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입니다.
경시청 수사1과 아즈사 경감이 이젠 호텔 코르테시아 도쿄의 보안과장이 된 닛타 고스케를 찾아와 수사협조를 요청합니다. ‘일본 추리소설 신인상’ 최종심사가 호텔에서 열릴 예정인데, 수상이 유력한 작가가 실은 살인사건의 용의자이며, 그가 심사 당일 호텔에 나타나면 바로 연행할 계획이란 것입니다. 호텔리어로 변신했지만 닛타는 아즈사의 설명을 들으면서 경찰 시절 수도 없이 느꼈던 강렬한 위화감을 품습니다. 한편, 닛타의 심기를 건드리는 수상한 고객들이 호텔에 잇달아 투숙합니다. 평생 닛타를 데면데면 대해온 아버지 가쓰히사, 말 못할 비밀을 감추고 있는 듯한 모녀, 아즈사가 쫓는 살인용의자를 꼭 닮은 남자, 그리고 그를 몰래 지켜보는 여자 등이 그들입니다.

이미 전작인 ‘매스커레이드 게임’에서 예고됐음에도 불구하고, 경시청 형사가 아닌 ‘호텔 보안과장 닛타 고스케’를 보는 일은 몸에 안 맞는 정장을 입은 사람을 지켜보는 듯 영 어색하기만 했습니다. 하지만 호텔을 무대로 새로운 사건이 벌어지자 예의 형사로서의 촉을 발동하는 그의 모습에서 안도감과 함께 ‘겸업의 효과’에 대한 기대감이 불쑥 솟아올랐습니다.
시리즈 1~3편이 호텔이라는 공간의 특수성이 부각된 액션물 스타일의 미스터리였다면, 전작인 ‘매스커레이드 게임’과 이 작품은 호텔만이 지닌 미스터리 무대로서의 특징뿐 아니라 범죄에 연루된 인물들의 안타까운 사연과 비극적인 아이러니까지 풍성하게 담고 있어서 히가시노 게이고 특유의 휴먼 미스터리를 제대로 진하게 맛볼 수 있습니다.
크게 두 개의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하나는 신인상 유력후보이자 살인용의자인 아오키 하루마를 쫓는 닛타와 아즈사의 이야기이고, 또 하나는 변호사인 가쓰히사가 뜬금없이 아들 닛타가 근무하는 호텔에 투숙하게 된 사연입니다. 닛타는 경시청의 무리한 수사 압박과 출판사의 교묘한 계략에도 불구하고 현장을 지휘하는 아즈사와 협력하여 아오키 하루마 사건의 진상을 밝혀냅니다. 동시에 어딘가 의심스러운 고객을 살피는 과정에서 아버지 가쓰히사가 호텔에 투숙한 진짜 이유를 눈치 채곤 무려 30년 전에 벌어졌던 집단살인사건의 진상과 맞닥뜨리기도 합니다.
“진상을 추구하는 건 그런 거다. 그 끝에는 고통밖에 없을지도 몰라. 각오가 없다면 풋내 나는 정의감은 그냥 가슴속에 묻어둬.” (p37)
이 말은 변호사였던 가쓰히사가 경찰의 꿈을 품고 있던 고교생 아들 닛타에게 들려줬던 조언입니다. 닛타는 경시청 신참 시절엔 ‘풋내 나는 정의감’에 사로잡히기도 했지만, 베테랑 형사를 거쳐 예측불허의 고객들을 상대하는 호텔리어가 된 지금은 그 조언을 가슴속에 소중히 간직하고 있습니다. 그가 마주한 두 사건 모두 ‘끝에는 고통밖에 없는 진상’이 기다리고 있지만, 닛타는 신중하고 또 신중한 태도로 사건 자체와 거기에 연루된 인물들에게 다가갑니다. 일부는 자신의 노력과 추리로, 일부는 연루된 자들의 고백으로 진상에 이르긴 하지만, 안타까운 비극에 대처하는 닛타의 성실하고 진정성 담긴 태도는 미스터리의 깊이와 농도를 더욱 깊고 진하게 만듭니다.

‘옮긴이의 말’의 부제인 ‘가면을 품고 살아가는 인생’은 이 시리즈의 미덕을 잘 압축해놓았습니다. 소설 속 인물뿐 아니라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때로는 가면을 쓰고, 때로는 가면을 벗고 살아갑니다. 상대와 상황에 따라 가면의 모양도, 색깔도, 표정도 달라지고, 언제 가면을 벗고 민낯을 드러낼지도 오직 그 사람의 마음가짐에 따라 달라집니다. 그런 면에서 인생 자체가 가면무도회라고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이런 묵직한 주제를 바탕에 깔아놓곤 그 위에 다양한 인물들과 사건을 구축함으로써 단순히 누가? 왜? 어떻게?, 라는 통속적인 미스터리 이상의 감흥을 이끌어냈다는 생각입니다.
일본 기준으로 2011년에 시리즈가 시작되어 2025년까지 다섯 편이 나왔으니, 평균 3년에 한 편 꼴인 셈인데, 과연 닛타 고스케의 여섯 번째 이야기가 이어지긴 할지, 이어진다면 그가 과연 어떤 모습으로 독자 앞에 나타날지 벌써부터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워낙 인물도 많고, 사건에 관한 팩트들도 복잡다단해서 일일이 다 소개하진 못했는데, 동시에 자잘한 소개조차 스포일러가 될 여지가 많은 작품이라 가급적 ‘내용’을 다룬 서평들은 읽지 말고 바로 본편을 읽을 것을 권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