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애나 주 일대에서 동일범에 의한 연쇄살인이 벌어집니다. 범인은 젊은 여성을 숲으로 유인한 뒤 살해하곤 시신을 잔혹하게 훼손한 것은 물론 시신 안에 돌 조각상을 넣어두었습니다. 사건을 맡은 FBI 과학수사연구소 수석 법의인류학자인 크리스틴 프루지크는 과거 자신의 악몽을 떠올리게 만드는 엽기적인 연쇄살인 수사에 나서는데, 사건 발생 5개월이 되도록 성과를 내지 못하자 지휘권을 박탈당할 위기에 처합니다. 그러던 중 뜻밖의 범인이 체포되면서 수사가 종결되는 것처럼 보였지만, 크리스틴은 강렬한 위화감과 함께 진범은 따로 있다는 확신을 품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크리스틴은 상상조차 해본 적 없는 충격적인 가설에 이릅니다.

“고전 FBI 스릴러의 매력을 현대적으로 되살린 작품”이라는 출판사 소개글대로 ‘스톤 메이든스’는 ‘양들의 침묵’, ‘스카페타 시리즈’, ‘링컨 라임 시리즈’를 저절로 떠올리게 하는 교과서적인 작품입니다. 엽기적인 범행을 저지르는 진범의 캐릭터는 한니발 렉터에 못잖고, 주인공 크리스틴 프루지크는 퍼트리샤 콘웰이 탄생시킨 법의국장 케이 스카페타와 많이 닮은꼴이라 그런 인상이 더 강했던 것 같습니다. 주인공과 범인의 시점을 번갈아 배치한 전개 방식 역시 정통 범죄스릴러의 공식을 그대로 차용했는데, 덕분에 고전미와 함께 서스펜스의 참맛을 만끽할 수 있습니다.
살인과 훼손과 ‘돌 조각상 서명’이라는 엽기적인 범행은 지금도 크리스틴을 공황발작으로 몰아넣곤 하는 10여 년 전의 악몽과 꼭 닮아서 더욱 눈길을 끕니다. 대학원 박사논문을 준비하던 시절 우연히 발견한 남태평양 부족의 엽기적인 풍습 - 무차별 연쇄살인에 이은 식인, 그리고 희생자의 몸에 돌 부적을 넣는 행위 - 에 관한 연구노트는 크리스틴으로 하여금 법의인류학자의 길을 걷게 만든 것은 물론 FBI 과학수사연구소 특수수사관으로 성장시켰습니다.
그 연구노트를 본 크리스틴은 "원시사회에도 사이코패스가 존재한다는 증거일까? 아니면 살인욕구는 단순 문화에 그치지 않고 유전적인 요인도 작용하는 걸까?"라는 의문에 빠져들었고, 부족의 풍습을 직접 확인하기 위해 위험천만한 단독 탐사를 나섰다가 목숨을 잃을 뻔한 위기를 겪었습니다. 인디애나 주 일대에서 벌어진 연쇄살인사건과 마주한 크리스틴이 큰 충격과 함께 상부의 지시를 어겨가면서까지 집착에 가까운 수사를 벌이는 유일한 이유는 범행 방식은 물론 희생자의 시신을 훼손하는 방법까지 그 부족의 행태와 꼭 닮았기 때문입니다.
케이 스카페타와 마찬가지로 크리스틴은 ‘FBI 과학수사연구소 수석 법의인류학자’라는 공식 직책이 무색할 정도로 현장을 누비는 형사 캐릭터에 가깝습니다. 물론 그녀가 진실에 다가가기 위해 휘두르는 가장 큰 무기는 과학수사와 프로파일링이지만, 뛰어난 직감과 꼼꼼한 현장수색과 날카로운 심문 능력 역시 그에 못잖게 중요한 무기들입니다. 앞서 줄거리에서 언급한 ‘상상조차 해본 적 없는 충격적인 가설’에 이르는 과정엔 과학수사와 프로파일링보다 오히려 ‘보조무기들’이 더 큰 역할을 한 게 사실입니다.
뛰어난 능력자지만 여성이란 이유만으로 차별과 무시를 당하는 점, 자신을 몰아내려다 오히려 헛다리를 짚은 상부와 경쟁자를 물 먹이며 진범을 직접 체포하는 점, 뜻밖의 조력자를 만나 큰 도움을 얻는 것은 물론 로맨스의 분위기까지 풍기는 점 등 ‘스톤 메이든스’는 전형적이면서도 흥미를 유발하는 요소들로 가득한 작품입니다.
다만, 교과서적이고 전형적인 서사는 이 작품의 가장 큰 아쉬움이기도 합니다. 중반까지만 해도 크리스틴의 매력적인 캐릭터에 이끌려 제대로 몰입할 수 있었지만, 뒤로 갈수록 이야기가 거의 공식대로 흘러가다 보니 진범이 특정되고 사건이 종결되는 대목에선 오히려 긴장감이나 흥미가 떨어졌다는 뜻입니다. 별 1개를 뺀 유일한 이유인데, 막판에 신선한 반전과 함께 이야기를 한 번만 더 꼬았다면 고전과의 차별성도 살리고 이 작품 고유의 시그니처가 될 수도 있었을 거란 생각입니다. (그래도 예상밖의 에필로그는 무척 마음에 들었습니다)
검색해보니 이 작품 이후 11년만인 2023년에 후속작 ‘Maidens of the Cave’가 미국에서 출간됐습니다. 한국에 소개될지는 잘 모르겠지만, 법의인류학자 크리스틴 프루지크의 활약을 한번쯤 더 지켜볼 수 있기를 기대해봅니다.
-사족 : 간혹 뜬금없는 오타 때문에 책읽기를 멈추곤 했습니다. 이건 누구의 책임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