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빙그르르
  • 요나단의 목소리 1~3 세트 - 전3권 (완결)
  • 정해나
  • 45,900원 (10%2,550)
  • 2022-10-27
  • : 1,096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교회를 가지 않은지 팔 년이 지났다. 보스턴 미션 홈에서의 생활을 포함하면 칠 년이다. 매일 밤 자기 전에 기도를 하는 것도 스무 살 즈음에 그만두었다.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나를 종교인으로 정의한다. 이것은 인간이 신 없이 서로를 통해 종교적일 수 있다고 믿는 신형철의 마음도 아니고, “Spiritual but not religious”라고 말하는 곽아람의 마음도 아니다. 인간의 신 발명에 긍정하면서도 그럼에도 나는 개신교도라고 말하는 나.(기독교라고는 하지 않는 것이 포인트다) 불량하고 물렁한 개신교도인 나. 아마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작년에 이 책을 읽었으므로, 올 1월 1일에는 오랜만에 기도를 했다.

<요나단의 목소리>는 목사 아버지를 둔 모태신앙 ‘선우’와 선우의 룸메이트 ‘의영’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두 사람이 입학한 고등학교는 개신교계 미션 스쿨인데, 첫 학교 예배 도중 성가대에서 노래를 부르는 선우의 목소리가 의영의 인상에 남는다. 두 사람은 3년간 함께 지내게 되는데, 그러면서 의영은 선우가 중학생 시절 ‘다윗’이라는 남자아이를 좋아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다윗과 요나단

청소년기가 인생의 다른 시기에 비해 유독 소란한 이유는 불화 때문이 아닐까. 그것은 종종 친구나 가족 간의 갈등, 즉 개인 대 개인의 대립으로 표출되기도 하지만, 사실 근본적인 원인은 ‘나’와 ‘세계’의 불화다. 선우의 세계는 다른 아이들과 조금 다르다. 아버지는 목사고, 교회에 딸린 집에 살면서 꼬박꼬박 일요일마다 성가대에서 노래를 부른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믿게 된 신의 존재, 버릇처럼 하는 기도, 성가 외의 노래는 ‘세상 음악’이라고 표현하는 가정환경이 ‘선우의 세상’을 구성하고 있는 셈이다.

한편 선우가 좋아하게 된 다윗 역시 목사의 아들이다. 그러나 다윗은 선우와 다르게 머리를 노랗게 탈색하고 담배를 피우며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며, 무엇보다 적극적으로 종교를 부정한다. 다윗에게 있어 교회는 자신을 때린 후 아무렇지 않게 수요예배를 하는 부친의 공간, 거짓말과 위선의 공간이다.

선우가 다윗을 좋아하게 된 이유가 명확하게 나오지는 않는다. 원래 사랑의 순간이란 짜잔, 하고 찾아오는 게 아니니까. 하지만 다윗이 선우에게 새로운 세계를 보여준 것이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부모의 종교가 자신의 종교가 아닐 수 있다는 사실, 자신은 상상도 하지 못한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나아가는 삶, 새하얗게 탈색한 다윗의 머리칼처럼 눈부신 세계.

다윗과 요나단은 구약에 등장하는 인물로, 기독교에서는 참된 우정을 상징하는 인물들이다. 요나단은 이스라엘의 왕인 사울의 아들이고 다윗은 사울의 사위인데, 야훼는 다윗을 이스라엘의 차기 왕으로 낙점 짓는다. 이에 사울은 다윗을 제거하려고 하지만 요나단은 그를 따르지 않고 다윗을 돕는다. 둘의 관계는 종종 동성애적으로 해석되기도 하는데, 보수 개신교는 이런 의견을 당연히 부정한다.


“요나단은 다윗을 자기 생명같이 사랑하여 더불어 언약을 맺었으며” (사무엘상 18:3)


“요나단이 자기의 입었던 겉옷을 벗어 다윗에게 주었고 그 군복과 칼과 활과 띠도 그리하였더라” (사무엘상 18:4)


욥의 자녀들

신실한 종교 생활을 하지만 묘한 위선을 눈치채고 있는 선우, 이미 교회와 가정을 떠난 다윗, 그리고 교회의 거짓말을 알고 있으면서도 교회에 다니는 다윗의 여자친구 주영은 빠르게 가까워진다. 주영은 꽤나 독특한 인물인데, 더 이상 교회에 가지 않는 다윗을 향한 사랑 때문에 교회에 다닌다. 행실이 좋아 보이지 않는 다윗과 어울리지 말라는 어른의 말에 “예수님도 가려서 사랑하지 않으시잖아요”라고 올곧게 말하는 주영 역시 교회의 모순을 알고 있으나, 지옥이 존재할 가능성이 있다면 다윗을 그곳에 보낼 수 없기에 교회에 나간다.


“사랑하지 않으면서 사랑하지 않는다고 말하지 않고 사랑한다고 말하는데 그건 사랑하지 않는 것보다 나쁘다.”

그러다 다윗이 부활절 전날 교통사고로 사망한다. 이에 선우와 주영은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부당함을 느낀다. 장례식장에서 주영은 다윗의 아버지에게 욥의 자녀에 대해 묻는다.

욥 역시 구약성서에 등장하는 인물로, 신을 경외하는 선한 이다. 사탄은 욥이 건강하고 풍족하기 때문에 그런 믿음을 가질 수 있었다고 생각해 과연 그런 조건이 사라져도 신앙을 유지할 수 있을지 신과 내기를 한다. 사탄은 욥의 재산을 빼앗고, 병을 주었으며, 열 명의 자녀를 앗아간다. 그럼에도 욥이 신에 대한 믿음을 유지하자 하나님은 욥에게 건강과 이전보다 더 많은 재산, 그리고 ‘새로운’ 열 명의 자녀를 준다. 그저 욥의 신앙을 증명하기 위해 사용된 것 같은 일곱 아들과 세 딸의 개별적인 존재에 대해 물음으로써, 주영은 다윗의 아버지에게 그런 식으로 아들의 죽음을 사용하지 말라는 노골적인 원망이자 암묵적인 경고를 내비친다. 그리고 더 이상 교회에 나가지 않을 것을, 신을 믿지 않을 것을 선언한다.


하지만 선우는 다윗이 죽었는데도 교회를 떠나지 못하고 부활절 칸타타를 불러야 했다. 사랑하는 친구는 죽었는데, 예수의 부활을 찬양해야 했다. 선우는 다윗의 죽음을 노골적으로 슬퍼할 수 없다. 교인들이 보기에 다윗은 흔히 날라리라고 불리는, 교회 밖의 아이다. 선우와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다윗의 죽음에 선우가 그렇게까지 슬퍼하는 이유를 부모님을 포함한 주변인들은 납득하지 못한다.


이때부터 고등학교 3년 내내, 선우는 우울증 약을 달고 살게 된다. 그것은 단순히 다윗을 잃었기 때문이 아니다. 다윗의 죽음으로 선우는 사랑하는 이와 함께 자신이 속한 온 공동체를 잃어버렸다. 동성애를 죄악시하도록 가르쳐 온 세상에서, 다윗을 잃은 선우의 슬픔은 누구에게도 들켜서는 안 되는 것이다. 교회는 선우의 사랑을 함께 기뻐하지도, 선우의 아픔을 함께 슬퍼하지도 못한다. 자신을 구성한 세상에 의해 애도는 침묵을 강요받았고, 그것은 선우의 오랜 아픔이 된다.


“기뻐하는 사람들과 함께 기뻐하고 슬퍼하는 사람들과 함께 슬퍼하십시오”(로마서 12:15)


사랑에는 거짓이 없나니(로마서 12:9)

고등학교에 올라간 선우의 룸메이트 의영은 선우와 사뭇 다른 삶을 살아왔다. 두 사람은 첫 만남부터 대척점에 있는데, 노래하는 것이 괴로운 선우의 성가를 듣고부터 의영은 채플 시간이 지루해지지 않게 된다. 줄리 앤드류스가 부른 My Favorite Things를 듣는 선우와 빅뱅의 하루하루를 듣는 의영, 찍는 문제는 전부 틀리는 선우와 찍기만 하면 전부 맞는 의영, 모범생의 표본 같은 선우와 종종 담배를 피우는 의영. 어쩌면 그런 차이 때문에 두 사람은 더욱 가까워질 수 있었다.

하지만 다르기 때문에 부딪히는 지점도 있다. 의영은 자기 자신에 대해 구태여 거짓말을 할 필요 없는 환경에서 자라온 반면에, 선우의 삶은 어느 순간부터 온통 살기 위해 해야 했던 거짓말들로 가득해진다. 의영은 자기 자신에 대해 하는 거짓말에는 크게 반응하지 않지만, 선우가 자신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말에는 ‘심장이 내려앉’았다고 표현한다. 왜 그렇게 선우가 치열하게 자기 자신을 부정해야만 하는지, 전혀 다른 삶을 살아온 의영은 알 수 없다.


그 시절 자신이 갖고 있던 감정을 의영은 ‘자만심’이라고 표현한다. 선우를 만나고 읽은 몇몇 퀴어 미디어에서 접한 것처럼, 선우가 자신을 둘러싼 억압을 내던지고 개신교적 세계관을 부정하기를,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신이 어떤 역할을 하기를, 선우의 선택에 자신이 존재하기를. 하지만 3년이라는 시간 동안 선우의 세상을 조금씩 이해해가며, 그리고 결말부에 일어난 일련의 사건을 통해 의영은 그것이 청소년기의 비대한 자의식이었다는 것을 인지해간다.

모두가 저마다의 복잡한 세계를 가지고 있기에, 타인의 세계를 오롯하게 이해하고 변화시킬 수 있다는 자신은 오만에 지나지 않는다. 그 사실을 깨달았을 때 우리는 종종 두려워지나, 두려움을 무릅쓰고도 누군가의 곁에 남는다. 그 마음을 사랑이 아니면 대체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요한일서4:18)


요나단의 목소리

이 만화에서 표면적으로 요나단은 선우다. 다윗을 향한 사랑과, 성경을 인용한 기도, 그리고 노래를 하는 선우의 ‘목소리’. 하지만 사실 요나단은 선우뿐만이 아니라, 주영이기도 하고 의영이기도 하다. 세 사람은 저마다의 다윗을 사랑하는 요나단인 셈이다. 특히 의영이 선우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간절히 기도했을 때, 선우에게 닿은 그 목소리가 ‘요나단의 목소리’가 아닐 수 없다.

세상은 언제나 우리를 위협하고 두렵게 할 것이다. 그것은 어쩔 수 없는 필연이다. 때문에 어른이 되어가는 일은 청소년기에 겪은 세상과의 불화를 해소함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 불화를 인정하면서도 세상을 향해 나아갈 다짐을 통해 가능해진다. 거짓을 물리치고 진실한 삶에 대한 발걸음을 내딛는 것, 타인의 세상을 온전히 이해하고 바꿀 수 있다는 착각을 내려놓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해할 수 없는, 너무나도 어려운 서로의 삶에 ‘다만 눈을 돌리지 않는’ 것.


“다윗에 대한 요나단의 사랑이 그를 다시 맹세하게 하였으니”(사무엘상 20:17)


우리에게 잠시 신이었던

<요나단의 목소리> 속 가장 좋아하는 인물을 선택하기는 어렵지만, 가장 좋아하는 부분을 꼽자면 단연코 본편 뒤의 주영 외전이다. 주영의 파편은 가끔 나와 겹쳐지는 것도 같다. 교회도 가지 않고 성경도 읽지 않고 기도도 하지 않지만 끝내 신을 믿지 않는 것에는 실패한 사람. 어떤 사람을 너무 사랑해서, 이 땅이 아닌 어딘가에서의 이어짐을 포기할 수 없는 사람. 영원토록 함께할 천국이 절실하고, 지옥이 있을 가능성이 백만 분의 일이라도 있다면 사랑하는 이를 지옥에 보낼 수 없다는 사람. ‘정말로 내 인생의 전부인 줄 알았’던 것이 사실은 아니었다는 걸 알았을 때, 그렇지 않다는 걸 과거의 자신에게 알려주었다면 ‘그 애는 나를 죽이려 들었을지도 모른다’고 솔직하게 고백하는 사람.

주영은 신이 자신의 삶에서 멀어지는 속도와 다윗이 희미해져가는 속도가 정비례한다고 말하지만, 다윗의 흔적은 여전히 주영의 삶에 남아 그를 구성한다. 그 시절 다윗에게 일어난 불합리가 답습되지 않도록 하겠다는 암묵적인 다짐이, 구태여 의식하여 반복해 상기하지 않아도 주영의 삶에 자연스럽게 숨 쉬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안타깝고 사랑스럽다.

어린 주영의 믿음은 사실 하나님 그 자체보다 다윗을 향한 사랑에서 기인한다. 다른 이들이 죽어서 어디에 가는지 주영은 상관하지 않는다. 그는 신 그 자체가 아니라 인간을 사랑하기 때문이라는, 어찌 보면 불순한 마음으로 신을 믿는다. 사람이 사람을 애타게 사랑하는 마음을, 이 만화에서 가장 종교적이지 않으면서도, 신을 향한 믿음과 경애에 한없이 가까운 그 마음을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까? 이런 순간과 마음 때문에 나는 무신론자라 하더라도 그가 종교적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누구나 신이 아니더라도 믿는 것들이, 간절히 바라는 순간들이 있지 않은가. 무교인 의영이 간절하게 선우를 위해 기도한 것처럼, 유희경의 시처럼 ‘잠시 신이었던’ 것들이 각자의 마음속에 있다고 믿는다.


이 시간 너의 맘속에

다만 그런 무신론적인 사고와는 별개로, 나는 여전히 신의 존재를 믿는다. 과거의 선우처럼 독실하지도, 현재의 주영처럼 신을 증오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그 중간 어딘가에 서서 그는 분명 거기에 있다고 믿는다.



하나님은 너를 사랑해

얼마나 너를 사랑하시는지

너를 위해 세상을 만들고

저 별을 만들고

아들을,

그 아이를 보냈네


*


개신교의 세상에서 우리는 모두 주의 자녀이기에,

하나님이 선우에게 보내준 아들은, 비단 예수님 뿐만은 아닐 것이다.



1) 신형철, 무정한 신 아래에서 사랑을 발명하다

2) 곽아람, 공부의 위로

3) 황정은, 뼈 도둑

4) 유희경, 우리에게 잠시 신이었던



240117


  • 댓글쓰기
  • 좋아요
  • 공유하기
  • 찜하기
로그인 l PC버전 l 전체 메뉴 l 나의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