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을 칼로 쓰는 사람이 있다는 걸 그때 정확히 알았다.
글에 베인 상처의 회복에는 기약이 없었다.
마음의 상처를 심하게 입으면 몸이 반응하게 됐다.
말이 안나오거나 손이 떨리거나 머리가 멍해졌다.
하지만 호소하지는 않았다. 이의를 제기하지도 않았다.
악의에는 메시지가 있었고 이해했으니 괜찮다고 여겼다.
좋아하는 일이니까 일만 할 수 있으면 좋은 거 아닌가,
다소 순진하게 생각하기도 했다.
"선배 요즘 괜찮으세요?"
"응, 그럼. 왜?"
"눈이 운 것 같은데. 혹시 울었어요?"
"아닌데? 피곤해서 하품했는데?"
그 와중에도 누군가는 내 속을 헤아리고 있었다.
하지만 이해는 이해, 상처는 상처. 아침엔 몸을 일으키기가 힘들었다. 생각보다 일찍 깨서 생각보다 오래 뒤척였다.
그즈음에는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누워서 허송세월 하는 시간이 많이 있었다. 눈은 늘 조금씩 울고 있었다. 일에 효율이 떨어지기 시작하면서 그 사실 자체로 또 괴로웠다.
해야 할 일이 밀리고, 밀리면 조바심이 나고, 그런 리듬으로 기약없는 야근에 시달리는 악순환이었다.
혼자서 별말 없이 괴로워하다가 그 괴로움, 비효율, 우울의 근원에 분노가 있다는 걸 알아채는 데 2개월 정도가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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