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절실하게 느꼈던 바는, 새삼스러울 수 있지만 바로 ‘역사를 공부하는 즐거움’이었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이 책은 조선시대를 다루었으므로, 한국사 중에서도 ‘조선시대’를 공부하는 즐거움을 유감없이 표현한 책인 셈이다.
이 책은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납세제도인 대동법이 100여 년간에 걸쳐 기획되고 집행되는 과정에서 크게 활약한 4명의 ‘경세가’들의 삶을 다루었다. 각 인물의 생애사를 뒤돌아보며 그것이 대동법, 즉 민생을 살리기 위한 제도적 실천과 어떻게 접목되는지 살펴보았다.
대동법은 처음 입안된 후 전국적으로 실시되기까지 100년이란 시간을 거쳐야 했다. 100년. 이 시간이 갖는 무게가 과연 얼마나 될까. 대한민국은 2013년 현재 건국 65주년이다. 불과 세 세대 남짓한 기간 동안 대한민국의 최고 법인 헌법만 보아도 9차례나 개정되었다. 물론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사회변화의 속도가 빨라졌다는 점을 감안해야 하지만, 지금 대한민국사회에서 살고 있는 우리는 대동법처럼 긴 역사적 성숙을 거쳐 수백 년을 지속할 수 있는 합리적인 제도를 가지고 있는가?
이 책은 우리 한국인들이 민생을 위하는 세심하면서도 강인한 ‘제도’를 만들었던 자랑스러운 역사적 전통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전해준다. 흔히 말하지만 조선은 500여 년을 지속한 세계에서도 보기 드문 장수 왕조국가였다. 조선시대를 시기구분할 때 1592년 임진왜란을 분기로 전기와 후기로 나누는데, 사실 어떻게 보면 조선은 임진왜란을 계기로 무너졌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임진왜란에 개입했던 중국과 일본은 직접 전쟁이 발발한 곳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전쟁 부담으로 인해 지배세력이 교체되었다. 하지만 막상 전국이 전장으로 불탔던 조선은 체제를 보수하여 왕조를 유지하는 데 성공했다.
조선의 재배세력, 즉 양반 사대부 계층이 전쟁의 고통에도 불구하고 민심을 수습하고 사회를 안정시켜 국가체제를 유지해나갈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바로 대동법과 같은 긴 역사적 성숙을 통해 확립된 민생을 위하는 합리적인 제도들 덕분이었다. 이 책은 지금을 사는 우리 한국인들도 본받을 만한 훌륭한 삶의 지표를 보여주는 4명의 인물이 자신과 사회의 행복을 위해 좋은 제도를 고민해나가는 과정을 잘 드러내준다.
역사를 전공하지 않는 대중에게 이 책은 우리 한국인들의 훌륭한 역사적 전통을 알려주는 재미있는 책이 될 것이다. 최근 출범한 박근혜 정부가 장관 등 관료 인선으로 인해 곤란을 겪는 작금의 상황을 걱정한다면, 이 책을 통해 우리 역사에 등장했던 훌륭한 ‘학자관료’들의 삶을 접하고 현실도피?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한편 우리 대한민국이 민주주의 국가이며 최고 주권자가 바로 우리 스스로임을 안다면, 이 책을 읽으면서 ‘좋은 제도’라는 것을 어떻게 만들어나가야 할지 고민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역사를 전공하는 연구자들은 이 책을 꼭 한 번 읽어볼 필요가 있다. 이 책은 전공을 불문하고 조선 정치사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서술되었다. 어려운 조선 정치사를 누구라도 쉽게 이해하도록 만들기 위해 노력한 흔적을 엿볼 수 있다. 역사 연구자들은 한 번쯤 이 책을 보고 대중적 역사글쓰기를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