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사실인걸요. 아빠는 뭐든지 하느님께서 주신거라고 하셨어요. 엄마도 그러시잖아요. 하지만 하느님은 유럽에서 유대인들이 죽임을 당하는 걸 그냥 내버려 두셨는데 미국에선 유대인들이 몰살당하지 않도록 막아주실 거라고 믿을 이유가 있을까요? 하느님은 관심도 없어요. 하느님은 그런 분이라고요." (p.48)
그의 상념은 언제나 똑같은 결론에 이르렀다. 즉 하느님은
- 또는 어떤 존재이든 간에 - 분명히 지혜롭지만 그가 자비롭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는 것이었다. 만약 천상의 위계질서 속에 자비의 하느님이 정말 존재한다면 그는 아마도 무력하고 별 볼일없는 하위신(下位神)에 불과할 것이다.
말하자면 천상의 나치들 틈에 간신히 끼어있는 천상의 유대인이라고나 할까. 그러므로 이 세상을 떠나버릴 용기조차 없는 사람은 그저 립스크의 다락이나 시프라 푸아의 작은 골방 따위에 숨어들어 술이나 아편에 의지하며 그냥저냥 살아갈 뿐이다. (p.137)
독일은 물론이고 미국에서도 신나치 정당들이 결성되고 있었다. 공산주의자들은 레닌과 스탈린의 이름으로 늙은 교사들을 고문했고 중국에서는 <문화혁명>이라는 미명하에 마을전체를 말살해 버리기도 했다. 뮌헨의 술집에서는 아이들의 두개골을 가지고 공놀이를 하던 자들이 큼직한 잔으로 맥주를 마시고 교회에 가서 찬송가를 불렀다. 모스크바에서는 유대인 작가들을 숙청해 버렸다. 그런데도 뉴욕, 파리, 부에노스아이레스 등지의 유대인 공산주의자들은 오히려 살인자들을 찬양하고 어제의 지도자들을 비난했다. 진실? 이 정글엔 없다. 뜨거운 용암 위에 떠 있는 이 지구라는 이름의 접시위에 진리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하느님? 누구의 하느님이란 말이냐? 유대인들의? 파라오의? (p.2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