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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눈부신 안부
  • 백수린
  • 14,400원 (10%800)
  • 2023-05-24
  • : 12,116



『눈부신 안부』는 1994년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가스 폭발 사고로 친언니를 잃은 해미와 가족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엄마와 아빠는 언니를 잃은 고통을 해미에게 감추지 못할 정도로 힘겨워했고, 해미는 괴로워하는 부모님 앞에서 슬퍼하지못하고 괜찮은 척 거짓말로 슬픔을 숨긴다. 결국 이 사고로 가족은 헤어져 해미는 엄마와 함께 독일에 정착한 행자 이모집에서 살게 된다. 독일에서도 낯선 환경에서 혼자서도 잘 적응하고 있는 것처럼 가장하기 위해 아무도 다치게 하지 않는 무혐의의 거짓말을 이어가지만, 이모는 그런 해미의 불안과 슬픔을 눈치채고 가만히 다독여준다.


"지난 일 년 동안 네가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많은 변화가 생겼을 거라는 걸 이모도 안다. 많이 힘들었을 거라는 것도."
이모가 말하는 변화라는 게 평소와 다를 바 없이 등교한 언니가 전국을 떠들썩하게 한 가스 폭발 사고로 갑자기 사라져버린 일을 가리키는 지, 언니를 잃은 고통으로 엄마 아빠의 사이가 멀어져버린 일을 가리키는지, 아니면 사람들이 우리 가족을 대하는 방식이 바뀌어버린 일을 가리키는지 궁금했지만 묻지는 않았다. _p.24


독일에서 만난 행자 이모와 마리아 이모, 선자 이모는 모두 파독간호조무사로 독일에 파견되어 정착한 사람들이다. 이들은 1973년 독일로 파견되어 이곳에서 공동체를 이루었고 간호 노동자로 일하며 봉급의 대부분을 한국에 송금하여 가족들을 부양해 온 인물들이다. 이후 해미는 독일에서 사귄 한수와 레나 마음을 나누며 조금씩 안정을 찾는다. 어느 날 한수는 해미와 레나에게 자신의 엄마(선자)의 첫사랑을 함께 찾아달라고 부탁한다. 아이들은 선자 이모의 일기를 몰래 읽으면서 첫사랑이 누구인지 단서를 모으기 시작한다. 그렇게 조금씩 본연의 모습으로 애써 돌아가지만, 해미는 행복을 느끼는 순간마다 여전히 언니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고, 소중한 이들과 작별하는 경험으로 관계 맺는 것에 두려움을 느낀다. 누군의 삶에 깊이 관여한다는 것을 두려워하는 마음, 누군가의 삶에 내가 또다시 영향을 미치게 되리라는 그 무시무시한 가능성으로부터 도망쳐야 한다는 두려움.


이모가 손을 뻗어 내가 아이였을 때 그랬던 것처럼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모의 손길이 닿자, 나는 오래전 이모의 집 거실에서 있던 어린아이가 되어 이십 년이 훨씬 넘게 시간이 흘렀는데도 여전히 언니를 그리워하고 있다고 말하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여전히 언니에게 마음속으로 말을 걸 때가 있다고. 상실 이후 시간이 때때로 선처럼 흐르는 것이 아니라, 쳇바퀴를 돌듯 같은 자리를 맴도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고. _p.227


행자 이모는 "사람을 사랑하는 일에는 지극히 정성과 수고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해미는 너무 어린 나이에 언니와의 이별을 감당해야만 했다. 그리고 독일에서 파독 이모들과 한수, 레나와 어울리며 안정을 찾아가고 있을 때 쯤 다시 한 번 이별을 경험하게 된다. 이때는 친구들과 한국에 가서도 자주 안부를 나누자고 약속하지만, 병으로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엄마에게 첫사랑과 연락을 닿게 해주고 싶은 한수의 간절함을 알기에 끝내 그를 찾지 못하자 그동안 선자 이모를 많이 그리워했다는 거짓 안부를 대신 써서 독일에 보낸다. 그리고 해미는 거짓 편지를 썼다는 죄책감에 한수의 안부 전화를 받지 못하고 멀리한다.


내 삶을 돌아보며 더이상 후회하지 않아. 나는 내 마음이 이끄는 길을 따랐으니까. 그 외롭고 고통스러운 길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자긍심이 있는 한 내가 겪은 무수한 실패와 좌절마저도 온전한 나의 것이니까. 그렇게 사는 한 우리는 누구나 거룩하고 눈부신 별이라는 걸 나는 이제 알고 있으니까. _p.303


『눈부신 안부』에서 해미는 삶의 갖가지 비극으로 인해 멀어졌던 소중한 사람들과, 너무 어린 나이였기에 슬픔을 묻어두었던 자기 자신과의 진심어린 화해를 위해 다시 선자 이모의 첫사랑을 찾아나선다. 그를 찾아 마지막으로 선자 이모가 보내 온 안부 편지를 전달하는 것이 자신의 상처로부터 화해할 수 첫걸음이라고 여긴다. 선자 이모가 남긴 마지막 편지에 '나를 위해 내 편지를 전해준 아이들의 마음이 나를 며칠 더 살 수 있게 했듯이, 다정한 마음이 몇 번이고 우리를 구원할 테니까.'라고 고마움을 전했다. 그 편지가 거짓임을 알면서도, 자신을 위해 정성과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던 해미의 마음이 전해진 것이다. 그래서 이 안부는 눈부시게 다정하고, 용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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