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 않기 위해 쓴다』, 왜 ‘이기기 위해 쓴다’가 「지지 않기 위해 쓴다」일까? 그것이 알고 싶었다. 어쩌면 세상이라는 게임에서 우리 인간은 절대로 이길 수 없는 걸 깨달았기 때문일까? 그런 세상이라면 저자는 왜 지지 않으려고 글을 쓸까? 『노동의 배신』, 『긍정의 배신』, 『희망의 배신』, 『건강의 배신』일명 배신 4부작으로 알려진 책들이 나오기 전, 영화로 따지면 프리퀄 같은, 짧은 조각 글을 모아 놓은 책이 바로 이 책, 『지지 않기 위해 쓴다』이다.
배신 시리즈를 읽어보지 않았지만 책 속 조각 글을 읽는데 부담은 없었다. 하나의 주제를 깊이 있게 다루기보다는 저자의 관심사에 따른 여러 주제를 이 책을 통해 만나볼 수 있었다. 주제는 크게 가난, 여성, 건강 이렇게 세 가지로 나뉜다. 저자가 미국인이라 미국 사회의 문제들을 담고 있었다. 그래서 미국 내의 인종 간 빈부격차를 이야기할 때는 ‘미국은 그렇구나’ 하고 넘어간 부분도 있었다. 또한 미국 사회의 모습에서 우리 사회의 모습을 발견하기도 했다.
최저시급을 받고 일하는 노동자들은 아무리 돈을 벌어도 더 가난해지기만 하는 현실이 우리 사회의 최저임금 노동자의 모습과 닮아 있었고, 일상 속에 만연해있는 성별 간의 차이에 따른 차별도 우리와 닮아있었다. 예를 들어 아이들이 학교에 입학하면 남자아이들은 여자아이들보다 숫자에 밝고, 여자아이들은 남자아이들보다 말을 잘한다고 생각한다. 또한, 중산층이 몰락하는 미국 사회는 지금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문제가 아닌가? 중산층은 점점 사라지고, 점점 심해지는 부의 양극화 현상도 그렇다.
모든 글 중에서도 1장에서도 첫 번째 장, ‘열심히 일하셨나요? 더 가난해지셨습니다’의 내용이 가장 인상 깊었다. 모든 조각 글 중에서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하는 만큼 내용 또한 분량 못지않게 책상머리에서 모든 걸 경험한 것처럼 쓴 글이 아닌 저자의 경험에서 나온 글이었다. 자신의 신분을 속이고 직접 노동자의 삶에 들어가 무엇이 문제인지 직접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피부로 느꼈기 때문이다. 신분을 속이니 저자에게 남은 건 여성이라는 성별 하나뿐이다. 90년대 후반에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여성의 취업은 예나 지금이나 고난이다. 배운 것 없고, 가진 것 없는 여성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서비스직뿐. 하지만 그 일자리도 쉽게 얻을 수 없어 고군분투해야 한다. 저자가 간신히 일자리를 얻은 곳은 동네의 작은 음식점이었다. 저자는 자는 시간 빼고 하루 종일 일하는데도 소득은 오히려 적자다. 이는 저자만이 겪은 특별한 체험이 아니었다. 미국 사회의 노동자 계층의 모습이었다. 모든 건 직접 겪어봐야 알 수 있다는 말이 있듯이 저자가 직접 겪어보고 전하는 글은 딱딱하고 죽어있는 글이 아닌 생동감 넘치게 살아있는 글이다.
책을 읽고 내가 알게 된 건 이기는 것보다 지지 않는 게 더 힘들다는 것이다. 시지프스 신화에 나오는 시지프스처럼 산 위로 돌을 굴리면 다시 아래로 떨어질 걸 알면서도 굴리고 또 굴리는 것. 저자의 글이 그렇고, 상위 1%를 제외한 99%의 모든 이들의 삶이 그렇다. 하지만 지금 우리 사회는 그 돌조차 굴리지 못하게끔 만드는 것 같다. 돌이 아래로 떨어져서 죽이 되던 밥이 되던 한 번은 굴려봐야 하는 게 인생 아니겠는가? 아예 굴려볼 기회마저 빼앗는 사회가 되어서는 안 된다. 지지 않기 위해 글을 쓴 저자처럼 지지 않기 위해 오늘을 살아가는 모든 이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경기가 좋았던 시절, 그러니까 소위 ‘주류‘ 언론 매체들이 호황을 누리던 20~30년 전만 해도 나는 프리랜서 작가로 생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