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일러가 존재합니다.
인간에게 이야기란 무엇일까?
이 질문으로부터 독서는 시작된다.
오랜만에 아주 재밌는 희곡을 읽었다. 물론 마틴 맥도나의 <필로우맨>은 읽은 후 재밌는 희곡이었다,고 하기엔 찜찜한 구석이 있다. 그만큼 이 희곡은 잔혹하며, 윤리적 생각을 이끌어내도록 유도한다. 그렇기에 이 희곡은 아주 조심스럽지만, 재밌게 읽을 수 있다.
필로우맨은 총 3막 구성으로, 막간극처럼 장이 존재하는 구성이다. 주인공은 두 형사와 두 형제. 투폴스키, 아리엘 형사와 카투리안, 마이클 형제. 이렇게 총 4명이다.
희곡은 이야기를 쓰는 작가인 카투리안이 두 형사에 의해 취조실에 갇힌 채로 시작된다. 카투리안은 단지 자신이 이야기를 쓰는 사람이며, 정치적인 이야기는 쓰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카투리안이 잡혀온 이유는 그게 아니었다. 카투리안이 쓴 이야기와 똑같은 방식으로 아이들이 살해된 것이다. 카투리안은 혐의를 부정하며, 자신은 단지 이야기를 썼을 뿐, 실행에 옮기지는 않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실제로 같은 방식으로 살해된 아이들이 존재하며, 죄의 자백을 위해 지적인 장애가 있는 형 마이클을 옆 방 취조실에 잡아온다. 죄를 부정하며 고문 당한 카투리안은 마이클이 있는 곳으로 가게 된다. 마이클에게 빠져나갈 수 있도록 해보자고 말하지만, 실제로 아이들은 마이클이 죽인 것이었다. 카투리안의 이야기를 빌려서.
단순하다면 단순한 구성을 가지고 있는 이야기지만, 이 희곡이 특별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이야기"에 있다. 이 희곡에는 메인 이야기, 네 명의 등장인물이 진행하는 이야기 외에도 카투리안이 작성한 이야기들이 존재한다.
면도날을 입에 넣어 죽은 여자아이, 피리 부는 사나이에 의해 발이 잘린 남자아이, 예수의 고난을 모두 겪고 죽은 여자아이까지. 이 잔혹한 이야기들이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발화된다. 이런 이야기들을 쓴 카투리안과 마이클의 과거 이야기 또한 나온다. 개인적으로는 이 이야기가 제일 인상적이었다. 카투리안에게 잔혹하고 흥미로운 이야기를 쓰게 만들기 위해서, 부모는 마이클을 고문하고 그 소리를 밤마다 카투리안이 듣도록 만들었다. 결국 그 사실을 알게 된 카투리안은 마이클을 살리고 자신의 부모를 죽인다. 이 이야기는 이야기에 집착한 부모와, 실제의 경험이 이야기에 반영되는가,에 대한 의문을 품도록 한다.
내 개인적인 답으로는, 맞다고 본다. 현실은 이야기에, 이야기는 현실에 영향을 끼친다. 이야기와 인간은 아주 밀접하게 맞닿아 있고, 상호작용하며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렇듯 <필로우맨>은 이야기를 다루는 이야기이다. 특히나 쓰기 어렵다고 느끼는 것이 이야기를 다루는 이야기인데, 속한 이야기 자체가 재밌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읽는 내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필로우맨>이 극이 올라와 극장에서 볼 수 있다면, 언젠가 꼭 보고 싶을 정도로 재밌는 희곡이었다.
- 본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 받아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