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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뿐호빵님의 서재
  • 빨강의 역사
  • 미셸 파스투로
  • 17,100원 (5%180)
  • 2020-09-11
  • : 538

극과 극의 빨강

 

 

가장 원초적인 색, 빨강

 

<파랑의 역사>가 천천히 떠올라 뒷심을 자랑하는 인내의 역사라면, <빨강의 역사>는 열정적인 강렬함으로 극과 극을 오고 가는 역동적인 역사다. 튀지 않게 조용히 지금까지 모든 이에게 사랑을 받는 파랑에 비해, 빨강의 파란만장한 시간은 우리의 삶을 연상시킨다. 인생무상과 새옹지마. 빨강의 상징성은 날개 없이 추락하고 급변한다. 시대별 변화무쌍함에 과히 멀미가 날 정도다. 하지만 지루할 틈이 없다. 그리고 책의 자료에서도 <파랑의 역사>보다 압도적이다. 그래서 볼 것도 많고 흥미롭다. 신화적 이야기, 에피소드도 있어 책은 첫 부분부터 빠르게 흡인력을 자랑한다. 그리고 <파랑의 역사>를 읽은 후라 <빨강의 역사>는 그저 얻어 가는 부분이 제법 많아 더 가볍게 접할 수 있다. 하지만 늦은 후기에 뒷북치는 기분은 감출 수가 없다. 잠깐 푸념을 하자면, 이렇게 올해도 나의 다짐은 1월부터 무너졌다는 것이다.

 

 

극과 극을 달리는 빨강의 역사는 다채롭다. 앞서 말한 것처럼 익숙한 자료와 로마 그리스 신화 이야기 속에 담긴 빨강의 이야기는 우리가 아는 신화를 더 풍부하게 만들어 갔다. 여러 신의 상징물(아폴로, 마르스, 케레스, 메르쿠리우스)인 수탉은 예언이라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수탉은 로마인의 숭배 대상이었는데, 볏의 색은 빨강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색으로 여겼다는 것이다. 그리고 영광과 승리를 나타내는 징표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 빨강의 위치는 사람의 경우에서는 제외다. 붉은색 머리카락을 가진 사람은 여성과 남성 모두에게 부정적인 이미지를 부여했다. 붉은색 머리카락을 가졌다는 것은 일상적으로 모욕적인 욕설 가운데 하나였다는 것이다.

 


원초의 색 빨강은 불과 피를 연상케 한다. 빨강은 이처럼 생명의 색이었다. 그리고 과거 신성함과 지배적인 상징성을 표현하는 살아있는 색이었다. 성서에서 그리스도의 색으로 포도나무의 피는 포도주다. 고대 로마 화가들은 다른 어떤 색보다 다양한 색조의 빨강을 사용하였다. 로마 염료의 명성을 드높인 염료는 자주 조개다. 로마의 자주 조개 염료로 염색한 고품질의 모직물은 15 ~20배나 높은 가격을 받았다. 그로 인해 일어나는 사기행각은 당시 사회문제가 되기도 했다. 동로마 시대 황제 직할의 사업으로 몇몇 특정 지역에서만 독점적으로 수확과 염료 제조 등을 할 수 있게 규제했다. 자주 조개 염료는 곧 황실 가족에게만 허용되었고 귀족들의 특권이 되었다.

 


성서에서 주조를 이루고 높이 평가되는 빨강 그리고 하양과 검정에 관한 잘못된 편견을 꼬집었다. 성서 속 다양한 의미의 색채는 시뻘건 지옥과 어둠의 검정으로 하양의 순수와 순결이라는 단순한 상징만 남긴 잘못된 편견을 말하였다. 그리고 근대의 흑백 대비는 고대에는 없었다는 점이다. 색의 대립에서도 근대와는 다른 양상을 보여주는 색의 이야기는 그 사회를 그대로 담고 있다. 빨강의 상징성은 일상 언어의 색을 나타내는 어휘뿐만 아니라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지금까지도 그 역할을 이어가고 있다.


 

“루비콘 강을 건너다.”

금기를 어기고 모든 것을 건 카이사르는 레드 라인을 넘었다. 이는 로마 제국의 앞날에 엄청난 결과를 초래한 불경한 행동을 의미한다. ‘레드 라인’ 금지된 경계선을 넘은 것과 마찬가지였다. 루비콘 강의 지리적 의미보다 강의 상징성은 불그스름한 색의 상징적 의미와 더불어 카이사르의 시간을 담고 있다. 이 강을 건너면서 이야기한 카이사르의 “주사위는 던져졌다.”라는 말도 함께 말이다. 빨강은 이렇게 역사를 바꾸는 분기점을 이루는 사건의 중심에 있었다.

 


 

색은 단지 색을 나타내는 단어가 아니었다. 색은 추상적이고 색소와 염료와 상관없이 그 자체로 인정받아 개념화되었다는 점이다. 중세 교부들의 빨강에서도 풍요와 생명의 긍정적인 면과 인류 타락의 상징인 부정적인 면은 극을 달렸다. 파랑의 잔잔한 시간에 반해 빨강의 시간은 몰아치는 파도 같다. 빨강은 귀족층이 가장 선호하는 색이기도 했다. 그리고 여성적인 색으로 남성적인 색으로 그 상징성을 동시에 지니기도 하였다. 그래서 빨강의 이야기는 지루할 수 없는 다양함이 녹아있다는 것이다. 때로는 용맹스럽게 때로는 잔인하게 또 때로는 영예로운 이야기로 말이다. 무엇보다 사랑의 빨강은 관능적이면서도 따뜻하다. 우아함과 매혹적인 빨강은 누군가를 유혹하거나 무언가를 욕망하는 색이기도 하다. 빨간 열매는 사랑의 상징물이 되었다. 특히 체리는 젊은이들이 사랑을 고백할 때 쓰였으며, 체리는 젊음이며 봄의 상징이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름다운 빨강의 역사도 교회에선 속임수와 죄악의 상징성을 지니기도 했다. 대표적인 예가 중세 채색 화가들의 그림에서 막달라 마리아에게 빨강의 옷을 입혔다. 막달라 마리아는 주로 붉은색 드레스나 망토를 입은 모습으로 나타난다. 여기서 빨강은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과 동시에 창녀라는 예전의 신분을 암시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제 독보적인 빨강의 위치는 막강한 경쟁자를 만나면서 무너지게 된다. 필적할 만한 상대가 없을 만큼 빨강의 시대는 화려했다. 하지만 파랑의 등장은 이 모든 것을 역전시킨다. <파랑의 역사>에서 이미 읽었지만, 12세기 중엽부터 13세기 초 사회적, 예술적, 종교적 삶의 모든 분야에서 파랑의 가치 상승은 빨강의 영광을 과거의 뒤안길로 보내 버렸다. 이렇게 파랑의 혁명은 시작되고 역사적인 신분 상승과 함께 파랑의 위치는 현대까지 이어졌다. 빨강과 파랑의 전쟁은 경제적인 측면에서 더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염색업자들의 경쟁과 그들과 관련된 모든 면에서 사회적인 갈등이 생겨났다.

 


중세 봉건 시대의 빨강의 독보적 위치는 이제 배척당하고 추락한다. 이제 빨강은 모든 색 중 가장 추한 색 중의 하나로 포함되기도 한다. 흑사병 이후 빨강의 위기는 사치 단속령과 프로테스탄트 종교 개혁에 의한 색의 새로운 체제에서 버려짐으로 더 심해진다. 그리고 과학의 진보와 아이작 뉴턴의 스펙트럼 발견으로 빨강의 색의 단계는 점점 더 한쪽 끝으로 밀려났다. 빨강은 이제 지옥 불에서 악의 상징으로 남는다. 빨강과 악마는 불가분의 관계다. 우리가 아는 체스에서 빨강 말과 흰색 말의 대립은 체스가 유럽으로 넘어오면서 원래 빨강과 검정의 대비에서 바뀐 것이다. 프랑스 대혁명 속에서의 빨강은 죄의 색인 동시에 징벌의 색이었다. 그리고 낙인의 대명사 빨강은 글자에서도 줄을 긋는 것에서 상징성을 더했다. 이는 지금도 여전히 존재하는 금지에 관련된 빨강의 위치다.



화가의 팔레트에서 빨강은 매우 다양한 색조로 변조되었고 섬세하게 다뤄졌다. 17세기는 과학적인 측면에서 색의 전환기였다. 이제 색의 영역에 과학이 들어오게 된 것이다. 색은 곧 빛이며, 다양한 환경에서 빛은 물리적 변화를 겪으면서 일어나는 현상을 관찰했다. 이제 색은 제어 가능한,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었다. 많은 화가의 팔레트에서 그들의 호기심은 부풀어 올랐다. 18세기는 화려한 빛의 세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제 많은 이들이 밝고 선명한 색을 누릴 수 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 유행에서 빠진 색이 있다. 바로 빨강이다. 18세기는 파랑의 시대였다. 빨강은 힘을 잃은 것이다. 그러나 빨강의 여러 색조 중 주목받지 못했던 색조인 분홍의 위상이 달라진다. 당시까지 분홍 색조를 명명하던 이름이 없었다. 고유의 이름이 없던 색 분홍은 아름답고 우아한 색이었다. 그리고 당시까지 색 배열에서 분홍은 빨강과 흰색의 조합이 아니었다. 분홍은 노랑 계열이었다는 점이다. 노랑의 연하고 우아한 버전으로 정의되었다. 18세기에 중엽에는 분홍의 인기가 절정에 달한다. 그리고 당시 분홍은 여자들의 색이 아니라 남자들의 색이었다. 여성화된 분홍으로 고착된 시기는 1930년대 이후로 그리고 1970년 바비인형이 분홍 옷을 입고 나타남으로써 여자아이들의 놀이와 함께 더 고착되었다.

 


18세기 귀족들은 투명한 하얀 얼굴 ‘푸른색 피’ 정맥이 보일 정도의 얼굴빛을 띠고 백연을 두껍게 발라 주름을 감추고 입술과 뺨에는 붉은색을 칠하지 않고서 나타나선 안 된다는 불문율이 있었다. 프랑스어 루즈(rouge)는 당시 화장품을 가리키는 단어처럼 쓰였다. 프랑스 궁정의 남녀 모두가 사람들 앞에서 화장품을 휴대하여 덧발랐다. 화장품은 시대를 불문하고 필수라는 사실에 별 놀랍지도 않지만, 비슷한 모습들의 오버랩은 늘 아이러니하다. 화장의 색조 계에서 빨강은 독보적이다. 19세기 조명과 새로운 사회에 맞춘 간결하고 세련된 화장법이 유행하였다. 그리고 빨강은 사회 질서 밖에서 예술가의 영역에서 끊임없이 호기심을 자극하는 색이 되었다. 진한 화장과 빨강의 상징성은 캔버스 위에서 춤을 추었다. 빨강은 지금도 여전히 화장품 회사에서 상징적인 존재다. 붉은 입술과 불그스름한 뺨은 젊음의 상징이고 건강의 상징이다.

 



1960년대 이후 색은 자유를 맞이한다. 그리고 빨강의 상징체계는 더 다양해진다. 정치적 색으로 빨강의 새로운 의미가 부가되었다. 프랑스 대혁명 속에서 탄생한 정치적 빨강은 19세기 유럽 사회에서 끊임없이 투쟁하였다. 20세기에는 국제적으로 다시 위상을 획득하게 되었다. 사회주의, 공산주의, 급진파, 혁명파 등의 상징인 빨강은 이념의 색으로 강렬하게 남았다. 빨강은 유난히 정치적인 색이다. 그리고 분홍은 온건한 노선의 급진파의 색이 되었다. 빨강의 역사가 더 조용할 날이 없는 것은 정치색이 짙어서 일지도 모른다. 유혈 사태를 연상케 하는 급진적인 색 빨강은 이렇게 사람들의 의식에 자리 잡았다. 위험을 경고하는 빨강은 평화적인 상징이다. 빨강은 반항적이거나 폭력적인 색이 아니었다. 우리에게 경고를 알리는 신호였던 빨강은 구조를 위한 색이었다. 하지만 1791년 7월 17일 혁명의 날, 분노한 백성의 상징물이 되었다. 이 빨강 깃발은 억압받고 분노한 민중의 깃발이었다. 그들이 바라던 자유의 상징이기도 했던 빨강은 전제군주제에 저항하는 투쟁의 색이기도 하였다.

 

 

시대를 지나면서 한 가지 사고의 흐름은 색의 다양한 상징성을 박탈한다는 점을 저자는 강조했다. 그리고 우리에게 남은 빨강의 상징성처럼 요즘에는 녹색이 그 뒤를 밟고 있는 것 같다고 우려했다. 열렬한 생태운동가들과 녹색은 또 다른 빨강의 역사를 만들어 가고 있는 듯하다는 것이다. 지나치게 단순화하는 환원주의적 태도가 색의 상징뿐만 아니라 우리의 일상에서도 어떤 식으로 흘러갈지 예측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휩쓸림에서 살아남기는 개인의 몫으로 남는다. 한 가지 개념이 아니라 여러 개념의 다양한 표현을 가질 수 있는 색이 존재할 수 있는 사회는 다름을 인정하는 사회일 것이다. 모두가 획일화된 사고방식으로 흘러갈 때, 그 사회는 극으로 닿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성격에 따라 조건에 따라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는 사회, 색의 변화무쌍한 상징성을 허락하는 사회를 <빨강의 역사>를 통해서 생각하게 된다. 정치적인 색 이외에도 많은 상징성을 내포하는 빨강은 일상에서 보편적으로 쓰이는 색이다. 금지와 경고를 알리는 빨강은 일상생활에서 빠지지 않는 중요한 존재다. 위험을 알리는 중요한 역할의 빨강은 다소 금지의 의미인 부정적인 개념으로 많이 쓰이지만, 분명한 건 우리를 보호하는 색이다. 공포를 의미하는 빨강은 때론 우리를 불안에 떨게 만들지만, 이는 위험한 색만은 아니란 것이다. 무엇보다 빨강의 강렬함은 이목을 집중시키는 색이다. 그래서 광고나 홍보에서 빠질 수 없는 색이다. 매우 감각적인 색으로 힘이 있는 색이다. 기쁨과 축제의 색, 공식 석상에서 레드 카펫은 대중을 압도하는 색이다. 빨강의 장엄함과 위엄은 지금까지도 유지되고 있다.

 


극과 극을 잇는 빨강의 극적인 역사는 역동적이고 파란만장하다. 하지만 역사 속에서 위치가 바뀌었다고 하지만 여전히 생동감 넘치는 색이다. 그렇게 활력을 주는 빨강은 우리에게 자양강장제 같은 색이다. 빨강이 취향적으로 선호하는 색이 아닐지라도 분명 빨강은 우리에게 힘을 발하고 있다는 점을 부정할 수 없다. <빨강의 역사>는 감당하기 무거울 수 있는 버거운 역사다. 하지만 파랑이든 빨강이든 우리의 삶에서 함께한 이들의 역사가 그 자신만의 역사가 아니란 점이다. 우리의 역사다. 그러기에 버겁다고만 할 수 없는 것이다. 감당해야 하고 일상에서 나와 함께한 모든 것이 역사의 흔적이라 생각하면 빨강의 역사도 나와 연결된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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