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희덕의 아름답고도 슬픈시
<너무 늦게 그에게 놀러간다 >
우리 집에 놀러와 목련 그늘이 좋아
꽃 지기 전에 놀러 와
봄날 나지막한 목소리로 전화하던 그에게
나는 끝내 놀러 가지 못했다
해 저문 겨울날
너무 늦게 그에게 놀러간다
나 왔어
문을 열고 들어서면
그는 못 들은 척 나오지 않고
이봐 어서 나와
목련이 피려면 아직 멀었잖아
짐짓 큰소리까지 치면서 문을 두드리면
조등 하나
꽃이 질 듯 꽃이 질 듯
흔들리고, 그 불빛 아래서
너무 늦게 놀러 온 이들끼리 술잔을 기울이겠지
밤새 목련 지는 소리 듣고 있겠지
너무 늦게 그에게 놀러 간다
그가 너무 일찍 피워 올린 목련 그늘 아래로