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방영 중인 드라마 <공주의 남자>에서, 남녀 주인공은 강론 자리에서 처음 만난다. 둘은 서로 알지도 못하는 상황인데 가문 간에 혼담이 진행된다. 남주인공은 성균관 직강으로서 종학(당시 종친교육기관)에서 공주를 가르치는 직무를 맡는다. 여주인공은 약혼자가 누구인지 알고 싶어 친밀한 사이인 공주에게 부탁하여 대신 강론에 들어간다. 평소 짓궂은 장난으로 강관들을 괴롭히곤 했던 공주를 손봐주려고 하는 남주인공이나, 약혼자를 알기 위해 몰래 강론에 임한 여주인공이나 강론은 뒷전이고 치열한 눈치작전만 벌인다. 엄숙하기만 할 것 같은 구중궁궐에서, 그것도 진지해야 할 강론장에서 벌어지는 남녀의 자잘한 ‘밀당’ 싸움이 시청자들을 즐겁게 만들었다.
조선은 유학을 통치 이념으로 삼아 ‘덕치(德治)’를 추구한 나라였다. 즉 법에 의한 통치보다는 도리와 예절에 의한 통치를 추구한 나라였다. 엄격한 신분제 사회였던 조선에서 덕치가 제대로 구현되기 위해서는, 가장 높은 신분이었던 왕(그리고 왕족들)이 충실한 덕성을 갖추어야 할 필요가 있었다. 왕이 제대로 도덕적 권위를 확보하지 못할 경우, 왕과 신하들 간의 적절한 균형과 견제로 운영되었던 조선의 정치 시스템이 제 기능을 하기 힘들었다. 그러므로 왕이 통치를 위한 덕성을 잘 갖출 수 있도록 교육하는 제도가 중시되었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경연이었다. 공주나 대군 같은 왕족들의 교육은 위에서 말한 에피소드처럼 가볍게 진행되어도 큰 탈은 없었겠지만, 왕을 대상으로 한 경연이나 세자를 대상으로 한 서연은 중요한 정치 문제를 논의하곤 했던 진지한 토론장이었다.
이 책은 한마디로 ‘경연 백과사전’이다. 조선시대의 경연 제도에 관한 사실들을 충실히 설명하고, 경연이 어떤 역할을 하는 자리였는지 풍부한 사례를 들어 차근차근 풀어주었다. 1장 <경연과 왕의 하루>와 2장 <경연에 관한 모든 것>이 여기에 해당한다. 3장 <경연의 기록, 그 숭고한 작업>에서는 고봉 기대승의 <논사록>과 율곡 이이의 <경연일기>를 소개하며, 경연의 실제를 보여준다.
이 책이 경연에 관한 백과사전이라고 해서 객관적인 딱딱한 사실들만 죽 나열되어 있지는 않다. 오히려 저자는 경연을 통해 드러나는 조선의 정치문화와 현재 대한민국의 정치문화를 적극적으로 비교하여 논평하곤 한다. 저자는 프롤로그에서 최근 대통령들의 ‘말실수’들을 지적하며 민주사회에서도 정치지도자의 ‘품격’이 중요하다고 주장하는데, 본론에서 경연의 역사를 소개하면서 조선시대의 왕과 학자관료들이 보여주었던 ‘품격’의 좋은 예들을 보여주고 있다. 저자가 보기에는, 조선시대의 경연은 적어도 ‘정치문화’의 측면에서는 민주사회를 사는 현재의 우리들에게도 귀감이 될 수 있을 만한 전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