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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lkm31님의 서재
  • 아픔이 길이 되려면
  • 김승섭
  • 16,200원 (10%900)
  • 2017-09-13
  • : 23,624

한국 정부는 낙태를 음성적으로 권장하던 시기에도, 낙태금지를 실질적으로 고려하는 시기에도 계속해서 여성의 몸을 통제하고 관리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그 의사결정 과정에서 당사 자인 여성은 항상 배제되었습니다. 이 예민하고도 복잡한 문제를 진정으로 해결하고 싶다면, 여성이 왜 낙태를 선택하려고 하는지에 대해 질문하고 그 고통스러운 당사자의 목소리에 차분 히 귀를 기울이는 것이 시작일 것입니다.
p.38
이와 같은 연구들이 검증하고 있는 내용, 즉 태아기의 영양결핍이 성인 만성병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절약형질가설Thrifty Phenotype Hypothesis‘ 이라고 부릅니다.
p.43
이 논문에서 크리거 교수는 우리가 오늘날 질병의 원인이라고 부르는 것들에 의문을 제기합니다.
1960년대부터 역학 교과서에 등장한 ‘원인의 그물망web of causation’은 질병의 원인을 설명하는 유력한 이론입니다.

예를 들어, 대표적인 만성질환인 제2형 당뇨병을 생각해보지요. 당뇨병의 원인은 한 가지가 아닙니다. 노화와 가족력은 물론이고, 고혈압과 과체중도 원인입니다.

여러 원인들이 서로 엉켜 함께 당뇨병 발생에 영향을 주는 것입니다. 이처럼 다양한 원인들로 인해 질병이 발생하는 과정을 묘사하기 위해 역학 연구들은 원인의 그물망‘ 이라는 용어를 사용해왔습니다.

크리거 교수는 그 지점을 파고들었습니다.
"왜 사람들은 그원인의 그물망이 마치 처음부터 주어진 것인 양 생각하는가?"
우리가 살아가는 공동체의 사회적 환경은 주어진 고정물이 아니라 역사 속에서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토대 위에서 형성되것인데도, 왜 질병의 원인을 항상 개인 차원의 고정된 요인으로만 가정하는지 질문한 것입니다.

유전적 요소인 가족력조차도환경적 요인과 상호작용하면서 질병 발생에 영향을 주는데, 질병의 원인을 개별적으로 개인 차원에서만 고려할 때 우리가 놓치는 점이 무엇인지 묻는 것이지요.

어떤 이가 박테리아에 노출되어 결핵에 걸리고, 또 다른 이가 흡연 때문에 폐암에 걸린다고이야기하고 끝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물망처럼 얽힌 여러 원인들로 인해서 사람들이 아프다면,
그 그물망을 만든 거미는 무엇이고 누구일까요?

우리는 그 그물망을 엮어낸 역사와 권력과 정치에 대해 물어야 하고, 좀 더 간결하게 말하자면 ‘질병의 사회적, 정치적 원인을 탐구해야 한다고 크리거 교수는 말합니다.
p57-58
지금과 같이 가장 위험한 작업을 가장 약한 이들에게 넘기는 외주화가 지속되고 확대된다면, 규제의 손길이 닿지 않는 국내 하청기업의 비정규직 노동자나 인도나 중국의 누군가가 제2의 황유미, 제2의 이숙영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리고 아마도 보이지 않는 존재가 되어버린 그들의 상처와 고통을 우리는인지하지 못할 것입니다.
p119
대기업들은 그 부담을하청업체에 넘기고, 하청업체는 노동자 개인에게 그 부담을 넘기면 되니까요. 기업들은 버티지 못한 병든 노동자를 해고하고새로운 비정규직 노동자를 채용합니다. 한국사회는 노동시장에서 가장 약한 사람에게 부담을 떠넘기는 잔인한 논리로 운영되고 있는 것이지요.
p124
다시 도전할 수 있는 패자부활전이 존재하지 않는, 해고된이들을 지원하는 사회 안전망이 작동하지 않는 한국사회에서 ‘해고는 살인‘이 될 수 있고, 언제 해고될지 모른다는 고용불안은 삶을 뿌리째 흔드는 위협이 될 수 있습니다.
‘저성과자 해고‘ 행정지침은 고용불안을 전 사회적으로 만성화시키고, 아파도 참고 일해야 하는, 그러다 견디지 못하고 자살로 삶을 마감하는 노동자의 수를 늘리는 결과를 낳을 것입니다.
p127-128
실험 결과는 명확했습니다. 컴퓨터상으로 진행되는 따돌림이로 인해 뇌 전두엽의 전대상피질Anterior Cingulate Cortex 부위가화성화됐습니다.

인간이 물리적으로 통증을 경험하면, 즉 누군가가 나를 때려 아픔을 느끼면 활성화되는 뇌의 영역에 혈류가모인 것입니다. 우리 뇌가 물리적 폭력과 사회적 따돌림을 같은뇌 부위에서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지요.

이 연구는 소수자에 대한 차별적 발언이 그들을 물리적으로 폭행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점을 말해줍니다. 그들이 일상적으로 모욕과 차별을 경험하고 부당하게 공동체에서 배제될 때,
피해자의 뇌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를 보여주었습니다.
모욕과 차별은 사람을 아프게 합니다.

p231
그럴 때면, 누군가 반문하기도 합니다. 가벼운 생계형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야 그렇다고 쳐도 성폭행이나 살인으로 들어온 이들에게도 그런 치료를 해주는 게 맞느냐고, 그들의 인권도 존중 해야 하는 것이냐고 물었습니다.
그런 질문을 들을 때면, 어찌 답할지 몰라 망설이다가 작은 목소리로 답하곤 했습니다. 인권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지만, 공동체의 수준은 한 사회에서 모든 혜택의 사각지대에 놓인 취약한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라고요.
조심스럽지만, 지금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p249
얼마 전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의 다섯 살 된 아이가 유치원 버스에 타지 못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아빠가 경찰진압으로 인해 버스에서 워낙 심하게 구타당하는 것을 봤던 게 트라우마가 되어버린 거지요. 다른 아이들이 다 같이 동물원에 소풍을 가도, 버스 계단에 발을 올리는 게 그리 어려워서 홀로 유치원에 남아 있어야 했던 그 아이의 가슴속에 들어 있을 무언가에대해서 잠시 걸음을 멈추고 생각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85호 크레인에 올라가 있는 김진숙 씨가 전기가 끊겼던 밤에 얼마나 외롭고 무서웠을까를 생각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나이 60이되어서도 꼭 되고 싶고 그게 가능한 삶으로 저를 끌고 가고 싶어요. 그리고 아름다운 사회는 나와 직접적으로 관계가 없는 타인의 고통에 대해 예민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사회,

그래서 열심히정직하게 살아온 사람들이 자신의 자존을 지킬 수 없을 때 그 좌절에 함께 분노하고 행동할 수 있는 사회라고 생각해요.

점점 그런 인간을 시대에 뒤떨어진 천연기념물처럼 만들고,
타인의 고통 위에 자신의 꿈을 펼치기를 권장하고 경쟁이 모든 사회구성의 기본 논리라고 주장하는 사회가 되어가는 게 저는 싫어요.
p302-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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