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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콰마린
  • 백가흠
  • 15,300원 (10%850)
  • 2024-06-30
  • : 468



"서울 도심, 청계천에서 여자의 것으로 보이는 잘린 왼쪽 손이 발견됐다."
발견된 손은 어던 문양을 만들고자 한 듯 괴상하게 꺾였고, 손톱은 아콰마린 색으로 칠해져있었다. 이 사건을 수사하게 된 '미스터리 사건 전담반 (미담반)'은 이 손의 주인이 누구인지부터 추적한다. 부자연스럽게 구부려진 손가락은 무엇을 뜻하는지, 잘린 게 아니라 살아있는 상태에서 손목을 스스로 절단했을 가능성과 여성이 아닌 남성의 손목이라는 사실을 알아내자 대구 수성못에서 잘린 양 발이 발견된다.

“당연히 만난 적 있지. 여러 번 만났어. 그런데 아마 넌 기억하지 못할 거야. 왜냐하면 나는 곳곳에 있거든. 나와 같은 사람 말이야. 너를 잊지 않고 기억하는 사람들 말이야.”
2021년 11월, 전두환은 끝내 사과 한 마디 없이 세상을 떠났다. 세월이 지나 노년이 되어서도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던 그는 자신의 회고록에서 '5·18 당시 시민들에게 가한 헬기 사격을 목격했다'고 증언한 조비오 신부를 비난하며 발포 명령은 하지 않았다고 끝까지 주장했다.  군사독재 시절 '고문기술자'로 악명을 떨친 이근안 씨는 과거 인터뷰에서 “간첩 잡은 애국자인데 정치형태가 바뀌니까 내가 역적이 되고 이 멍에를 고스란히 지고 살아가고 있다”라고 억울함을 토로했다.

그 밖에도 국가 공권력에 의해 억울하게 옥살이를 한 사람들을 우리는 알고 있다. 대표적으로 진범이 나타났는데도 자신들의 안위를 위해 무시했던 '삼례 나라슈퍼 살인사건'이나 '낙동강변 살인사건'의 피해자들은 경찰의 무자비한 폭행과 고민을 견디지 못해 자백한 허위 진술로 수십 년을 감옥에서 보내야 했다. 시간이 흘러 「SBS 그것이 알고싶다」 방송을 통해 당시 수사 관계자들을 찾았지만, 어느 누구도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들은 정말 기억이 나지 않는 걸까, 아니면 진실을 밝히고 사과할 용기가 없는 것일까. 용서하고자 하는 사람은 있으나 용서를 구하는 사람은 없다.

지난 세월이 한순간 머릿속에서 빠르게 지나갔다.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그는 알고 있었지만, 정확히 무엇부터 바로 잡아야만 하는 것인지는 알지 못했다. 그런 혼란으로 그는 수십 년을 망설이고 있었다. 어떤 일에건 적극적으로 가담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잘못된 일을 바로잡기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았으니 이런 날이 도래한 것임을 그는 알고 있었다. _p.241
누군가의 악의적인 마음과 범죄로 사랑하는 사람을 잃게 된다면 그 무엇으로도 용서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 상처에서 치유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죄를 지은 사람이 그에 상응하는 벌을 받고, 끝내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는 것이다. 나는 이것이 정의 구현이며,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치를 지키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과거 일본의 편에 서서 국민들을 고통에 빠트렸던 친일파도, 독재 정권 시절 무고한 사람들에게 총칼을 겨누며 수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감금하였던 역사도, 하물며 피해자에게 단 한마디 사과도 없이 판사에게 올린 수십 장의 사과문으로 감형이 되는 이 시대에 정의를 말할 수 있을까?

자세히 말씀드리지 못하지만, 후회와 반성, 참회의 과정 같은 거라고 말할 수 있겠네요. 손을 자른 이유로는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습니까? 반장님도 해보세요. 잘라내보면 그 후회나 반성의 존재가 여실히 드러납니다. 없애보면 있었던 게 드러나지요.

과거 형사였고 사건 조작에 가담했던 정훈석은 자신의 팔을 스스로 잘라낸다. 80년대 공안 검사이자 정치인이었던 김성도는 진실을 인정하고 참회하고 반성하는 것을 거부하며 자신만의 정의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양 발을 서슴없이 자른다. 소설에서 손과 발을 잘라내는 행위는 하나의 소설적 형식이기도 하지만 과거의 자신의 잘못으로부터 확실하게 끊어내는 것을 표현한다. 우리가 부여한 공권력이 정의를 실현하지 못할 때 반드시 그 슬픔과 고통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채 '왜 나였을까'라며 존재하지 않는 답을 찾는 자들이 남게 된다. 왜 유독 우리 사회에는 실현되지 못하고 망각된 정의와 슬픔이 이리도 많이 존재할까? 왜 누구도 정의를 실현하고자 하지 않을까. 대체 누구에 의해 망각되고, 누구에 의해 용서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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