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폰소 링기스가 <아무것도 공유하지 않은 자들의 공동체>에서 말하는 공동체란 결국 죽음 공동체이다.
메시지, 자원, 용역을 교환하며 협력할 수 있는 공동체(링기스는 이를 친족관계로 규정짓는데, 그가 말하는 친족관계는 `닮음`에 있는 것은 아니고 `의무관계`에 있다. 가령 내가 아프면 엄마가 나를 보살피게 되는 것이 의무 관계이고 친족관계인 것.)와는 다른 것이다.
죽음 공동체는 인종도 다르고 혈연도 다르고 성별도 다르지만, 다시 말해 나와 아무것도 공유하지 않지만, 그가 죽어야 할 운명을 짊어지고 있다는 이유로, 형제애를 발휘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그가 말하는 죽음 공동체는 선한 사마리아인 비유와 맞닿아 있으며, 예수의 이웃 개념과 흡사하다. 실제로 이 책에서 풍토병으로 인사불성된 저자가 말도 통하지 않는 네팔인의 도움을 받은 사건이 기록되어 있다.
나는 요즘 지역과 공간을 기반으로 공동체를 이루는 프로젝트를 진행 중에 있다. 그 기초를 무엇으로 둘지, 어떤 가치를 추구할지, 무엇을 실천할지 고민이 많다.
공동체의 주춧돌은 무엇이어야 할까. 언뜻 떠오르는 생각은 지역 주민과 함께 하는 공동체, 육아 등 실생활을 공유하는 생활 공동체 등이며, 실제로 공동체를 추구하는 곳에서 일반적으로 이야기되는 것들이다. 하지만 지역, 생활 등이 공동체의 기초가 될 수 있을까? 그것들은 그저 하나의 실천이지 않을까.
현상학자의 책을 읽어서인지, 근본적 질문과 회의가 거듭된다. 이게 철학 공부의 묘미겠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