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색에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책이 눈에 들어오게 된 계기는 우연이었다. 책을 읽다 내 손에 쥔 책의 표지가 파란색이었고, 고개를 든 순간 내 눈에 들어온 책들의 표지가 파란색이 많이 쓰였다는 것이었다. 무심코 이 파란색에 대한 호기심이 발동했다. 쓸데없이 시작된 의지는 파란색에 관한 책을 찾아야 했다. 그렇게 우연이지만, 필연적으로 내 손에 <파랑의 역사>가 쥐어졌다. 그리고 나에게 또 다른 색에 관한 책이 자연히 따라왔다. 또 한 권의 책 <빨강의 역사>는 이렇게 내 손에 들어왔다. 파랑과 빨강의 대비, 색과 함께 지나온 과거는 또 어떻게 흘러가는지 궁금증 유발로 책장을 넘겼다.
“파랑을 사랑하는 모든 이들에게 바칩니다!”
색채와 역사, 우리가 보편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분야는 회화 분야일 것이다. 색채 그러면 떠 오르는 이미지가 그림들과 화가였고, 짧은 시간 대부분의 생각은 그것과 관련된 이야기였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파란색 계열을 좋아하는 사람으로 파란색에 대해서 호의적이다. 대표적으로 좋아하는 색 중의 하나다. 무엇보다 3월의 탄생석 ‘아쿠아마린’의 영롱한 푸른색과 나의 연관성은 파란색과의 관계를 더 친밀하게 만든다. 파란색을 싫어하는 사람은 별 없을 정도로 우리에게 파랑은 매우 친숙하다. 그리고 시원하고 평화스러운 색으로 인식된다. 또한, 중립적이고 때로는 몽환적인 신비로움을 주는 색으로 묘함을 선사하는 색이기도 하다. 파랑을 떠 올리며 생각하는 대부분의 생각이 그다지 나쁘지 않다는 사실에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파랑의 역사>는 말 그대로 역사 책이다. 저자 미셸 파스투로는 프랑스를 대표하는 중세사 연구자이며 중세 문장학의 대가이다. 그의 대표적인 저서 <파랑의 역사>는 파란색의 역사를 다양한 역사적 사실과 함께 고찰해 나간다. 파스투로는 색은 사회적 현상으로 색의 진실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색은 무엇보다 우선 사회 현상으로 정의된다.” 그렇기에 색의 역사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이 세계를 구성하는 모든 요소를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리고 한 시대에 녹아있는 특정한 문화가 어떻게 색의 역사적 측면에 영향을 미치는지, 통시적으로 연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책은 신석기 시대부터 20세기까지 파랑의 역사를 주요 맥락으로 삼는다.
파란색은 태초부터 자연에 널리 퍼져 있는 색이었다. 하지만 인류는 이 파랑을 아주 뒤늦게야 인식하고 재현하고 생산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한 시대의 옷감과 의복은 우리가 색의 역사를 이해하는 데 가장 풍부하고 다양한 자료를 제공해 준다. 그래서 파스투로는 그 시대에 사용됐던 용어들이나 예술, 혹은 회화에 관한 자료들 보다 옷감과 의복은 훨씬 풍부하고 다채로운 정보를 준다고 말한다. 직물은 당시의 기술과 경제, 사회, 사상, 상징 등 모든 문제와 밀접하게 연결돼 있어, 색에 대한 문제들을 거의 다 찾아볼 수 있다는 것이다.
최초의 염색물은 아시아와 아프리카에서 발견된 것이다. 유럽의 염색물은 기원전 4000년 말엽 붉은색이 전부다. 수천 년 동안 직물 염색은 단연 붉은색 염색을 의미하였다. 그리고 중세까지 색의 중심은 흰색, 검은색, 붉은색으로 파란색은 보이지 않는 색이었다. 사회적 차원에서 상징적으로 파란색은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어느 시대나 그 사회에서 실제로 존재하는 색과 우리에게 인식되는 색에는 차이가 있을 수 있다. 그리고 이름 붙여진 색 사이에서도 아주 엄청난 차이를 발견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러한 차이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과거 로마 사람에게는 파랑은 켈트족이나 게르만족 같은 미개인의 색으로 취급되었고, 심지어 파란 눈을 가진 사람도 추하게 취급 받았다. 그리고 로마인에게도 그리스인에게도 당시 무지개에 파란색이 없는 4가지 색으로 구분되었다. 그리고 많은 학자의 사색과 논증에도 파란색은 빠져있었다. 중세 초까지 파랑의 상징성은 별 것 아닌 것, 보이지 않는 색이었다. 흰색, 검정색, 빨간색 위주였다. 그리고 녹색은 세 가지 중심 색을 연결해 주는 중간색 정도로 취급되었다. 일상생활에 파랑이 쓰이지 않았던 것은 결코 아니다. 궁정의 귀족들에게는 버림받은 색이었지만, 농부나 신분이 낮은 사람들한테서 사용되었고, 이는 12세기까지 이어졌다. 파랑의 사회적 인식이나 상징성이 너무 약해서 역사적으로 보이지 않는 색이 된 것이다.
파랑의 가치 상승
12세기부터는 파랑은 이제 서양 사회에서 보이지 않는 별것 없는 색이 아니었다. 이제 파랑은 유행하고 귀족적인 색으로 전환기를 맞이한다. 그리고 작가들에게 가장 아름다운 색으로 칭송을 받기도 한다. 이렇게 파랑의 지위 상승은 의복으로 나타났으며 예술 창조 활동 등으로 급속히 번져 나갔다. 파랑의 가치 상승은 사회적으로 그 상징성을 부여했고, 색 체계를 새롭게 재편성 하였다. 색의 세계에 새로운 질서가 생겨난 것이다.
12세기에 이르러 성모마리아의 겉옷이나 드레스의 색상에 파랑이 쓰였다는 점이다. 이는 파랑이 사회적으로 급부상하는 데 큰 역할을 했으며, 파랑의 가치 상승과 함께 사회 전반에 파랑의 유행을 만들어 냈다. 이러한 변화는 사회적으로 많은 영향을 끼쳤으며, 문학 작품에서도 색의 암시 체계를 볼 수 있었다. 14세기 중반 즈음에 쓰인 작품에서 파랑이 등장한다. 용감하고 충성스럽고 성실한 인물의 파랑의 기사가 등장하였으며, 이를 예찬하는 궁정 시인들도 등장하게 된다. 카페 왕조는 서양에서 최초로 문장(紋章)에 청색을 사용한 왕조다. 왕이 파랑을 사용한다는 것, 이는 파랑의 인기를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파랑의 등장은 경제적으로도 큰 파급효과를 만들었다.
빨강을 염색하는 염색 전문가는 파랑을 염색할 수 없었고,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도시의 염색 업자들은 아주 엄밀히 전문화돼 있었고, 이는 왕실과 당국 사이의 갈등을 일으키기도 하였다. 이들이 취급하는 염료는 서로 달랐으며, 염색 기술적인 면에서도 완전히 달랐다. 무엇보다 그들의 고객층이 달랐다는 것이다.
15세기 이전까지 염색에서 회화에서 색 제조법을 설명하는 책은 전혀 찾아볼 수가 없다고 말한다. 이는 창조주의 뜻에 따라 만들어진 질서와 자연 상태를 역행하는 것으로 악마가 하는 짓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우리가 아는 색 조합으로 색을 만든다는 것은, 있을 수 없었다. 보라색을 만들기 위해 파랑과 빨강을 섞는 일은 결코 일어나면 안 되었다는 것이다.
급부상한 파랑은 이제 성모마리아의 색, 왕의 색이 되었다. 이는 파랑이 빨강의 맞수인 경쟁자일 뿐만 아니라, 중세 말기와 근대 초기 의상에서 인기를 얻은 검정과도 겨루게 되었다는 점이다. 파랑은 이제 검정과 함께 도덕적인 색이 된다. 14세기 흑사병이 전 유럽을 휩쓸면서 전 기독교 사회에 걸쳐 증가한 사치 단속법과 의상에 관한 법률이 만들어진다. 이는 검정의 가치 상승을 만들었고 18세기까지 여러 형태로 지속해 근대와 현대의 의상 체계에도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사회적으로 규제가 가해진 이유는 경제적인 이유와 도덕적인 이유를 들 수 있다. 겸손과 덕행의 실천을 이어가는 기독교적인 전통과 엄격한 복식 규정으로 사회 계층을 구분하려 했다. 신분 차별을 위해 하양, 검정, 빨강, 초록, 노랑, 그러나 파랑은 전혀 쓰이지 않았다. 파랑은 사회적으로 규정되거나 금지된 색이 아니었으므로 사용이 자유롭고 중립적이며 위험성도 적었다. 그래서 파랑은 검정과 같이 도덕적인 색으로 남을 수 있었다.
경건한 색의 파랑
15세기는 검정이 가장 위세를 떨치던 시기였다. 그리고 어두운 회색 또한, 인기를 얻었다. 이는 16세기 종교 개혁을 거치면서 검정은 가장 준엄하고 고결하며, 가장 기독교적인 색으로 여겨졌다. 그리고 하늘과 영혼을 상징하는 파랑을 점점 동화시켰다.
종교 개혁과 색 파괴주의는 교회 밖으로 색을 추방하였다. 하지만 여기서 파랑은 다른 색과 달리 관대한 대우를 받게 된다. 이들에게는 색은 단지 물질에 불과했던 것으로, 색은 사치와 겉치레, 인위적인 것, 환상에 불과한 것이었다. 종교 개혁은 예술 분야에서도 색을 혐오하는 경향을 보였다. 그리고 이는 서양인들의 색 감수성을 변화시키는 데 근본적인 역할을 했다. 의복에서 나타난 극단적인 엄격함과 간소함으로 강렬했던 빨강과 노랑, 분홍, 주황 등 다른 색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이 시기 검정, 회색, 갈색 톤의 의상이 주를 이루다가 16세기 말부터는 파랑도 ‘정중한 색’ 대열에 들게 되었다.
책에서 저자는 종교 개혁과 함께 형성된 가치 체계, 그 속에서 색에 대한 거부가 장기적으로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 통찰해 나갔다. 신교도들의 색에 대한 거부가 미친 영향, 상품들이 대량 생산되기 시작하던 무렵에도 프로테스탄트 계층과 서로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신교도적인 윤리는 공업화의 발달로 다양한 색의 물건들을 생산할 수 있음에도 대량 생산품에서 상당히 획일적인 색을 띠었다는 것이다. 헨리 포드가 대중의 요구와 경쟁의 위협에도 윤리적인 이유를 들어 오랫동안 다른 색의 자동차를 판매하는 것을 거부했다는 것이다.
17세기 페이메이르는 청색의 화가라 불릴 만큼 그 누구보다 파랑을 섬세히 다룰 줄 아는 화가였다. 마치 캔버스의 그의 그림은 리듬감 있게 사람들을 유혹한다고 했다. 이 책을 조금 더 일찍 읽었더라면 페이메이르에 관한 책을 접했을 때 어땠을지 생각하게 된다.
가장 사랑 받는 색, 파랑
유럽의 신대륙 발견과 함께 노예의 노동을 통해 생산된 ‘인디고’는 먼바다를 건너왔지만, 유럽의 '대청' 보다 그 원가가 쌌다. 무엇보다 ‘인디고’의 착색력은 대청 보다 더 강했다. 이로 인해 대청 산업은 막을 내리게 된다. 도시의 흥망성쇠는 또 다른 주류를 만들어 간다. 하지만 ‘인디고’의 염색도 19세기 말 인공 염료를 사용하게 되면서 천연 염료 ‘인디고’의 역사도 점점 사라지게 된다. 그리고 관련 산업도 점점 치명타를 입고 쇠퇴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시대는 새로운 발견으로 늘 변화를 맞이한다. 그 흐름에서 살아남기란 결코 쉬운 일은 아니란 것이다. 역사가 말하듯이 우리의 시간도 이러한 진리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파랑이 가진 잠재력은 역사 속에서 비교적 약하고 폭력적이거나 금지된 적 없는 무난한 색이었다. 평범하지만 뭔가 있는 색이었다는 점이다. 보편적인 대중성은 극적인 사랑을 받은 색도 아니고 큰 유행을 타지도 않았다.
18세기에서 20세기의 파랑의 역사는 혁명의 파랑으로 ‘프랑스 대혁명’의 한가운데 있었다.
그리고 낭만주의의 상징으로 남기도 한다. 괴테의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서 주인공 베르테르가 입은 청색 연미복은 당시 ‘청색붐’을 일으켰으며 ‘베르테르 붐’을 일으켰다. 그리고 노발리스의 <푸른 꽃>은 유럽의 낭만주의 꽃으로 그 상징성을 더했다. 파랑은 역사 속에서 그 의미가 다양해졌다. 특히, 프랑스를 대표하는 파랑은 역사적으로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삼색 휘장과 삼색기에 얽힌 이야기도 꽤 길다. 그리고 두 번의 세계 대전을 겪으면서 파랑의 이야기도 흥미 있다. 1차 세계 대전 당시 프랑스의 군복은 초기에 꼭두서니로 염색한 붉은 바지와 진한 청색의 군용 외투를 입었다는 점이다, 이는 전시에서 프랑스 군에게 엄청난 손실을 가져다준다. 국가를 상징하는 파랑과 빨강을 버릴 수 없다는 쓸데없는 고집은 많은 군인이 죽음으로 내몰렸다. 결국에는 군복 바지를 연한 회색빛의 청색으로 바꾸지만, 전시에 군인들의 군복을 염색하는 인공 염료를 만들어 내는 일이 쉽지 않기에 청색 바지로 통일되기까지 제법 시간이 걸렸다는 것이다.
파랑의 대명사 청바지의 역사는 당연, 파랑의 역사에서 빠질 수 없는 이야기일 것이다. 청바지의 역사와 상징성에 대해 말할 때 저자는 우리가 생각하는 잘못된 청바지에 관한 편견도 언급했다. 20세기 파랑은 이렇게 사람들이 가장 선호하는 색이며 옷 색깔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에게 친숙해진 파랑은 ‘파랑의 역사’가 말해주었다. 한때 귀족들의 색이자 왕의 색이었던 빨강과 대적하게 된 파랑은 역사 속에서 점점 몸값을 올렸다. 그리고 경건한 색으로 파랑의 전성기에 들어서기도 한다. 낭만주의 시대 파랑은 다른 색을 제치고 월등히 앞으로 달려간다. 파랑의 흔적들은 이제 사회, 경제, 문학, 예술 등 다양한 분야에서 눈에 띄는 발자국을 남긴다. 그리고 여론 조사가 가능한 시기에 든 20세기에 파랑은 다른 색 사이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유럽이 가장 사랑하는 색으로 남았다.
색채의 관점에서 바라본 역사는 꽤 매력적이었다. 중간 중간 삽입한 자료와 그림들도 꽤 알찬 책이었다. 올해 공들이 첫 번째 책이 되었다. 그 많은 책 중에서 또 편애하는 책이 생겼다. 유일하게 이런 차별은 용서 받을 수 있지 않을까?
마지막으로 이 책을 읽고 <빨강의 역사>를 읽고 있다. 같은 저자가 쓴 책이 각각 다른 번역가에 의해 옮겨졌다. 두 책의 느낌이 다르다는 것이다. 이럴 수가 개인적으로 <빨강의 역사>가 더 부드럽게 읽혀지는 것은 번역의 힘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