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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sydaisy의 서재
  • 엄마, 나는 페미니스트가 되고 싶어
  • 카르멘 G. 데 라 쿠에바
  • 12,420원 (10%690)
  • 2020-01-30
  • : 107

 “설치고, 떠들고, 말하고, 생각하고, 내가 싫어하는 모든 걸 갖췄다” 몇 해 전 모 남성 개그맨이 여성 출연자에게 ‘농담’이랍시고 건낸 말이다. 이 발언에 분개한 한국의 페미니스트들은 이 발언을 ‘설치고, 말하고, 생각하라’ 라는 페미니즘 구호로 전유했다. 이렇듯 여성에게는 자신의 신념과 의견을 내세우지 않는 ‘조신한’ 삶이 강요되어 왔고, 여성들은 아주 오래 전부터 이러한 사회적 압박에 맞서왔다. 이러한 현상은 한국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여기, 평생 ‘설치고, 말하고, 생각하’며 살아온 스페인 페미니스트의 이야기가 있다.


<엄마, 나는 페미니스트가 되고싶어>에서 저자 카르멘 G. 데 라 쿠에바(이하 ‘카르멘’)는 엄마 뱃속에서 열 달을 못 채우고 나온 그 순간부터 30여 년이 지난 현재까지 여성으로서 겪은 스스로의 경험을 이야기한다. 카르멘의 곁에는 언제나 엄마와 이모, 증조할머니, 여동생과 여자 친구들이 있었다. 카르멘은 이들과 왜 성기를 백과사전에도 나오지 않는 말로 둘러서 불러야 하는지에 대해 질문하고, 친구의 강간 피해 사실에 분개했으며, 안전한 주거 공간을 가질 수 없는 것에 대한 고민을 나누었다.


또한 카르멘의 인생에는 버지니아 울프, 시몬 드 보부아르, 이브 앤슬러, 록산 게이 등 여러 여성 작가들의 이야기가 함께했다. 여성 작가들의 글에서 카르멘은 문제의식과 함께 용기를 얻었다. 카르멘은 자신이 주체적인 삶을 살기 위해서는 나고 자란 마을인 알칼라를 떠나야 한다고 느꼈고 대학에 들어가고 나서 필사적으로 알칼라를 벗어났다. 카르멘은 언제나 지금보다 나을 미래를 꿈꾸며 독일, 영국, 등지를 떠돌았지만 어디서도 자리를 잡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고 20대 후반 알칼라로 돌아오게 된다. 후퇴라고 여겨졌던 이 곳에서, 책 속에 있던 과거의 연대와, 가족의 여자 구성원들과 이루는 현재의 연대가 교차한다. 


“최악의 순간이 닥칠 때마다 나는 머릿속에서 증조할머니와 대화를 나누었다. (…) 모두 나간 오후가 되면 나는 그녀의 부엌이었던 곳에 앉아, 그녀에게 편지를 쓰기 위해, 내가 한 번도 묻지 못했던 모든 것을 물어보기 위해 노트를 편다. 내게 전쟁 이야기를 해 줄 그녀의 딸들도 없는 지금, 어쩌면 내 꿈에 그녀가 계속 나타나 내가 기억할 수 있도록 응답해 줄지도 모르겠다. 나는 내가 길을 잃었다고 생각될 때마다 그녀가 넘어지지 않도록 우리의 역사를 단단히 붙잡으면 된다고 이야기해 주러 내 꿈에 나오는 거라 생각하고 싶다.”


다른 문화권에서 나고 자랐지만 늘 비슷한 고민을 하고 살았기에 카르멘의 이야기는 공감을 넘어 위로가 되었다. 납득할 수 없는 점이 많았지만 ‘설치는 애’로 찍혀버릴 까봐 입을 닫았던 유년기부터 지금 살고 있는 한국을 꼭 벗어나서 주체적인 삶을 살겠다고 다짐했던 이십대 중반을 지나 가족과 친구들의 곁에서 살고 있는 지금에 이르기 까지, 카르멘이 가졌던 것과 같은 의문점과 문제의식을 가지고 살아왔고 그 해결의 실마리에는 언제나 여성 작가들의 글과, 내킬 때 마다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여성 동료들과의 연대가 있었다. 


저자는 “이제 우리 여자들이 펜을 가진 이상 권위를 가지고, ‘나’로부터 시작하는 이야기가 민망하더라도 우리의 삶을 서사화해야만 한다. 일인칭으로 쓰는 우리들의 경험으로부터 출발하는 것만이 우리가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사실을 이야기하기 위한 가장 좋은 길이다. 여전히 월경과 성적 괴롭힘과 젠더 폭력과 살찐 몸과 모성에 대한 훨씬 많은 이야기가 필요하다. “고 말한다. 카르멘은 당장 눈에 띄는 성과가 없는 현실에 좌절하는 대신, 일상속에서 계속되는 여성들의 연대에 주목한다. 주변 여성들과의 대화는 카르멘이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해 주었고, 여성작가들의 글은 카르멘의 자아를 단단하게 만들어 주었다. 이렇듯 여성들의 이야기는 책 속에 남든, 대화로 흩어지든 다른 여성에게 힘이, 자극이, 때로는 안식이 된다. 카르멘이 그랬듯 우리는 앞으로 더 열심히 설치고, 떠들고, 말하고, 생각해야 한다. 이야기하기를 주저하는 여성들에게 이 책은 아주 큰 힘이 되어 줄 것이다. 책을 읽으며 아쉬운 점도 더러 있었지만 작가의 유쾌한 문체에 매료된 나머지 이런 불만(?)들 마저 언제든지 토로할 수 있는 거리에 있는 것 처럼 느껴졌다. 아름다운 일러스트와 정갈한 만듦새까지, 아주 유쾌한 독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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