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여성이 원룸에서 살해된 사건을 수사하던 경시청 수사1과는 어느 날 익명의 밀고장을 받습니다. 범인이 12월 31일 밤 코르테시아도쿄 호텔에서 열리는 새해 카운트다운 파티, 일명 ‘매스커레이드 나이트’에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몇 년 전 같은 호텔에서 연쇄살인범을 체포했던 닛타 고스케를 위시하여 대규모 잠입 작전이 시작되지만 가장 큰 문제는 수백 명의 파티 참가자가 가면과 코스튬 차림이라는 점. 닛타와 수사팀은 파티 사흘 전부터 투숙객들을 상대로 조사를 벌이지만 밀고자의 의도도, 범인이 진짜 나타날지도 알 수 없어 답답한 상황입니다. 베테랑 호텔리어이자 몇 년 전 사건에서 닛타의 파트너로 활약했던 야마기시 나오미는 또다시 호텔에서 벌어진 강력사건에 초긴장 상태에 돌입합니다.

시리즈 명 ‘매스커레이드’는 가면 또는 가면무도회를 뜻하는 단어입니다. 누구나 어떤 이유로든 가면을 쓰고 살기 마련인데, 특히 호텔이라는 공간은 가면의 필요성이나 효율성이 극대화되는 곳이며, 살인사건 같은 이례적인 상황이 예고된 경우라면 더더욱 가면의 두께는 두꺼워지고 위장의 수위도 높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호텔을 찾은 고객의 가면을 벗겨내 사건을 해결하려는 형사와 위기 속에서도 어떻게든 고객의 가면을 지켜내려는 호텔리어가 이끌어가는 이야기지만, 살인사건이 예고된 호텔이라는 공간 자체가 세 번째 주인공처럼 느껴지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또한 미스터리의 무대 자체가 가면무도회라는 점에서 ‘매스커레이드 나이트’는 이 시리즈의 작의가 가장 충실하게 반영된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뛰어난 능력자지만 공명심과 오만함으로 똘똘 뭉쳤던 경시청 수사1과 엘리트 형사 닛타는 이제 조금은 둥글둥글해진 모습으로 성장했습니다. 베테랑 호텔리어로서 프런트를 지키던 나오미는 컨시어지(고객의 다양한 희망사항과 요청을 들어주는 역할)가 되어 좀더 고객과 밀착된 서비스를 제공하는 중책을 맡았습니다. 몇 년 만에 또다시 호텔에서 벌어진 사건 때문에 재회한 두 사람은 사건의 규모나 중대성 때문에 좀처럼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합니다.
이야기는 크게 세 갈래로 전개됩니다. 닛타를 위시한 잠입수사팀이 고객 하나하나를 주도면밀하게 관찰하며 파티 당일에 벌어질지 모르는 참극을 대비하는 한편, 관할서 형사였다가 경시청 수사1과로 영전된 중년형사 노세가 닛타와 협력하며 20대 여성 살인사건의 배후를 조사합니다. 그리고 연말 가면무도회를 위해 몰려든 수많은 고객들의 다양한 요구에 응대하는 호텔리어 나오미의 기지 넘치는 활약이 병행됩니다.
556페이지라는 적잖은 분량에도 불구하고 히가시노 게이고 작품이 대부분 그렇듯 페이지는 빠른 속도로 넘어갑니다. 닛타와 나오미와 노세가 번갈아 새로운 상황을 맞이하며 악전고투하다 보니 지루할 틈이 없습니다. 또한 밀고자의 의도도, 범인의 살해동기도 마지막까지 오리무중이라 독자의 궁금증을 계속 증폭시킵니다. 가면무도회가 열린 연회장에서 긴박한 상황이 벌어지고 끝내 모든 진실이 밝혀지는 대목에선 히가시노 게이고 특유의 반전의 맛과 씁쓸한 여운도 만끽할 수 있습니다.
다만, 호텔을 찾은 고객들의 사연과 그에 응대하는 나오미의 이야기가 필요 이상으로 많은 분량을 차지한 점이 아쉽게 느껴졌습니다. 물론 없어도 되는 인물은 없고, 미스터리 구도 상 꼭 필요한 설정이기도 했으며, 그 많은 고객 가운데 밀고자 혹은 범인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궁금증을 쉴 새 없이 자아낸 건 사실이지만, 다소 과해 보인 게 사실입니다. 막판에 밝혀진 밀고자와 범인의 정체, 그리고 진실의 수위가 꽤 높고 독해서 ‘고객들의 이야기’ 분량만 약간 조절됐더라면 훨씬 더 밀도 높은 작품이 됐을 거란 생각입니다. 워낙 오래 전에 읽어서 줄거리는 전혀 기억이 안 났지만, 읽는 도중 예전에도 비슷한 아쉬움을 느꼈던 일이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막판에 나오미의 신상에 큰 변화가 예고됐는데, 후속작인 ‘매스커레이드 게임’은 아직 읽은 적이 없어서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지 무척 기대가 됩니다. 닛타 역시 새로운 모습을 보이거나 새로운 상황에 부딪힐 때가 된 듯해서, 다음 작품에선 과연 어떤 변화를 보여줄지 궁금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