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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ring
  • 테디베어는 죽지 않아
  • 조예은
  • 15,030원 (10%830)
  • 2023-06-09
  • : 5,974





이번 서울국제도서전에서 내가 구입한 책은 조예은 작가의 『테디베어는 죽지 않아』 단 한 권이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 서점에서도 쉽게 구입할 수 있겠지만, 도서전에서 먼저 만날 수 있는 책이라는 말에 안전가옥 부스를 찾지 않을 수 없었다. 집으로 돌아가 퉁퉁 부은 다리를 벽에 올리고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내일 근무를 위해 일찍 자고 싶은데, 뒷이야기는 궁금해서 한참을 읽다가 잠이 들었다. 그 탓에 올해 서울국제도서전을 떠올리면 자연스럽게 이 책이 떠오르기도 한다. 얼마 전 읽었던 『만조를 기다리며』와는 확연히 다르게 경쾌하면서도 음침한 이야기. 4년 전 출간된 『뉴서울파크 젤리장수 대학살』를 떠올리면 훨씬 다양한 인물 군상들과 에피소드가 풍부해짐을 느낄 수 있다.


"둥근 그릇에 소복이 담긴 꿀떡들. 참기름 냄새를 향기롭게 풍기는 반지르르한 표면. 그 안쪽의 달콤한 꿀과 깨 사이에 복어 독과 청산가리가 숨어 있을 거라고 누가 상상할 수 있었을까. 누군가는 떡을 먹었고, 누군가는 먹지 않았다. 무지개처럼 알록달록한 꿀떡의 소에는 테트로도톡신, 청산가리, 비소 등 범죄영화에서 볼 법한 독극물 홉합액이 섞여 있었다. 총 아홉 명이 사망했고 열두 명이 중상을 입었다. 그 사망자 중에 화영의 엄마가 있었다." _p.36


야무시 최고급 아파트 '씨더뷰파크'에서 누군가 독이 든 떡을 이용해 테러를 일으켰다. 정해진 대상이 없는, 문 앞에 놓인 떡을 먹느냐 아니냐의 선택으로 사람들의 생사가 갈렸다. 이 사건으로 아홉 명이 사망했고, 용의자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래서 그가 왜 이런 범죄를 벌였는지 끝내 알 수 없었다. 씨더뷰파크에 살던 도하는 도현보다 시험을 못 본 탓에 화장실에 갇혀있다 혼자 살아남았다. 화영도 엄마를 잃었다. 씨더뷰파크 한정혁의 집에서 가정부로 일하던 엄마는 그날 떡을 먹고 사망했다. 그래서 화영은 알고 싶었다. 평소라면 절대 떡을 먹지 않는 엄마가 왜 그날 떡을 먹고 죽었는지. 복수 외에는 삶의 목적을 잃어버린 화영과 왜 도현이 아닌 자신이 살아남았는지 끊임없이 증명해야 한다는 생각에 시달리며 도하는 방황했다.


​“돈은 때론 구원이 되기도 해. 그리고 불가능을 가능하게 한단다. 세상에는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가 있거든.” 돈, 나를 구할 수도 죽일 수도 있는 것. 엄마가 씨더뷰파크 펜트하우스에서 일했던 건 그곳이 엄마의 시간에 가장 높은 금액을 지불하는 장소였기 때문이다. 화영이 엄마를 보러 갈 때마다 허리를 한껏 비틀어 숙여야 하는 건 돈이 없기 때문이다. 화영은 한정혁의 화려한 봉안당을 떠올렸다.
“그 구원, 제가 살게요. 얼마예요?” _p.126


『테디베어는 죽지 않아』의 '씨더뷰파크'는 무수한 욕망을 딛고 세워졌다. 이 도시의 부동산을 기반으로 부를 축적한 도하의 아버지와 자신의 시장 임기에  재개발을 추진하기 위해 땅 아래 묻힌 진실을 외면한 한정혁. 오갈 곳 없는 가출 청소년들을 팔아 돈을 버는 영진과 돈만 주면 어떤 살인이든 실행하는 킬러. 이들의 욕망을 보고자란 아이들에게 삶은 그다지 가치가 없다. 돈을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거짓말로 상대를 속이고 돈을 훔치고 목숨을 빼앗는다. 그렇다면 자신의 욕망을 성취한 자들은 행복할까? 자신의 이익을 위해 사람들을 죽여왔던 영진과 킬러는 죽은 자들의 악의에 삼켜지고, 정혁은 세상에서 가장 소중했던 자신의 분신 도현을 잃는다. 그래서 남겨진 '도하는 불쑥 부모님이 죽던 날 갇혀 있던 욕실을, 화영은 엄마의 장례식 후 홀로 보낸 고시원에서의 밤을 떠올렸다. 흙냄새만큼이나 지독한 외로움이 그들의 사지를 옭아맸다.'(p.249)


이들이 끝내 찾고자 하는 것은 진실만이 아닐 것이다. 누가 이들의 부모를 죽였는가보다는 이를 통해 자신들이 왜 살아남았고 살아가야 하는지를 찾고 싶어 한다. 삶을 포기해도 상관없다고, 자신에게 미래는 의미가 없다고 여겼던 화영과 도하가 스스로 단단해져질 수 있었던 것은 결국 서로의 온기 때문일 것이다. 수챗구멍처럼 악의에 가득한 땅 위에서도 우리를 살게 하는 힘이 무엇인가. 끝내는 또다시 사람을 믿고 마는 것, 그것이 조예은이 만드는 세계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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