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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wdual님의 서재
  • 마흔에 관하여
  • 정여울
  • 12,420원 (10%690)
  • 2018-11-24
  • : 1,583

  삶의 방향성을 잃고 흔들릴 때마다 큰 위안을 주는 책들이 있다. 내게는 정여울 작가님의 책들이 그러한 듯하다. 정여울 작가님의 신작 [마흔에 관하여]를 접하고, 이전에 정여울 작가님의 [그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과, [그때, 나에게 미처 하지 못한 말]을 읽고 큰 위로를 받았던 기억이 떠올라 두근거리며 책장을 열었던 듯하다.

  작가님이 직접 경험하시고 느꼈던 것들을 풀어낸 에세이는 직접적으로 삶의 지침을 알려주는 그 어떤 자기계발서 보다 더 크게 마음에 와 닿았다. 아마도 작가님이 직접 겪으셨던 상황을 이야기를 들려주듯 꺼내놓으셨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다른 이들의 성공이나 실패담. 위인이나 철학자들의 일화가 아니라 자신의 이야기를 마치 친구나, 지인에게 털어놓듯 그렇게 써내려 가신 때문일까. 정여울 작가님의 글을 읽을 때면 마치 내 주변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듯한 현장감이 들곤 했다. 이번 신작 또한 읽는 동안 책과 대화를 나누는 기분이 들었더랬다.

  작가님 개인의 내밀한 이야기들은 너무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은 딱 적당한 무게로. 내도록 포근하다 느껴지는 온도로. 그렇게 다가왔다. 책을 읽고 나선 그 동안 내가 이토록 목말랐구나 하는 걸 느끼게 되었다. 언제부턴가 친구들과 지인들을 만나면 그 동안 어떻게 지내왔는지, 어떤 것이 스트레스와 짜증을 유발하는지 이야기하거나 나와 상관없는 타인의 이야기 같은 것들만 풀어놓게 되었던 듯하다. 그러다 보니 내 외부가 아닌 내부에서 일어나는 서사들이나, 깊이 있는 고민과 성찰에 대한 갈망들은 점점 나 혼자 끌어안게 되었던 듯하다. 그게 그렇게 힘들고 외롭진 않았던 것 같은데 책을 읽는 동안 나도 모르게 울게 됐다. 때로는 친구처럼, 언니처럼, 스승처럼. 그렇게 다정하게, 상냥하게 말을 걸어주는 것 같아서. 괜찮다고. 얼마든 이야기 해보자고. 그렇게 말하는 것만 같아서.

  작가님이 겪었던 아픔들. 지나온 삶의 경험. 기쁨과 슬픔, 고민이나 깨달음 같은 것들이 책을 읽고 있는 게 아니라 대화를 하는 것처럼 그렇게 다가왔다. 자리를 망칠까봐서. 기분을 상하게 할까 봐서. 상황과 맞지 않아서. 혹은 차마 말로 표현 할 수 없어서 내 안에 깊이 묻어 두었던 것들이 나도 모르게 쏟아져 나왔다. 오랫동안 이런 기쁨을 잃고 살았다는 게 안타까울 정도로 그렇게 즐겁게 책과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냈다.

 

  몇 년 후면 나도 마흔이 된다. 아무 것도 이뤄낸 게 없다는 초조함, 불안 같은 것들이 늘 나를 따라다니고 있었다. 해야만 하는 것과 하고 싶은 것들 사이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어정쩡하게 자리 잡고 있다 보니 결국 나는 아무 것도 아닌 게 되어버렸다. 이대로 무엇도 이루어내지 못한 채 마흔을 맞이해선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마흔 즈음이면 성공이나 안정과 같은 것들이 당연한 사회에서 뚜렷한 목표 없이 여전히 불안정하기만 한 나는 낙오자인 게 분명하다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사회의 틀에 맞춰져 스스로를 질책하던 내게 작가님은 나이 듦은 그런 게 아니라고, 그런 생각 때문에 상처 받지 말라고. 나이 듦은 ‘우리 자신에게 잠재된 가능성과 더욱 뜨겁게 만날 수 있는’ 기회라고 그렇게 말해주셨다. ‘벗어날 수 없는 콤플렉스와 트라우마’가 있을 지라도. 그 ‘그림자마저 나의 일부’로 받아들일 수 있는 시간이라고. 그 말을 듣는 순간 그 동안 응어리져 있던 마음이 조금씩 풀리는 기분이 들었다. 돈이나 명예 같은 게 아니라 여전히 나를 좀 먹고 있는 오래된 아픔과 마주하고, 그 아픔마저 받아들여 나의 일부가 되게 하는 것이. 그렇게 진짜 나를 찾아가는 시간이. 어쩌면 내게 가장 필요한 나이 듦이며, 흘러가는 시간을 달가이 받아들일 수 있는 방법인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사코 거부하고 싶던 나이를, 이정표 없이 부유하기만 했던 시간들을. 이제는 목표를 향해 조금씩 나아가게 해주고 싶어졌다. 한심하다고 자책하기 바빴던 나를 보듬어주고, 진심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내가 나라고 믿고 있던 내가 진짜 나였는지. 아니면 타인들의 시선이나 기대에 맞춰 성립된 나였는지. 찾아보고 탐구해보는 시간을 가져보고 싶어졌다. 남들의 시선을 의식해 하지 못했던 제대로 된 거절과 진심에서 우러난 타인에의 포용을 목표로 하고 싶어졌다. ‘그 누구에게도 보여줄 수 없는 눈물과 흐느낌을 담아낼 마음속 비밀의 화원’도 만들어 보고 싶고. 어떻게 해도 지워지지 않는 아픔을 스스로 짊어질 수 있는 용기도 가지고 싶다. 그리고 언젠가 당당하게 ‘나’를 세울 수 있게 되고 싶다.

  ‘투명하게, 그 누구의 인용문도 없이’. 굳이 타인의 목소리나 권위를 빌리지 않아도. 남들과 나를 비교하며 내 위치를 재지 않아도. 제대로 나로 살고 있다고. 제대로 나로 있을 수 있다고. 그렇게 말할 수 있게 되고 싶어졌다. 나이를 먹는 것이 두렵고 무서운 것이 아니라 설렘이나 기대로 가득 찰 수 있게 되고 싶어졌다. 그리고 언젠가 ‘폭발하듯 내 안에서 용솟음쳐’ 나오는 용기를 받아들여 보고 싶어졌다. 아직 부족하다고, 좀 더 노력해야만 한다고. 안 될 거라 믿었던 것들과 마주할 용기가 언젠가 한 순간에, 내 안에서 터져 나올 수 있는 날이 올 수 있도록. 나를 다독이고, 응원해주려 한다.

 

  내 책장 안에. 그리고 마음 안에 보물이 하나 더 늘어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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