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토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이자 한 학년에 한 학급밖에 없는 사립 야사카 여고의 졸업식 날 아침, 3학년 담임교사 스즈타 아사미는 27명의 학생을 상대로 마지막 ‘특별수업’을 선포합니다. 두 사람씩 짝을 짓는 게임을 거듭 벌이며 홀로 남게 된 학생을 차례로 ‘실격’시키다가 마지막에 남는 한 사람 또는 두 사람만이 졸업식에 참석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실격’이 곧 죽음을 의미한다는 것. 교사의 발언을 만우절 농담처럼 여기던 학생들은 실제로 눈앞에서 죽음이 벌어지자 충격과 패닉에 빠집니다. 더구나 이 ‘특별수업’이 ‘집단 따돌림 없애기 캠페인’의 대상 학급으로 선정됐기 때문이라는 설명에 아연실색합니다. 하지만 이내 게임은 시작되고, 짝을 짓지 못한 학생들은 제각기 다른 방식의 참혹한 죽음을 맞이합니다.

이 작품에 관심을 가진 이유는 두 가지인데, 하나는 처음 접하는 작가 기나 지렌이 (‘서점대상’과 함께 제가 가장 관심을 갖고 있는) ‘여성에 의한, 여성을 위한 R-18 문학상’ 우수상 수상자라는 점이고, 또 하나는 영화 ‘배틀 로얄’을 연상시키는 데스 게임 스릴러라는 점입니다. 다만 졸업을 앞둔 27명의 학생들에겐 그 어떤 무기나 흉기도 주어지지 않고, 그저 두 사람씩 짝을 짓는 단순한 게임만 부여될 뿐입니다. 하지만 이 단순한 게임의 밑바탕에 왕따와 집단 따돌림과 학교폭력이 깔려있고, 교실 카스트, 즉 야비하고 잔인한 계급의 문제가 끼어들면서 이야기는 ‘배틀 로얄’ 이상의 서늘함과 광기를 내뿜습니다.
최후의 생존자가 결정되는 순간까지 20여 명의 학생들은 끔찍하게 목숨을 잃지만, 작가는 그 과정을 단순하고 담담하게 그릴 뿐입니다. 사적 복수 코드가 가미된 데스 게임 스릴러라면 죽음의 순간을 최대한 세밀하게 묘사하며 독자의 오감을 자극하는 게 당연한 일이지만, 기나 지렌은 이 작품의 작의인 ‘무의식적인 악의에 의한 왕따와 그것이 초래한 비극’에 초점을 맞추며 왜 27명의 학생들이 이 잔혹한 게임을 치러야만 하는지를 짧은 챕터들을 통해 군상극처럼 그려나갑니다. 특히 피라밋 형태의 교실 카스트가 어떻게 ‘무의식적인 악의’를 양산하고 비극을 극대화하는지도 사실적으로 묘사합니다.
눈길을 끄는 대목 중 하나는 게임이 거듭될수록 누구와 짝이 될 것인지, 누구를 ‘실격’시킬 것인지 치열한 계산과 연대와 배신이 난무하는 가운데 교실 카스트가 역전되는 상황들이 심심찮게 벌어진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그 역전은 단순히 통쾌함을 위한 설정이 아니라 ‘무의식적인 악의’의 민낯을 까발리고 악의의 피해자들이 겪은 고통을 좀더 생생하게 드러내기 위한 아이러니 그 자체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생존이라는 극한 상황 속에서 평소 ‘유령 같은 존재’로 취급되던 학생이 전략적 핵심 인물로 부상하는 장면은 집단 심리의 잔혹함과 동시에 그 취약함을 선명하게 보여준다.”는 출판사 소개글은 이 작품의 진면목 중 하나를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특별수업’의 유래라든가 학생들이 기괴한 죽음을 맞이하는 방식 등 호러 판타지의 묘미까지 품고 있어서 더 매력적인 이 작품은 왕따, 집단 따돌림, 학교폭력의 문제를 데스 게임에 대입시킴으로써 같은 주제와 소재를 다룬 작품들과 확실히 차별화되는 재미를 선사합니다. 물론 어쩔 수 없이 꽤나 진한 씁쓸함과 여운을 품은 채 마지막 장을 덮어야 하지만, 나이와 성별과 계층에 관계없이 이 문제들에 대해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진 많은 독자들이 읽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사족으로, 번역에 대해 짧게 언급하면... 왜 출판사에서 ‘번역’이 아니라 ‘감수’라는 표현을 썼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읽으면서 여러 곳에서 답답함을 느낀 게 사실입니다. 딱히 오타나 비문이라고 할 수는 없어도 부자연스러운 문장들이 심심찮게 목격됐는데, 그게 저만 느낀 문제인지 다른 독자들도 마찬가지인지를 인터넷에 올라온 서평들을 통해 꼭 확인해보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