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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뿐호빵님의 서재
  • 침대 위의 세계사
  • 16,200원 (10%900)
  • 2020-12-24
  • : 128



눈을 떠 제일 먼저 마주하고 느낄 수 있는 따뜻함이지

뭉그적뭉그적 꿈틀대고, 이리저리 뒹굴면서 포근한 시간을 최대한 늘여 보고자 발악 하는 모습을 묵묵히 보고 있을 너. 질질 끌며 무거운 몸을 축 늘인 채 그대로 뛰어 들어가도 탄성 좋은 너는 흔들림 없이 아주 힘 있게 나를 받아내지.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너의 일관성 있는 태도에 미워할 수 없는 존재, 너란 존재는 나에게 내일을 위한 힘이지

 

나의 하루는 이렇게 침대 위에서 온몸을 뒤틀면서 묵직한 몸을 일으키며 시작한다. 침대는 이렇게 내 몸과 밀착되어 노골적으로 바라보며 나를 느끼는 녀석일 것이다. '만일' 이라는 조건을 걸어 침대가 생명이 있다면, 사랑하지만 매우 불편한 존재일 수도 있겠다 싶다. 


책 이야기를 하면서 주절주절 거리는 이유는 이 책이 다루는 단어 때문일 것이다. 우리의 하루는 침대라는 공간에서 시작하여 다시 그 공간에서 끝을 맺는다. 이 공간이 숙면을 위한 가구가 아니라 지친 몸을 포근하게 감싸주는 친구이며, 그 어떤 영양제보다 더한 에너지 보조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침대가 있는 침실 공간은 가장 사적이고 가장 은밀한 공간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런 이유로 제목의 침대라는 단어부터 책은 호기심을 끌었다. 


역사는 침대에서 이루어졌다


침대에서 모든 일을 한 시절이 있었다. 우리에게 사적이고 은밀하다는 개념은 근대에 생긴 것으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그 공간에서 불가능했던 일은 무엇이었을까 싶을 만큼 많은 것들이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침실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무한한 상상력과 호기심을 자극한다. 개인적으로 침대는 쉬는 날에 뒹굴 수 있는 사적 공간이기도 하지만, 예술가에게는 풍부한 영감과 소재를 던져 준다. 그리고 2차 세계 대전 동안 침대 위에서 군을 지휘했던 영국의 '윈스턴 처칠'이야기는, 침대가 우리가 생각하는 그 이상의 일을 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간의 잉태와 죽음, 그리고 살아가면서 수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베드타임 스토리는 역사에서 빠진 이야기다. 


"거의 모든 사회와 개인의 역사에서 이야기의 3분의 1은 빠져 있다."

1960년대에 건축화가이자 가구 전문가인 로렌스 라이트는 이렇게 적었다. 우리가 침대에서 지낸 시간들이 과거 역사를 이해하는 데 공백으로 남아 있음을 지적한 것이다. 침대는 고고학의 역사에서도 대부분 빠져 있다. 하지만 우리가 파내고 훑어보고 고고학자로서의 일을 하려면, 침대는 인류의 수평적 역사를 읽어내기 위한 출발점으로서 적절한 장소이다.


-<침대 위의 세계사> 중에서 



'아침형 인간', 이 단어는 나에게 패배감을 맛보게 한 단어로 그다지 반가운 단어는 아니다. 개인적으로 아침형 인간이 되지 못하는 불만일 수도 있지만, 그 단어가 한때 모든 성공을 의미하는 단어로 비춰지는 때가 있었기 때문이다. 아침 잠이 많은 나로서는 여간 불편한 단어일 수밖에 없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 불편함의 조각들이 이 책을 통해서 완전히 부서졌다. <침대 위의 세계사> 이 책은 나에게 부정적인 감정을 던져 버릴 수 있는 힘을 주었다. 이것 또한 책이 주는 기분 좋은 힘이겠다. 


이중 수면 패턴


자연 세계를 재현하기 위한 의도에서, 1990년대 초 미국 국립정신건강연구소의 정신과 의사 토머스 베어는 참가자들을 한 달 간 하루 14 시간씩 암흑 속에서 지내게 하는 실험을 진행했다. 베어는 이 실험을 통해 '이중 수면 패턴' 이 인간에게 자연스러운 밤의 리듬이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버지니아 공대의 역사학자 로저 에커치는 베어의 수면 연구에 힘입어 '이중 수면 패턴'을 기록한 역사 문헌들을 모았다.이 실험과 역사학자의 고찰로 인해 알게 된 사실은 인간은 태생적으로 '이중 수면 패턴' 때문에 한밤중에 깨어날 때 두려움에 사로잡힐 수 있다는 것이다. 이중 수면 패턴은 인간의 자연스러운 수면 리듬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밤에 깨어나는 것에 두려움을 안고 불안해 한다는 것이다. 다음날에 대한 걱정으로 말이다. 자연스러운 이러한 수면 리듬까지도 우리는 스케줄이라는 틀에 묶여 불면증이라는 병을 만들었다. 


수면의 산업화


정해진 스케줄에 따라 우리들의 수면 시간도 규정된다. 제시간에 잠들기와 깨기, 적당한 수면 시간, 규칙적인 수면 시간도 산업화로 인해 사회화 되었던 것이다. 산업 혁명과 수면 보조제의 관계에서 수면 보조제는 인간이 진화론적 측면에서 인간의 또 다른 적응이라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산업화에 떠 밀려진 인류에게 어쩌면 이러한 과정은 필수였다는 점이다. 산업화로 인해 우리의 수면 시간은 산업화에 적응하여 그 사회를 성공적으로 살아 가야 했으므로 적당한 수면과 규칙적인 스케줄은 성공의 길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공공 조명으로 인해 우리의 삶은 획기적인 변화를 맞이한다. 깊은 밤에도 오락과 사교를 즐기며 북적거렸다. 이로 인해 대부분 우리의 수명 시간도 불규칙하게 변했으며 편안한 수면을 이룰 수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가 더 안전하고 편안하게 잠을 이룰 수 있었던 이유도 공공 조명의 등장이라고 말한다. 19세기 전반 런던은 처음으로 전문적인 치안 서비스를 제공하였고 그로 인해 사람들은 조금 더 안전한 수면을 보장 받을 수 있었다. 우리가 보호 받고 있을 때 잠을 더 많이 잔다는 것이다. 


"어쩌면 현대의 수면 손실은 이렇듯 사라진 이익과 균형을 맞추려는 결과일 수도 있다."



'수면 회피'가 실제로 생산성 향상을 시킨다는 것을 증명한 역사 속 인물들을 보면서 나는 또 한번 안심한다.  대표적인 인물  레오나르드 다빈치, 윈스턴 처칠, 나폴레옹 등 위인들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나의 수면 시간에 대한 불안함을 지웠다. 잠을 적게 자는 것으로 칭송받아 온 대표적 인물 처칠은 '낮잠' 시간을 꼭 지키는 사람이었다. 그의 유명한 말 "낮잠을 건성건성 하면 안 됩니다." 그래서 처칠은 전쟁 때도 그의 수면 습관 때문에 중대한 결정은 거의 침대에서 이루어졌다. 심지어 장군들이나 장관들과의 회의 또한 침대에서 이루어졌다. 역사는 이렇게 또 침대 위에서 바뀌었다. 어찌 보면 우리가 말하는 최적의 수면 시간은 애초에 있지도 않았을 지도 모르겠다. 개인적인 자신만의 수면 사이클과 시간이 있다. 단지 여기서 우리가 힘들어 하거나 스트레스를 받으면 모르지만, 자신에게 자연스럽다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을까 싶은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을 해 본다.


이 책을 읽으면서 웃기게도 나의 수면에 대해 자꾸만 변명을 하게 되는 기분이 든다. 이중 수면 패턴과 수면 회피를 동시에 다 갖고 있는 것 같아서 합리화 시킬 수 있는 근거를 이 책에서 어떻게든 찾아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결혼과 성 그리고 침대


과거 여성들의 지위는 단지 잉태와 출산에 따른 목적만이 필요했던 시대가 있었다. 그리스 로마 시대는 시민의 축에도 들지 못했고 아내의 가장 큰 의무는 출산이었다. 빅토리아 시대에는 영국과 유럽 사회 대부분이 청교도의 교리로 단단히 묶여 있었다. 이 때도 여성들의 위치는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래서 침대 위의 역사는 여성에게도 가혹했다.


침대에서의 분만은 16세기 프랑스에서 산부인과 수술이 실시되면서 시작되었다. 외과 의사의 의료 기술이 필수가 되고, 산모는 수동적으로 침대에 누워 의사는 기술을 통해 적극적으로 출산을 돕는다. 출산에 대한 새로운 개념은 침대 위에서 생겨난 것이다. 병원 침대에 관한 이야기에서 초기 병원은 감염과 전염의 중심이었다는 점이다. 위생에 대한 개념이 지금과는 너무 다른 상황이었기 때문에 진료실에 들어가기 전 손을 씻는다는 것조차 설득할 수 없던 시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획기적인 의료 기술의 발전과 기적 같은 '마취'의 등장은 고통에서 더 이상 신음 하지 않아도 되었다. 이제 당연히 출산은 병원 안의 침대 위에서 이루어 지는 과정으로 그 개념이 바뀌었다. 하지만 여기서 주목할 것은 여성 산파의 역할이 의사로 바뀐 것은 이전의 가부장 체제의 사회, 출산의 공로를 대부분 남성에게 돌리는 결과를 낳기도 했다는 것이다. 


"침대는 생명 탄생의 과정에서 적극적인 회복의 공간에서 수동적인 출산의 공간으로 바뀌었다." p135



소크라테스의 죽음과 그가 남긴 마지막 말


"크리톤, 나는 아스클레피오스에게 닭 한 마리를 빚졌네. 기억해두었다가 빚을 갚아주겠나?"


소크라테스가 크리톤에게 한 마지막 말에 그의 친구들과 제자는 경외감을 느꼈다. 그들에게는 소크라테스의 죽음이 궁극의 죽음이었다. 죽음 직전에 하는 마지막 말에 대해 우리는 묘하게도 의미를 둔다. 하지만 책의 저자는 우리가 알고 있는 마지막 말들은 지어낸 이야기일 가능성이 많다고 전한다. "망자가 대꾸할 리 없으므로 마지막 말은 지어내기 쉽다." 누군가의 명분에 의해 끌어낸 이야기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유명한 마지막 말로 기억되는 이들조차 자신의 말이 마지막 말이 될 지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살면서 정말 많은 것에 의미를 두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이 말도 일리가 있다고 본다.



이 책은 나에게 반가움에 미소를 짓게 했다. 책을 읽어 가다가 저자의 생각 못지 않게 나와 공감을 이룰 수 있는 부분이 많았다. 말 그대로 나랑 통했다. 별 것 아니지만 또 이런 것에 기분 좋아진다. 내 손 위에 놓인 책에서 잘 통하는 친구를 찾은 기분이다. 책 중간 중간에서 만나는 이런 공감은 여행지에서 반가운 친구를 사귀는 기분 좋은 경험을 준다.   


6장의 다른 사람과의 침대 공유에서 다시 만난 <모비딕>의 이스마엘과 작살잡이 퀴퀘그의 만남이 한 여인숙의 침대 위였다는 것이다. 책에서 <모비딕>의 한 장면을 묘사할 때 이미 나의 머리 속에 등장한 이스마엘과 그의 친구는 읽는 순간 반가움에 악수를 나누었다. 이 둘은 같은 침대를 공유하며 서로의 친구가 되었다. 일상적으로 침대 공유 문화가 당시에는 당연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모두가 당연하다고 여기지는 않았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일화, 존 애덤스와 벤저민 프랭클린의 동침은 최악으로 기록된다. 



나폴레옹은 헬레나 섬 유배지 야전 침대에서 세상을 떠났다. 

움직이는 침대의 등장과 탐험가와 모험가의 이야기에서도 빠질 수 없는 침대 이야기는 스콧과 아문센의 이야기로 흘러간다. 그리고 2차 세계 대전까지 미국 군인들에게 담요와 그라운드 시트(방수포) 만을 지급 받았다는 사실은 우리가 보편적으로 생각했던 침낭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현대인에게 침대란,

현대인의 숙면에 대한 광적인 집착은 숙면을 방해하는 요소를 제거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한다. 모 침대 광고처럼 침대는 숙면을 취하기 위한 최적의 공간인 과학이 되었다. 그리고 베개며 침구 세트는 다양한 기능으로 상품성을 높이고 광고를 섭렵하고 있다. 그리고 다양한 침대의 등장과 함께 과연 미래의 침대가 어디까지 우리의 수면을 조종할 수 있을지도 궁금하다.

과거부터 현재까지 침대 위에서 쓰여진 역사는 아직도 진행 중이다. 한때 삶의 역동적인 과정

이 녹아 있는 침대는 사라졌지만, 개인의 일상에 깊숙이 들어 온 침대는 또 다른 역사를 쓰고 있다. 시대가 변화고 사회가 다르면 그 쓰임도 달라지는 것은 당연할 수 있다. 과거 침대라는 가구가 역사 속에서 단지 가구로써 그 가치를 채우고 있지는 않았던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침대 위에 쓰여지는 시간은 이전처럼 우리의 삶을 고스란히 반영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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