에게 도움이 되었던 것은 1과 3의 방법이었다.
1의 방법은
내가 갖고 싶은 재능을 가진 사람을 보면 더이상 '신포도'로 생각하지 않고,
그 사람의 탁월성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쪽이 되는 것이다.
타인의 탁월성을 인정하면 삶이 더욱 풍요하고 아름다워진다고.
3의 방법은 감정의 미묘한 차이들을 또렷하게 구분해보는 것이다.
예컨대 고통과 절망을 구분하는 것,
스트레스와 트라우마를 구분하는 것,
짜증과 슬픔을 구분하는 것.
작가님은 영화 <더 파티>의 한 장면을 인용하며 이야기했는데
정말 공감이 갔다.
영화 <더 파티>에서 갑자기 유리창이 깨져버려
망연자실한 사람들을 보고 한 남자가 이렇게 말한다.
"유리창이 깨진 거지, 영혼이 부서진 것은 아니야."
정말 그렇지 않은가,
힘든 일이 생긴 것이지, 반드시 절망해야 할
필연적인 사건이 터진 것은 아니다.
극복해야 할 힘든 일이 생긴 것뿐이지,
그게 희망을 포기할 이유가 되지는 않는다.
정여울 - 『나를 돌보지 않는 나에게』 , p.84
그렇지 않은 문제들에서도
자꾸만 다른 문제나 감정으로 환원해버리기 때문에
내가 느끼는 감정이나 삶이 더 비관적으로 느껴지는건 아닐까.
그래서 자꾸만 더 하찮아지고 보잘것 없어지는 게 아닐까.
돌아보게 되는 글이었다.
그래서,
'콤플렉스'나 '우울증'등의 심리학 용어를
남발하는 사회에 부정적이라는 작가님 말에 동의했다.
나는 내가 이겨낼 수 있는 문제나
감정에 자꾸만 이길 수 없는 감정을 덧대어
더 확대하고 과장했을지도 모른다.
내가 생각하는 것 만큼 나는 약하지 않을지도 모르니까.
<상처 입은 내면아이를 위로하는 따스함>챕터에서
읽었던 내면아이를 위로할 수 있는
어른일 수도 있으니까.
우리 안에는 죽을 때까지 좀처럼 자라지 않는
내면아이가 살고 있다.
이 내면아이는
피터팬처럼 영원한 순수를 간직한 사랑스러운 모습이기도 하고,
상처 입은 채 하염없이 눈물 흘리지만 도와달라는 외침조차 안으로만 삼키는
안타까운 모습이다.
정여울 - 『나를 돌보지 않는 나에게』 , p.128
조금은 더 긍정적으로 생각해보자.
하고 다짐했다.
+ <그림자 노동의 물결이 밀려온다>
이 부분은 내가 말하던 결과 조금 다른 것 같은데
좋았다고 꼭 언급하고 싶은 챕터다.
표면적으로 보이는 일들이 아니기에
인정하려 하지 않는 수많은 그림자 노동들.
임금을 받지도 못하고 눈에 띄지도 않는 그림자 노동 덕에
사회가 돌아가고 있음을 우리는 자주 잊는다고 작가는 이야기했다.
살림과 육아에서부터 시작해서
카페의 셀프서비스, DIY식 가구조립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소비자'라는 이름으로 혹은 '직원'이라는 이름으로
대가없이 해내는 모든 일이 그림자 노동이라고 한다.
![](#)
이거 이거!!! 완전 한국사회의 핵심 문제 중 하나 아닌가!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라면 더 큰 문제고..!
이반일리치는 『그림자 노동』에서 대가 없는 노동이
우리의 삶을 더 복잡하고 교묘하게 불능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다.
그림자 노동의 가장 심각한 폐해는
우리의 자존감을 빼앗고, '내가 꼭 필요한 사람'이라는 자신감을 앗아감으로써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를 은밀하게 무력화시킨다는 것이다.
그림자 노동으로 인해 우리는
제대로 활용할 수 있는 권리,
창조적으로 사유할 권리,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빼앗기고 있다.
우리는 우리의 소중한 시간을 그림자 노동에 빼앗기지 않을 권리가 있다.
우리에겐 스스로의 삶을 빛내는 가치 있는 노동의 주인이 될 권리가 필요하다.
정여울 - 『나를 돌보지 않는 나에게』 , p.41
NO PAY NO WORK.
알겠냐 이세상아!!!!! ㅠㅠ
![](#)
제발 돈 안 줄꺼면 시키지도 마라!
당연한 권리인 것처럼 명령하지도 말고
그렇게 시킨 일이면 인정이라도 해줘라!
NO WORK NO PAY면
NO PAY NO WORK 라고.
자본주의로 찍어 누를거면
제발 모순적으로 하지 말란 말이야..
![](#)
세상에 당연한 노동은 없다.
있다면 그건 아마 부동한 노동일것.
그림자 노동이야기가 나와서
갑자기 급발진해버렸지만,
아무튼 이 책의 도움을 꽤 많이 받은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모든 챕터와 모든 저자의 주장에 동의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 만큼 여러가지 이야기가 나온다.
각자가 자기에게 맞는 처방을 받아갈 수 있기를.
나를 돌보지 않는 내가
나를 돌아보는 내가 될 수 있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