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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견자들
  • 김초엽
  • 17,100원 (10%950)
  • 2023-10-13
  • : 9,917


인간에게 광증을 퍼뜨리는 아포(芽胞)로 가득찬 지상 세계. 지상은 인간에게 범람체가 끊임없이 창궐하는 곳이다. 사람들은 범람체에게 지상을 빼앗긴 채 지하로 숨어들었다. 햇볕이 들지 않아 더이상 식물을 키울 수 없고, 계절을 느끼며 아름다운 풍경을 볼 수 없는 지하로. 지상은 범람화된 온갖 동물들의 사체와 그것들에 얽혀 자란 덩굴, 그리고 사체를 양분삼아 인간의 키만큼 자라난 거대한 형형색색의 범람 산호로 가득했다. 이 세계에서 파견자는 '매료와 증오를 동시에 품고 나아가는 직업'이다. 잃어버린 지상을 되찾기 위해 그곳에 파견된 사람들. 인간의 자아를 파괴하는 범람체들이 정복한 지상을 되찾기 위한 임무. 태린은 누구보다 파견자를 꿈꾸고 지상을 갈망했다. 파견자로 지상에 다녀 온 이제프는 노을의 황홀한 빛깔과 밤하늘을 가로지르는 별들의 반짝임을 태린에게 알려주었다. 태린은 언젠가 자신도 파견자가 되어 이제프와 함께 지상을 탐사하기를 꿈꿨다.


이제프는 태린에게 지상을 주고 싶었다. 노을과 별들을 주고 싶었다. 언젠가 태린이 파견자가 될 수 있다면 이제프와 함께 지상을 보게 되겠지만, 그것은 갈망을 증폭하는 일일 뿐 진정한 의미에서 지상을 얻는 것이 아니었다. 지상을 돌려주기 위해서는 지상을 되찾아와야 했다. 별과 노을과 바다가 있는 행성은 다시 인간의 것이 되어야 했다. _p.313


김초엽이 상상하는 미래에서 가장 놀라운 지점은, 독자인 나 자신이 얼마나 이 세상을 인간 중심적으로 바라보고 있는지를 깨닫게 한다는 것이다. 최근 사람들이 지구의 환경 문제를 거론하며 '지구는 망했다'라는 말을 자주 한다. 그러나 곰곰히 생각해보면 인류는 망할 수 있지만, 지구는 새로운 생명체를 길러낼지 모른다. 그럼에도 인류는 지구를 자신들만이 거주할 수 있는 땅으로 여기고 소유하고자 했다. 언젠가 지구가 멸망한다면 인류의 전쟁이나, 핵폭탄 또는 소행성의 충돌 같은 사건으로 소멸될 거라고 단순하게 상상했다. 그런데 만약, 인간이 상상해온 형태의 지성 생명체가 아닌 범람체가 지구를 차지한다면 어떻게 될까? 실제 외계인은 우리가 기대한 모습이 아닐지 모른다. 예를 들면, 음악이 외계 생명체라면, 그래서 우리 주변을 파고들어 함께 공존하고 있는거라면?

지상 어딘가에 범람체와 함께 살아가는 이들이 있다고 했다. 그들은 지상에서도 죽지 않는다고. 썩어가는 것들을 먹을 수 있으며, 그들 자체가 부패하는 것들의 일부라고. 그들 각각은 지상에서 독립적 의식을 가진 개체로, 그러나 때로는 전체의 일부로 살아간다고 말했다. 자아라는 개념은 시간이 지나며 흐릿해지지만,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고 약간은 남아 있다고 했다. 여전히 삶이라는 이야기였다. _p.36



『파견자들』을 읽으면서 '인간'의 정의에 대해 생각했다. 보통 사람들이 입버릇처럼 말하기를 '사람도 아니다'라고 혀를 찰 때는 그 사람의 성품을 두고 하는 말인데, 어제까지만해도 함께 지낸 평범한 사람이 외형이 변이되고 기존과 다른 방식으로 소통하는 생명체로 변해버린다면 나는 상대를 인간으로 여길 수 있을까? 그렇다면 인간의 범주는 어디까지로 정의내릴 수 있을까. 동그란 머리와 긴 팔다리를 가진 외형을 지니고 언어를 사용하고 고유의 자아를 지녀야 인간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자아란 착각이야. 주관적 세계가 존재한다는 착각. 너희는 단 한 번의 개체 중심적 삶만을 경험해 보아서 그게 유일한 삶의 방식이라고 착각하는 거야. 의식이 단 하나의 구분된 개체에 깃들 이유는 없어. 우리랑 결합한 상태에도 너희는 여전히 의식을 지닐 수 있어. _p.241


진화론의 관점에서 인류는 고릴라, 침팬지, 오랑우탄을 포함하는 종에서 진화해 지금에 이르렀다고 믿는 사람이 많다. 그렇다면 앞으로도 인류는 변화에 적응하며 지금과 다른 변이가 얼마든 일어날 수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렇게 연결해서 생각한다면 김초엽이 상상한 늪인은 범람화되어 처리해야할 인류의 적이 아닌 신인류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우습게도 나는 『파견자들』를 읽으면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수많은 상상과 질문을 하며 인류의 미래를 그렸다. 정의내릴 수 없는 상상의 범주이지만, 그렇기에 김초엽만이 보여줄 수 있는 세계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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